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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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미쳤어?]
“안타깝게도 제정신이야.”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욕에 시큰둥하게 대꾸하자 유진호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근래 흔적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또라이짓 어떻게 하는지 배워 왔냐?]
“아, 왜 저번부터 계속 막말이야?”
[막말 안 하게 생겼냐? 갑자기 와서 개또라이짓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 방법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니까.”
[방법이 없긴 개뿔, 야. 너 솔직하게 말해. 흔적 어나더 길드에 처박아 놓고 길전하면서 다시 싸울 생각에 지금 존나 신났지? 노퓨쳐 잡을 계획이고 나발이고 둘이 지금 길전할 생각에 눈 돌았잖아. 아니야?]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꼭 그 이유만 있는 건…….”
[진짜 뒤질래?]
“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봐. 네가 노퓨쳐가 얼마나 길드홀에만 처박혀 사는지 몰라서 그래. 얘 진짜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길드 활동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해.”
[너도 사흘 보고 온 게 끝이면서 뭘 잘난 척이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길드 애들도 길전 외에 노퓨쳐 만난 적 없다고 했잖아.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게임한 놈인데, 지금이라고 달라졌겠냐?”
[…….]
“그리고 흔적 사칭도 계속 접속을 안 해. 노퓨쳐나 사칭범이 이렇게 소극적으로 움직이면 우리도 접근하기가 어려워. 그러니까 어느 정도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줘야지.”
[하… 그래. 네 말대로 이번에 길전을 열어서 그 두 놈을 성공적으로 끌어낸다고 쳐. 그다음은?]
“엉?”
[그다음은 어떡할 거냐고. 성향이 저런 놈들이면 길전 끝나고 나면 똑같아질 텐데, 그때 또 길전하게?]
“음…….”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이건 아직 서정연과 상의해 보지 않은 부분이었다. 좀 더 제대로 설명하자면 나나 서정연이나 길드 전쟁할 생각에 신나서 거기까지 고려를 못 했다.
“뭐, 그건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보면 되지.”
[미친놈…….]
지긋지긋하단 기색으로 중얼거린 유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언제는 내 말 들었다고 의견을 묻고 지랄이야.]
“에이, 그래도 네가 부길마인데 의견 정도는…….”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낸 내가 웃으면서 유진호를 달래 주려는데, 전화가 매정하게 뚝 끊겼다.
유진호가 지금은 이래도 막상 전쟁을 시작하면 제일 신나게 날뛰는 타입이니까 내버려 둬도 될 거다. 문제는 어제 서정연이 짚어 준 것처럼 인원 배치였다.
네 명 다 빠질 수는 없기도 하고, 서정연은 해월 캐릭터 말고는 마땅한 게 없으니 어나더 길드에 참가하는 게 나을 거다. 혼자 두는 것보단 여여랑이라도 붙여 주는 게 좋겠는데.
좋은날씨와 나는 본캐로 참가해야겠다. 그럼 서정연과 여여랑에게 어나더 길드 상황을 전해 들을 수도 있을 테니 이득이 컸다.
핸드폰을 들고 자리로 돌아와 내려놨던 헤드셋을 다시 착용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서정연이 곧장 물어왔다.
[전화 잘 했어요?]
“어. 부길마도 동의했으니까 내일 바로 길전 신청할 예정이야.”
[인원은?]
“길드원 한 명 두고 갈게. 두 명씩 나눠지면 충분하겠지.”
[노퓨쳐가 전쟁을 포기할 리 없으니 일주일 내로 일정 잡히겠네요.]
“그래. 우리 길드도 오랜만에 하는 전쟁이라 다들 기대가 클 거야. 전쟁하는 과정에서 어나더 길드 측에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더 반가울 거고.”
이를테면 흔적 사칭범의 허접한 실력이 들통난다거나. 노퓨쳐가 전쟁 준비로 분주해진다거나. 그럼 최소한 길드홀에 처박혀 있을 때보다는 길드원들과 교류가 많아지겠지.
[도해준 씨.]
“말해.”
[저 종결 무기도 없고 장비도 제대로 없는데… 살살해 줄 거죠?]
전쟁이 벌어졌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던 나는 그 뜬금없는 소리에 실소를 흘렸다. 뭐라는 거야, 갑자기.
“백만 원 훌쩍 넘는 무기를 사 와 놓고서 양심이 있냐?”
[도해준 씨 본캐는 종결 무기잖아요. 장비도 그 정도고… 제가 어떻게 이겨요?]
“그래서? 자신이 없으시겠다?”
[좀 봐달라는 거죠.]
“봐주겠냐고. 불만 있으면 너도 본캐 가져오든가.”
[너무하네요.]
너무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 간단한 농담에서 서정연도 곧 있을 길드 전쟁을 기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
 
다음 날, 나는 부캐가 아닌 본캐로 접속했다. 길드에 결정을 전달하고 어나더 길드에 길드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길드] 불좀켜줄래: 일욜님 하이
[길드] 저6천원있어요: ㅎㅇㅎㅇ
[길드] 오늘은일요일: 하이
[길드] 야옹이라옹: 길마님 하잇ㅇㅅㅇ/
[길드] rxrx78: ㅎㅇㅎㅇ
[길드] 류페: 일욜님 레이드 ㄱ?
[길드] 아스타로트: 인사도 안하곸ㅋㅋㅋㅋ
[길드] sky004: 저 지금 막턴하고있는데 ㄱㄷ려주실수?
 
‘오늘은일요일’로 접속하자 익숙한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보내왔다. 그래, 아무리 어나더 길드원들이 착하다고 해도 난 역시 내 길드가 좋았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아련한 마음까지 들었다.
비록 길드원들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무슨 쩔 노예가 온 것처럼 레이드를 들이밀기 바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런 양심 없는 모습들도 우리 길드원다웠다. 흐뭇하게 웃으며 채팅창을 바라보는데, 또 다른 낯익은 닉네임이 불쑥 끼어들었다.
 
[길드] 일휘일비: ㅎㅇㅎㅇ
[길드] 불좀켜줄래: ?
[길드] 류페: 머여
[길드] 영화별론가: 둘이 또 같이 들어오네 ㄷㄷ;;;;
[길드] sky004: 헉
[길드] rxrx78: 헉
[길드] 저6천원있어요: 헉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헉ㅋ
[길드] 오늘은일요일: ㅡㅡ
[길드] 일휘일비: 오일님^^~
 
이 개자식이. 이를 뿌득 갈며 서정연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일요일: 아니 왜자꾸 쫓아다녀 대체
오늘은일요일: 나 없는동안 어나더 길드 살펴보라고ㅡㅡ
일휘일비: ㅠㅠ
일휘일비: 도해준 씨 없으면 재미없는걸 어떡해요
오늘은일요일: 알빠야?
일휘일비: ㅋㅋㅋㅋㅋㅋㅋ
일휘일비: 방해안하고 구경 좀만 하고 갈게요
일휘일비: 길전 선포했을때 분위기 어떤지 예전부터 궁금했어서
오늘은일요일: 별게 다 궁금하네
오늘은일요일: 어나더랑 다를게 없을텐데
일휘일비: 우린 좀.. 뭐라고 할까요
일휘일비: 과했다고 할까?
일휘일비: 아무튼 이번에 함 볼게요 비슷한가 다른가
오늘은일요일: 어휴
오늘은일요일: 맘대로해라
 
어쩔 수 없지. 이 정도는 상관없기도 하고.
길드 전쟁을 선포하려면 홈페이지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길드 마스터만이 할 수 있는 권한이며, 신청서에 상대 길드 이름을 작성하고 접수하면 5분도 안 가서 서버 전체에 길드 전쟁을 선포했다는 서버 메시지가 떠오른다.
보통은 기다릴 것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겠지만, 오늘은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게 있었다. 나는 우선 길드 목록창을 열어서 유진호가 접속해 있는지 알아봤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마하 있음?
[길드] 마하: ?
 
좋아. 나는 유진호가 잠수가 아닌 것까지 철저하게 확인한 다음에 채팅을 쳤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님들
[길드] rxrx78: 넹
[길드] 류페: ㅔ?
[길드] 아스타로트: ㅇ?
[길드] 불좀켜줄래: ?
[길드] 마하: 아 **
[길드] 마하: 나지금좀 기분 *같은데
[길드] 마하: 하지마 **놈아
[길드] 오늘은일요일: 우리 길전 할거임
[길드] 오늘은일요일: 상대는 어나더 길드랑
[길드] 불좀켜줄래: ??
[길드] rxrx78: 네?
[길드] 영화별론가: 뭐요? 누구랑 길전을해?
[길드] 야옹이라옹: ?????
[길드] 야옹이라옹: 갑자기???
[길드] 저6천원있어요: 뭐요?
[길드] 아스타로트: 언제요?
[길드] 오늘은일요일: 이번주 안에
[길드] 오늘은일요일: 날짜는 어나더가 길전 승낙하면 제대로 정하고
[길드] 오늘은일요일: 자세한건 마하한테 물어보셈
[길드] 마하: 아니
[길드] 오늘은일요일: 난 신청서 써야해서 이만..
[길드] 마하: 이 ㅅ1발
[길드] 불좀켜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sky004: 아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철저하네
[길드] 영화별론가: 일 떠넘기려고 잠수 체크까지;;; ㅁㅊ다 ㅁㅊ어;;
[길드] 일휘일비: 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류페: 그래서 갑자기 길전 왜하는건가요 마하님
[길드] 야옹이라옹: 빨리 설명해주세요 마하님ㅠㅅㅜ
[길드] 마하: 아 ***
[길드] 마하: ****
[길드] rxrx78: 극대노중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욕 그만하고 빨리 알려달라구엿!!
[길드] 영화별론가: 하 궁금해서 현기증나요
 
난리가 난 길드 채팅을 뒤로하고 아크로드 홈페이지를 켰다. 내가 채팅창을 안 본다는 걸 알았는지 유진호가 저번처럼 핸드폰이 불나도록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난 ㄴㄴ역시 받지 않았다.
미안하다, 유진호.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내 짐을 네가 부담 좀 해 줘.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