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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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기 없는 직업이라고 해도 종결 혹은 종결에 가까운 무기는 비쌀 수밖에 없었다.
서정연이 들고 나타난 저 두 개의 단검은 누가 보더라도 종결에 가까운 무기였다. 풀강화를 의미하는 선명한 푸른빛이 그 증거였다.
무기에 적용된 강화 단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금액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만약 서정연이 경매장에 올라와 있는 무기 중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스펙을 산 거라면, 금액은 백만 원이 훌쩍 넘었을 가능성이 컸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해월님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거 사신거에영? ㄷㄷ
[파티] haewo1: ㅎㅎ네
[파티] haewo1: 알피지겜은 무기가 중요하다고해서
[파티] haewo1: 레이드 가기 전에 사봤어요
[파티] haewo1: 민폐끼치면 안되니까^^
[파티] 나의라임나무: 아니 어차피 뉴비신데 민폐일리가요;;
[파티] 방벽: 와 이거 몇강임?ㄷ
[파티] Iilliliilil: 솔직히 윈헌 무기 이렇게 좋은거 실제로 첨본다..
[파티] 방벽: ㄹㅇ윈헌 키우는 사람부터가 보기쉽지않아서
[파티] haewo1: 무기 중요하니까 걍 젤 바싼거 산건데
[파티] haewo1: 잘못산건가요?
[파티] Iilliliilil: ㄴㄴㄴ 그건아닌데
[파티] Iilliliilil: 그거 비싸지않음?
[파티] Iilliliilil: 뉴비신데 너무 과투자 하신듯
[파티] haewo1: 아 그건 ㄱㅊ아요
[파티] Rahm: 올
[파티] Rahm: 갑부신가벼ㅋㅋ
 
채팅을 보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어제 보면 안다는 게 설마 이 상황을 뜻하는 거였나.
“미쳤어? 이걸 왜 사?”
[어그로 끌어야 하잖아요. 이럴 땐 돈지랄이 제일 확실하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싼 걸 샀잖아.”
우리가 키우는 이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부캐였고, 목적이 따로 있었다. 아무리 어그로를 위해서라지만 저런 큰 금액을 들이는 건 맞지 않았다.
 
빚과송금: 흔적 ㄹㅇ제정신 아닌듯요
빚과송금: 진짜 또.라이의 극치를 보여줌;;
 
쥐안에든독: 플렉스 대박이네
쥐안에든독: 제꺼 하나 사달라고 하면 안되겠죠?
 
좋은날씨와 여여랑도 많이 놀랐는지 개인 메시지까지 보내면서 경악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기겁하게 만든 서정연은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종결도 아니라 그렇게 많이 안 비쌌어요. 그리고 솔직히 저한테는 별 의미 없는 금액이라…….]
“…….”
그래, 너 잘났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보고 온 서정연의 집의 규모를 떠올리자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미 사 온 건 뭐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넘어가고, 이런 어그로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확인해 봐야죠. 만약 실패해도 무기는 남으니까 그걸 마음의 위안으로 삼아야겠네요.]
왜 혼자 이렇게 태평한 건지 모르겠다. 내 돈도 아닌데 왜 내가 아까운 건지.
 
[파티] 나의라임나무: 사기전에 주변에 물어보고 사시지ㅜ~ㅜ
[파티] 나의라임나무: 지온님이 안 말렸어여?
[파티] Z10N: 말리고 자시고 말도 안하고 지멋대로 사온거임
[파티] Z10N: 냅두삼 이미 사온걸 어째요
[파티] 빚과송금: ㄷㄷ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건 그렇긴 하넹
[파티] Z10N: 일단 ㄱㄱ
[파티] 성하연: ㅇㅅㅇ;
[파티] 나의라임나무: ㅇㅋㅇㅋ
 
내 재촉에 라임나무가 곧장 레이드 입장을 눌렀는지 화면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레이드에 진입하는 걸 기다리는 동안 서정연이 즐거운 기색으로 말했다.
[성하연이라는 유저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네요.]
 
***
 
바위산 레이드는 3 스테이지까지 있고, 중간 보스와 최종 보스가 나온다.
중간 보스는 2 스테이지에서 나오는데 딱히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물론 중간 보스인 만큼 즉사기를 가진 패턴을 버텨 내고 잡아야 하지만 패턴만 이미 알고 있으면 체력이 약해서 쉽게 죽일 수 있었다.
1 스테이지를 출발하기가 무섭게 산꼭대기에서 커다란 돌덩이가 이리저리 굴러떨어졌다. 맞으면 경직에 걸려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기 때문에 피하면서 몬스터를 처리해야 했다.
쿠구구궁, 땅이 흔들리면서 먼지가 자욱하게 퍼졌고 돌덩이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걸 이리저리 피하며 성하연을 살폈다.
‘지금은 별로 특별할 거 없어 보이네.’
생각해 보면 당연한가? 길드원들이랑 다 같이 레이드에 들어와서 뭔가를 할 리가 없지. 아쉬운 대로 성하연의 플레이를 구경했다.
회피 센스 평범. 스킬 돌리는 순서도 평범. 역시나 실력도 특별할 거 없이 모든 게 평범했다.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는. 오히려 센스 부분은 좀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
저 정도면 흔적 사칭범이 계정을 만든 시기에 성하연도 아크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크를 오래 한 유저처럼 보이진 않으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노퓨쳐는 나름 철저하게 이것저것 준비를 해 둔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가짜 흔적만 길마로 세워 둔 줄 알았더니, 성하연 같은 놈까지 길드원으로 배치해 두다니. 대단하다고 박수라도 쳐 줘야 하나.
[도해준 씨.]
“왜.”
[이제 곧 중간 보스가 나올 텐데, 저 일부러 한두 번 죽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 반응 좀 보려고 그러는 거니까 놀라지 말고.]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알거든?”
날 얼마나 눈치 없는 사람을 보는 거야. 오히려 기분이 나빠서 한마디 하자 서정연이 킥킥거리고 웃었다.
때마침 한 명도 죽지 않고 1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우리 앞에 2 스테이지와 함께 중간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간 보스는 회색빛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 두 마리였다.
캬오옥! 늑대 두 마리가 날카롭게 울며 몸에서 빛을 흘려보냈다. 한 마리는 파란색 빛을, 다른 한 마리는 붉은색 빛이었다.
두 마리가 뿜어내는 빛은 시간마다 계속 바뀐다. 마법 대미지는 파란색 빛을 가진 늑대를, 물리 대미지는 붉은색 빛을 가진 늑대를 공격해야 하며 틀리면 그 순간 파티 전원이 즉사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확실히 뉴비가 실수할 만한 구간이긴 하네.’
여기라면 한두 번 정도 죽어도 의심받지 않을 거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치밀하다니까.
주 스킬이 물리 대미지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붉은색으로 빛나는 늑대에게로 가서 열심히 때렸다. 하지만 30초도 가지 않아서 화면에 타격 표시가 번쩍거리며 모두가 즉사했다.
 
[파티] haewo1: 아
[파티] haewo1: ㅈㅅ합니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ㄱㅊㄱㅊ
[파티] haewo1: 스킬이 막 섞이니까
[파티] haewo1: 늑대 구분이 잘 안되네요..
[파티] Rahm: 초반엔 어려울만함ㅋㅋ
[파티] 성하연: 마자요ㅎ.ㅎ
[파티] 성하연: 다시해바요>.<
 
‘오?’
심드렁히 파티 채팅을 지켜보던 나는 성하연이 끼어든 것을 발견하고 조금 놀랐다. 설마 진짜로 효과가 있는 건가?
다 함께 2 스테이지 세이브 지점에서 태어난 우리는 다시 중간 보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우렁찬 울음소리로 우릴 반겨 준 늑대가 다시금 빛을 번쩍이며 두 위치에 나누어 자리 잡았다.
그렇게 1분 정도 흘러서 우리가 중간 보스의 체력을 절반 정도 깎았을 때, 또다시 서정연이 일부러 파란색 늑대를 건드려서 다 함께 즉사기를 처맞았다. 회색으로 물든 화면을 두고 서정연이 느긋하게 물었다.
[세번 죽는 건 오바죠?]
“두 번이면 충분하지 않냐.”
나 또한 무심히 대답하며 파티 채팅에 집중했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헉
[파티] 나의라임나무: ㄱㅊㄱㅊ!!
[파티] 나의라임나무: 처음보다 훨씬 잘 버텼음!^~^
 
제일 먼저 올라온 건 라임나무의 격려의 말이었다. 이쯤 되자 유일하게 라임나무한테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라임나무 성격 진짜 좋네…….”
[그러게요…….]
떨떠름하게 중얼거리자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정연도 떨떠름한 기색으로 공감을 해 왔다.
 
[파티] 빚과송금: 윈헌이 이렇게 빡셉니다..
[파티] Iilliliilil: 해월님 하필 윈헌이라서
[파티] Iilliliilil: 나중갈수록 더 빡세질듯ㅋㅋㅋㅋ
[파티] 방벽: 다시 ㄱㄱ
[파티] 성하연: 갠차나요 해월님
[파티] 성하연: 이번엔 깰 수 있을듯ㅎㅎ
[파티] 성하연: 제가 버프 집중해서 줄게요^ㅁ^/
[파티] 크라나샨트: ㅎ..
 
처음 죽었을 때보다 더 길어진 성하연의 채팅을 본 서정연이 짧은 감상을 남겼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반응이 제법 괜찮네요.]
“예상보다 너무 좋아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뭐,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가 몇백씩 턱턱 쓰면 관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나였으면 호감이 아니라 저 미친놈은 뭐지 싶어서 엮이지 않도록 노력할 텐데. 역시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도 그만큼 많았다.
[아무튼 첫 번째 계획은 통했네요. 전 계속 뉴비 행세할게요. 이따 보스한테도 한 네 번쯤 죽으면 되겠네요.]
“어째 좀 즐기는 것 같다?”
[그럴 리가요.]
찝찝한데.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성하연의 호감을 끌어냈으니 서정연의 방법이 통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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