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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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을 맞추자고? 그럼 길드에 들어가기 빡세지잖아.”
보통 길드는 지인끼리 같이 들어오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싸우기라도 하면 상황이 애매해지니까. 비슷한 경우로 커플도 받지 않는다.
“우리끼리만 알게 맞추자는 거죠.”
“그럼 맞추는 의미가 있어?”
“꼭 의미가 있어야만 하나요.”
“적당한 거 추천해 봐.”
닉네임 정도야 뭐든 상관없었다. 내 말에 서정연이 새까만 눈동자를 굴렸다.
“콜라와 사이다라든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런 닉네임이 남아 있겠냐? 그리고 듀오인 거 너무 티 나잖아.”
“홈즈와 왓슨을 영어로 하는 건요?”
“갑자기 홈즈가 왜 나와?”
“실은 제가 추리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누가 홈즈고 누가 왓슨인데?”
“그거야 당연히…….”
서정연이 웃으며 나를 가리켰다. 내가 왓슨이라는 뜻이다. 이 재수 없는 놈이 진짜.
“안 해.”
“알겠어요. 그럼 도해준 씨가 홈즈해요.”
“둘 다 싫다고!”
뭔 홈즈야, 홈즈는! 질색하며 소리치자 서정연이 깜짝 놀란 척 능청을 떨었다. 진심으로 한 대만 때릴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맞춰야 하지만 듀오 티는 내지 말아야 한다라. 흠.”
“안 맞추고 각자 하면 되잖아…….”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입가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던 서정연이 곧이어 좋은 게 떠올랐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카페 이름으로 할까요?”
“뭐?”
“도해준 씨가 일하는 카페랑, 지금 여기 24시 카페요.”
서정연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 두드렸다.
카페 이름이라. 내가 알바하는 카페는 ‘지온(ZION)’이었고 지금 여기는 ‘해월’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닉네임으로 쓰자는 건데. 나쁜 의견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있었다.
“지온이랑 해월 둘 다 분명 누가 이미 쓰고 있을걸.”
“영어랑 숫자 잘 섞으면 되죠. 일단 도해준 씨가 지온으로 해요.”
지온이라. 우선 한글로 ‘지온’과 영어인 ‘ZION’ 두 가지 다 닉네임 창에 써서 확인을 눌렀다. 역시나 예상대로 이미 사용 중인 닉네임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한글과 영어를 섞은 ‘Z1ON’ 이라든가 ‘ㅈ1온’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다가 그나마 중복되지 않는 ‘Z10N’으로 결정했다.
“됐냐?”
“예쁘네요.”
“넌 얼마나 잘 지을지 두고 본다, 내가.”
캐릭터 생성을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서버에 접속했다. 오프닝 영상을 스킵하자 뉴비들이 처음 가게 되는 장소, 케인스 부둣가가 화면에 나타났다.
접속도 하고 오프닝 영상도 스킵해 놨으니 여기서 해야 할 건 끝났다. 로그아웃한 뒤에 아까 서정연이 했듯이 녀석에게 노트북을 밀어 줬다.
“자, 네 차례야.”
“네.”
흔적 캐릭터를 보여 줄 때처럼 계정에 로그인한 서정연은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새 캐릭터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미리 결정을 다 해 둔 모양이다
녀석이 무슨 직업을 선택하는지 보기 위해 몸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서정연의 어깨와 내 어깨가 자연스럽게 붙었다.
“윈드 헌터? 이걸 하겠다고?”
“네. 예전부터 하고 싶었어요.”
“…이 직업을?”
윈드 헌터. 이것도 근접 딜러 직업이긴 하지만, 쓰레기 중에서도 쓰레기라 아무도 하지 않았다.
스킬은 마법과 물리, 두 가지가 있어서 모든 장비와 무기에 두 속성을 모두 챙겨야 그나마 대미지가 나왔고, 새로운 무기가 안 나온 지 한참이라 다른 직업 종결 무기에 비해 성능이 떨어졌다.
수많은 단점을 제외하면 바람 속성으로 기본 이속과 스킬 쿨타임이 무척 짧아서 치고 빠지기에 좋긴 하지만… 그거 하나 목적으로 키우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다른 좋은 직업들이 많은데, 굳이 윈드 헌터를 키우겠다는 서정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네 본캐처럼 블레이드나 일휘일비 때처럼 추적자가 낫지 않냐?”
“뭐 하러 그래요. 지겹게.”
그야 이미 키우던 직업을 또 키우는 게 지겨운 건 맞지만. 그래도 윈드 헌터는 좀 에반데.
“그 두 개가 지겨우면 차라리 창술사는 어때.”
“도해준 씨, 제 직업에 불만 있으세요?”
“없겠냐? 그딴 쓰레기를 골랐는데?”
“윈드 헌터가 쓰레기는 맞는데 플레이는 제가 하니까 괜찮아요.”
얼씨구. 자신감이 높다 못해 하늘을 찌르겠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말려 봤자 듣지도 않는데 더 얘기할 것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자 빙긋 웃으며 닉네임 정하는 창으로 넘어갔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서정연은 부드러운 분위기와 달리 고집이 꽤 강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 자기 갈 길만 가는 마이 웨이 성격인 게 확실했다.
“어때요?”
내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닉네임도 정했는지 서정연이 나를 불렀다. 모니터를 확인해 보자 닉네임 입력 창에 쓰여 있는 ‘해멍멍’이 눈에 들어왔다.
“…….”
“괜찮죠?”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 새끼 진심으로 묻는 건가?
‘설마 ‘해월’의 ‘월’이 개 짖는 소리랑 비슷해서 ‘해멍멍’으로 한 거야?’
진짜 또라이인가? 어쩜 이렇게 거지 같은 발상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전에는 ‘heunjeok’이나 ‘일휘일비’ 같은 무난한 닉네임을 잘만 지었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딴 거 해라…….”
“그럴까요?”
서정연을 이해하기를 포기한 내가 지쳐서 중얼거리자 서정연이 ‘해멍멍’을 지우고 이것저것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녀석과 어깨를 붙이고 어떤 닉네임이 탄생하는지 하나하나 지켜본 나는 그중에서 제일 나은 걸 골라 줬다.
“그거 괜찮네. ‘haewo1’. 아니면 ‘haewoll’. 그거 둘 중에 하나 해.”
어차피 게임 닉네임에서 쓰는 영어 따위 발음이나 뜻만 대충 통하기면 된다. 잠시 고민하던 서정연이 고른 건 ‘haewo1’이었다. 숫자 1이 들어가서 내 닉네임이랑 더 비슷한 느낌이 든다나, 뭐라나.
나와 마찬가지로 커스터마이징은 무성의하게 넘긴 서정연도 부캐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다. 아까 만든 내 부캐에게 친추를 넣는 서정연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는데.”
“말해요.”
“도와줄 사람이 한 명 정도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 도와줄 놈한테도 이 상황을 설명해 줘야 할 텐데, 상관없는 거야?”
내 질문을 들은 서정연이 의외라는 기색으로 나와 시선을 맞췄다.
“상관없긴 한데, 누구를 데려올 건데요?”
“우선 좋은날씨나 여여랑 고려 중이야. 그 두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다른 길드원 중에서 찾아야겠지.”
“마하였던가? 그 사람은 부길마니까 길드에 남아 있어야 할 거고. 좋은날씨라면 그 창술사 말하는 거 맞죠? 여여랑은 서머너였고. 나쁘지 않네요. 두 명 다 실력 괜찮던데.”
“쓸데없는 얘기를 떠들고 다닐 성격들이 아니라 믿을 만해. 문제는 그 믿을 만한 놈들이 다 거절할 경우고.”
“글쎄요. 웬만하면 하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사칭범이 관리하는 길드에 잠입하는 거, 말만 들어도 재밌어 보이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미친놈인 줄 아냐?”
아무튼 멀쩡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리해. 집에 가게.”
흔적인지 확인도 끝났고 부캐도 만들었으니 이제 각자 집으로 가서 함께 부캐를 키울 일만 남았다. 순순히 노트북을 닫고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서정연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근데 도해준 씨, 그 길드원들한테 설명을 어떻게 할 건데요?”
“그거야…….”
“카페 알바 하는데 거기 단골손님이 알고 보니까 1년 동안 같이 논 흔적이었다고? 이번에 나타난 흔적은 가짜고? 이런 식으로요?”
“그건…….”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이상했다.
지금 흔적과 함께 있는 나도 믿기지 않는데, 이 상황을 전해 들을 길드원들을 얼마나 어이없을까. 믿어 주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솔직하게 다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짓말을 섞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하…….”
두통이 밀려왔다. 거짓말을 또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지. 이런저런 방법을 구상하다가 결국 내가 택한 건 바로 ‘일휘일비’였다.
“너 이따가 부캐 키우기 전에 일휘일비로 접속 한번 해.”
“일휘일비 이용하려고요?”
“그래. 그게 제일 적당하겠다.”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서정연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방법을 눈치 빠르게 알아챘다.
“길드에도 들어와. 네가 그 캐릭터로 뒤에서 딴짓 안 하게 우리 길드 이름이라도 박아 놔야겠다.”
“저야 좋죠.”
“그리고 길드 전체에는 흔적과 일휘일비는 아무 상관 없다고 말해 둘 거야. 많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 내용이 아니니까.”
이 쓸데없이 복잡하고 거지 같은 상황은 협력해 줄 몇 명만 알면 충분했다.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지. 마하와 길드원들에게 협력을 구하고, 일휘일비를 길드에 가입시키고, 저 녀석과 앞으로 부캐를 키워야 하고… 하나같이 쉬운 일이 없었다.
심란한 나와 달리 서정연은 시종일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게 장난 아니게 얄미웠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