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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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획대로 진행해도 정말 괜찮겠어요?”
사흘 전, 카페를 찾아온 서정연이 나지막이 물었다. 사장님이 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포스기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그게 제일 확실하고 깔끔해.”
“자칫하면 요일 길드가 전쟁에서 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어요.”
이어지는 말에 손끝이 움찔 멈췄다.
고개를 들자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서정연의 얼굴이 보였다. 비꼬거나 비웃으려는 게 아닌, 정말로 계획이 내게 피해를 끼칠까 봐 염려하는 얼굴이었다.
“괜찮아.”
서정연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한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노퓨쳐의 계획과 그걸 무너뜨릴 우리의 계획.
노퓨쳐는 이번 전쟁에서 흔적 사칭범이 나를 죽일 수 있도록 함정을 파두었다. 오늘 새벽까지 서정연과 함께 부캐를 플레이하며 어나더 길드 내부 분위기를 살핀 결과, 이 계획은 웬만하면 바뀌지 않을 거고 실력 좋은 길드원들은 모두 저 계획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계획을 알고 난 뒤에 나와 서정연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요일 길마가 다시 나타난 흔적에게 관심 없다는 태도를 유저들에게 보여 주기. 두 번째, 노퓨쳐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크게 한 방 먹여 주기.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성공하려면 나와 서정연의 힘으로는 어려웠다. 함께 어나더에 들어간 좋은날씨와 여여랑의 도움은 물론이고, 우리 요일 길드원들의 도움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전쟁이 시작된 이후는 상황이 계속 급박하게 흘러갈 거고, 우리가 예상 못 한 문제들이 터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 속에서 참여 인원의 절반 가까이 되는 B팀이 모조리 내 뒤를 따라와야 하는데,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상대 팀인 어나더 길드원들의 수준이 예전보다 낮아졌다고 해도 단체 PVP에서 승리할 거라고 단정 짓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어나더 길드원들은 모두 교체된 탓에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만약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어나더 길드 측에 유리하게 상황이 흘러갔는데, 그 와중에 B팀 인원을 내 쪽으로 불러내게 된다면… 노퓨쳐의 계획은 방해할 수 있어도 전쟁에서 패배하는 결과는 피할 수 없을 거다.
계획을 세워 놔도 사흘 뒤에 시작할 전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걸 서정연도 잘 알기 때문에 내게 저런 질문을 한 거다. 요일 길드가 어나더 길드에게 져도 정말 괜찮겠냐는 걱정 어린 질문을.
“계획대로 해.”
나 또한 그걸 다 알고 있었지만, 계획을 바꾸지 않았다.
내 길드원들을 믿는다. 어나더 길드에게 쉽게 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 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도박을 해 볼 이유는 충분했다.
 
***
 
그리고 지금.
나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실소를 참지 못했다. 정면에 가득 채워진 어나더 길드원들의 존재가 그저 웃겼다.
내가 웃고 있는 것도 모를 어나더 길드원들은 그저 의기양양했다. 아무래도 내가 당황하거나 겁을 먹었다고 착각하고 있겠지. 그래도 공격을 쉽게 맞아 줄 생각은 없어서 발밑으로 날아오는 원거리 공격을 피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길전 시작했는데
[전체] 오늘은일요일: 길마 부길마는 어디 갔나했더니
[전체] 오늘은일요일: 애들만 앞에 보내놓고 여기에 짱박혀있으면 안쪽팔림?ㅋㅋㅋㅋ
 
뻔한 각도로 날아오는 스킬을 카운터 스킬로 쳐 내면서 노퓨쳐를 도발하자 의외로 대답은 옆에서 나왔다.
 
[전체] heunJeok: ㅋㅋ
[전체] heunJeok: 님은 뭐 얼마나 대단한걸 했다고 입털지
 
“허?”
이 새끼 봐라? 맨날 노퓨쳐한테 채팅 맡기더니 이번에는 본인이 나서네?
아무래도 노퓨쳐랑 사칭범이 아주 단단히 기합을 넣고 온 모양이다. 어떻게든 내가 가짜 흔적을 상대하도록, 그리고 주변 유저들과 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관전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다.
‘너무 뻔하다니까…….’
저런 행동마저도 지나치게 적나라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저 도발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웃으며 대답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래서 이제라도 뭐 좀 해보려고
[전체] heunJeok: ?
 
때마침 타이밍 좋게 헤드셋 너머에서 브리핑이 들려왔다.
[일욜님, B팀 도착했습니다!]
 
[길드] sky004: 엉???
[길드] 아스타로트: 뭐냐 ㅅ1벌
[길드] rxrx78: 와 저새.끼들 뭐야?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류페: 왜요??
[길드] 류페: 먼데여?
[길드] 불좀켜줄래: 님들만 알지 말고 브리핑점ㅠㅠㅜㅜㅠㅠ
[길드] 야옹이라옹: ㅋㅋㅋㅋㅋㅋ
[길드] 야옹이라옹: 저 새/끼들 지금 일욜님 죽이려고 저러고 잇는거임??ㅋㅋㅋㅋ
 
[와… 미쳤네.]
내가 있는 곳으로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B팀과 영화별론가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채팅과 말에 마음 깊이 공감하며 제일 중요한 오더를 내렸다.
“앞에 보이는 놈들 모조리 죽여요. 단, 흔적은 건들지 마세요.”
노퓨쳐, 이번 전쟁으로 어떻게든 흔적의 복귀에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고 싶겠지.
“다시 한번 말합니다. 저기 보이는 흔적은 절대로 건들지 마세요. 어차피 나한테 덤벼들겠지만, 흔적이 먼저 공격을 해 와도 그냥 무시하셔야 합니다.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절대로 상대해 주지 마세요. 죽어도 괜찮습니다.”
근데 미안하지만, 난 그런 들러리는 적성에 안 맞거든. 시원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 않으며 길드원들에게 명령했다.
“마지막 싸움입니다. 다 죽여 버립시다.”
[오케이!]
흔적만 빼고. 덧붙인 말이 끝나자마자 근질근질한 몸을 겨우 억누르고 있던 것처럼 울팀인성과 아스타로트가 제일 먼저 선두로 튀어 나갔다.
 
[길드] rxrx78: 가자ㅏㅏ
[길드] 야옹이라옹: 와씨 누님들 넘 빨라요ㅇㅅ;ㅇ
[길드] sky004: 길드에서 젤 쌈박질 좋아하는 2명ㅋㅋㅋㅋ
[길드] 류페: 하쓰.바 개재밋겟다 거기ㅜㅜㅜㅜㅜ
[길드] 불좀켜줄래: ㄹㅇ
[길드] 좋은날씨: 여기 정리 다하면 가서 껴도 대나요????
[길드] 오늘은일요일: ㅇㅋ
 
가볍게 대답해 준 다음에, 어나더 길드원을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길드원들의 뒤를 따라 나도 돌진기를 사용했다.
우리가 등장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채팅을 치지 않고 입을 딱 다물고 있던 어나더 길드원들도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콰르릉, 쾅! 스킬 이펙트가 터지고 화면이 흔들렸다. 갑자기 벌어진 개싸움이 다 그렇듯, 포지션 구분 없이 양 팀이 모두 어지럽게 뒤엉켰다.
난장판 속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는 건 사칭범 단 한 명뿐이었다. 내가 내린 오더대로 아무도 사칭범을 건드리지 않았다. 모두가 미친 듯이 싸우는 난장판 속에서 가만히 서 있는 사칭범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보였다.
그 꼴을 비웃으며 사칭범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내 몫의 할 일이 있었다.
쉬익, 파박!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바로 내 앞으로 내려와 꽂혔다. 이번에는 내가 찾아가지 않아도 서정연이 먼저 내게 날아왔다.
그에 맞춰서 나도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모션으로 내 캐릭터가 양팔을 활짝 벌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서정연의 캐릭터를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
카각! 단검과 봉의 중앙 부분이 맞물리며 미약하게 전류가 튀었다. 새파란 빛과 새빨간 빛이 번쩍이며 서로에게 대미지를 가했다. 아까 내게 맞은 상태로 줄곧 버텨 온 서정연의 체력은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장비까지 모두 맞춰 입은 내 체력은 미약하게 줄어들었다.
내게서 확 물러선 서정연의 캐릭터가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돈 후에 다시 단검을 빠른 속도로 날렸다. 패링으로 쳐 내기엔 속도가 빠른 공격이고, 거리가 멀어서 카운터 스킬은 의미가 없으니 돌진기를 사용해서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벌어진 거리를 다시 좁혔다.
윈드 헌터보다 근거리 싸움에서 유리한 나는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는 게 유리했다.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나를 한 텀 기다린 서정연이 이어지는 공격을 돌진기로 정확히 피해 냈다. 피할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한 텀 쉬고 공격한 건데, 그걸 서정연도 이미 예상하고 제대로 피한 것이다.
‘역시 쉽지 않구나.’
체력 차이도 있고, 서정연은 부캐에다가 장비도 부족하니 내가 당연히 이기겠지만… 이렇게 녀석의 실력을 확인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래, 우리 계획에 완전히 잠겨서 아무것도 못 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날리고 있는 저 쓸모없는 사칭범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르다. 그게 못내 즐거워서 웃으며 서정연에게 스킬을 퍼부었다.
온몸을 움직이며 봉을 날렵하게 휘두르는 내 캐릭터와 일정 거리를 최대한 유지하며 바람과 단검을 섞어서 공격하는 서정연의 캐릭터. 우리 주위로 바람이 휘몰아치며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내 무기가 서정연 캐릭터의 어깨를 스치고, 나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단검을 맞는다. 서로 주고받는 스킬이 많아질수록 체력이 훅훅 줄어들었다.
그사이 킬 포인트 게이지를 보자 어느새 90%를 넘어서고 있었다. 재밌어서 계속 놀고 싶었지만, 슬슬 끝낼 때가 왔다.
궁극기를 쓰자 온몸에서 붉은 기를 방출한 내 캐릭터가 훌쩍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엄청난 속도로 봉 끝을 이용해 서정연의 캐릭터를 짓누른 채 바닥에 인정사정없이 처박았다.
쿠웅! 효과음과 함께 땅이 강하게 흔들리면서 바닥이 갈라졌다. 가뜩이나 체력이 간당간당하던 서정연은 궁극기 스킬의 강한 대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동시에 게이지가 모두 차오르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길드 전쟁이 끝났습니다! 승리 길드: 요일
축하합니다! 길드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이렇게, 3개월 전에 서정연을 이겼던 나는 같은 장소에서 한 번 더 승리를 쟁취했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