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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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전쟁 장소는 중앙 대륙 북쪽에 위치한 켈론 초원이었다. 서정연의 본캐가 계정 삭제당하기 바로 직전에 했던 길드 전쟁 위치와 동일했다.
약 3개월 만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처럼 어나더 길드와 전쟁을 앞두고 있었지만, 상황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1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 온 라이벌이었던 서정연이 이제는 협력자가 되었고, 심지어 같은 방에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이없긴 하다.’
3개월 전의 나는 상상도 못 할 거다. 흔적의 집에 놀러 와서 같이 아크로드를 하게 된다니. 헛웃음을 지으며 헤드셋을 썼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아직 안들어온 사람 있음?
[길드] 마하: ㄴㄴ
[길드] 마하: 다왓음
[길드] 불좀켜줄래: 하잇
[길드] 류페: 여여랑님은 이번엔 안오세요?
[길드] 좋은날씨: ㅎㅎ바쁘대요
[길드] 아스타로트: 여친 생긴거 아님?
[길드] 저6천원있어요: 헐 그럼 ㅇㅈ
[길드] sky004: 개백수인 날씨님이랑 넘 비교대잔어;;
[길드] 좋은날씨: ㅡㅡ
 
여여랑은 내 부탁대로 서정연과 함께 어나더 길드 측에서 길드 전쟁에 참여했다.
단순히 참여하는 것만 아니라 일부러 사칭범을 지키는 역할로 보내 놨으니 사칭범과 노퓨쳐가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뭘 하는지 확인해 줄 거다. 여여랑에게도 서정연에게 했듯이 영상을 녹화해 달라고 부탁해 뒀다.
우리 진영에 서서 기다리자 길드원들도 하나둘 초원에 도착했다. 그중에서 두 번째로 도착한 유진호가 길드 채팅을 쳤다.
 
[길드] 마하: 딴사람 찾지 말고 디코나 들어와
[길드] 오늘은일요일: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
[길드] 마하: 개1소리 하지 말고 처.들어와
[길드] 오늘은일요일: ㄷㄷ
 
유진호는 오늘따라 유독 예민해 보였다. 시킨 일이 있어서 뭐라 할 수도 없는 처지라 순순히 미리 만들어 둔 디코 길드 단체 통화 방에 들어갔다.
[일욜님 하이요~!]
[A팀 다 왔다.]
“안녕하세요. B팀은?”
[저희는 rx님이랑 스카이님만 오면 돼요. 무기만 수리하고 온대요.]
통화 방에 들어가자 A팀 대표인 마하와 B팀 대표인 영화별론가가 이어서 브리핑을 해 왔다.
본래 우리는 길드원을 두 팀으로 나눈 뒤에 각 팀 대표만 마이크를 쓰고 나머지 팀원들은 듣기만 한다. 수월한 브리핑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보통 B팀 대표는 좋은날씨가 맡았는데, 오늘은 영화별론가가 맡았다. 좋은날씨 또한 여여랑처럼 내가 부탁한 일을 하기 위해서 B팀이 아닌 마하와 같이 A팀으로 들어갔다.
[뭐야. 목소리 왜 그래?]
“어?”
[뭔가 이전하고 좀 달라졌는데.]
헤드셋이 달라졌다는 걸 유진호가 예리하게 눈치챘다.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말 꺼내기는. 유진호의 지적을 들은 영화별론가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요? 전 잘 모르겠는데.]
“헤드셋을 바꿔서 그런 걸 거야. 일이 좀 있어서 쓰던 게 아니라 다른 걸 쓰고 있거든.”
[고장 났냐?]
“음… 그런 비슷한…….”
차마 서정연의 집에 와 있다고 설명할 수는 없어서 대충 둘러댔다.
물론 유진호는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설명해 줘도 되긴 하지만… 지금은 게임에 집중할 때였다. 나중에 말해 주면 되겠지, 뭐. 유진호도 이해해 줄 거다.
[이야, 근데 마하 님은 그걸 어떻게 바로 알았대요? 둘이 친구라더니 진짜 친한가 봐여?]
영화별론가의 해맑은 말에 유진호가 어딘가 싸늘한 어조로 대답했다.
[알고 지낸 지 오래돼서. 이 새끼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그런 것도 딱 보면 알죠.]
“…….”
이해…해 주는 거 맞겠지? 몰려오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외면하며 분위기 환기를 위해 헛기침했다.
“크흠, 쓸데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rx님이랑 스카이님 왔어요?”
 
[길드] sky004: 예압
[길드] rxrx78: ㅈㅅㅈㅅ 왔음
 
[어나더도 슬슬 모이기 시작하네.]
유진호의 말에 시점을 정면으로 돌리자 반대편 진영에 모여든 어나더 길드원들이 보였다. 40명도 못 채운 우리와 달리 50명을 꽉 채운 어나더 길드는 벌써부터 모여든 길드원들로 북적북적했다.
 
[길드] 류페: 어억 징그러워ㅠㅠ
[길드] 야옹이라옹: 뭐가 저렇게 많아 ㅇㅅ;ㅇ
[길드] rxrx78: 쟤네 50명 다채웠나본데?
[길드] 아스타로트: 미췬놈들
[길드] 아스타로트: 50명 채운다고 좋은게 아닌건디요
[길드] sky004: 오히려 우리한테 이득임ㅋㅋㅋㅋ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아니
[길드] 저6천원있어요: 잘하는 애들 50명 모아오는것도 아니면서
[길드] 영화별론가: 사실상 우리한테 점수 퍼주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는거 아닌지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노퓨쳐한테 고맙긴 또 첨이네
 
나와 함께 길드 전쟁을 몇 번이고 해 온 길드원들도 어나더 길드 쪽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우리는 이토록 쉽게 아는 사실을 왜 노퓨쳐는 모르는 걸까. 분명 저놈도 서정연과 함께 지난 1년 동안 몇 번이고 전쟁에 참여했으면서.
 
[길드] 류페: 근데 흔적이 안보이네여??
[길드] 류페: 원래 대기할땐 맨 앞에 있지 않았나 일욜님처럼
[길드] sky004: 찐흔적이 아니라서 그런듯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ㄹㅇ뒤로 숨은거 아님?
[길드] 아스타로트: 허접인거 들통나면 안되니까 나서지 않을 듯
 
예전과는 다른 어나더의 포지션을 본 길드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칭범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노퓨쳐가 처음 계획 그대로 진행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만 잡으면 이길 수 있다는 건지, 아니면 이 전쟁을 진짜 흔적이 돌아왔다는 증거로 삼을 목적밖에 없는 건지.’
길드 전쟁이 잡힌 후에 오늘이 되기까지 나와 서정연은 틈나는 대로 부캐를 플레이하며 어나더 길드의 동태를 지켜봤다. 혹시 노퓨쳐가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지 알기 위해서.
하지만 노퓨쳐는 처음 계획대로 사칭범과 자신의 주변에 세울 길드원을 뽑는 것 외에는 따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도리어 진짜로 그 일차원적인 계획을 밀고 나가려는 건지, 실력 좋은 길드원들을 모두 자신과 사칭범 근처에 배치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우리도 처음 계획대로 간다.’
손을 맞잡아 스트레칭을 하며 옆에 앉아 있는 서정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처럼 헤드셋을 낀 채로 무표정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던 서정연이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돌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상대 길마는 신경 쓰지 말고 각자 포지션 지키면서 싸워요. 아마 뒤로 빠져 있을 텐데, 무리하게 잡으러 가지 말고.”
 
[길드] 아스타로트: ㅇㅋ
[길드] sky004: 네
[길드] 류페: 이제 시작인데 안 보이는 거면 일욜님 말대로 뒤로 빠져있는 거 맞나보네
[길드] 저6천원있어요: 그럼 그냥 잘하는 애들 누군지 신경 쓰지 말고
[길드] 저6천원있어요: 최대한 많이 죽이면 되나요?
 
“네. 우리는 깊게 파고들 필요 없어요. 앞에 보이는 놈들만, 그리고 그중에서 어리바리한 놈들만 골라서 최대한 빨리 죽여요. 게이지 채우는 데에 집중하면 됩니다.”
내 오더가 끝난 동시에 타이밍 좋게 붉은색 시스템 글씨가 화면에 떠올랐다.
 
곧 길드 전쟁이 시작됩니다! 준비하세요!
길드 전쟁이 시작됩니다!
 
5
4
3
2
1
킬 포인트를 모아서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와아아, 하는 요란한 함성과 함께 적 진영을 가로막고 있던 실드가 사라졌다. 나는 돌진기를 사용하며 그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앙, 내 캐릭터가 지나가는 발밑으로 어나더 측 원거리 딜러들이 쏘는 스킬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무빙으로 피하며 제일 먼저 중앙 경계선에 도착했다.
예전이었으면 내가 도착할 때쯤에 진짜 흔적, 서정연도 나를 따라 도착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연하늘색의 장발이 아닌, 새하얀 갑옷을 껴입은 탱커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중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건 나도 아주 잘 아는 상대였다.
‘라임나무.’
예상대로 시작하자마자 날 쫓아왔군. 날 향해 휘둘러지는 대검을 패링(Parrying. 타이밍에 맞춰 상대 공격을 쳐 내는 행동. 보통 반격이나 완전 회피로 파생되어 활용된다.)으로 쳐 낸 뒤에 우선 거리를 벌렸다.
미안한데 오늘 네 상대는 내가 아니야. 내가 옆으로 빠지면서 그 빈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웠다.
 
[전체] 나의라임나무: ?
[전체] 나의라임나무: 아
 
나 대신 싸울 상대를 본 라임나무의 캐릭터가 당황한 것처럼 버벅거렸다. 그럴 만하지. 나는 타이밍 좋게 도착한 유진호에게 말했다.
“적당히 상대 좀 해 줘.”
[하아, 탱커는 때리는 맛도 없는데.]
유진호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며 스킬을 차징했다. 그걸 보며 나는 애초에 정해 둔 목적지로 계속해서 뛰었다.
 
[전체] 나의라임나무: 아니;; 아 마하님ㅠㅠ
[전체] 나의라임나무: 원딜이 탱커를 막으시면 안되는데여ㅠㅠㅠ
 
차마 유진호를 때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라임나무가 한탄하는 채팅을 쳤다.
맞는 말이긴 했다. 원거리 딜러와 유독 상성이 좋지 않은 직업이 바로 탱커였다. 특히 팔라딘처럼 대미지가 어느 정도 나오는 딜탱이라면 더더욱 위험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부분도 신경 안 쓰고 유진호를 보냈겠냐?’
라임나무 캐릭터와 마하 캐릭터 사이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와 꽂혔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종결 창. 창의 주인인 좋은날씨가 돌진기를 쓰며 가뿐하게 날아왔다.
 
[전체] 좋은날씨: 탱커 사냥 합쉬다~^^
 
부캐로 소울스타를 플레이하며 라임나무와 호흡을 맞췄던 좋은날씨가 이제는 적이 되어 전장에서 만났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