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서 손해 본 적 없지 않냐는 말이 엄청 재수 없었지만, 사실이긴 해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확실해? 이거 진짜 좋은 기회인 거 알지?”
[당연하죠. 확실하니까 걱정하지 마요.]
“…알겠어.”
우리 중에서 노퓨쳐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서정연인 것도 맞았으니 이번에는 맡길 수밖에 없었다.
괜한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채팅으로도 따로 대답했다.
[파티] Z10N: ㅇㅇ
[파티] Z10N: 우린 노퓨쳐랑 별로 안친하니까
[파티] Z10N: 이번엔 흔적한테 맡겨
[파티] haewo1: 저도 친한건 아닌데
[파티] 빚과송금: 아ㅠ하긴요
[파티] 빚과송금: 흔적님이랑 노퓨쳐랑 친구니까
[파티] haewo1: 친구아님
[파티] 쥐안에든독: ㄹㅇ흔적님 파트너였으니까
[파티] 쥐안에든독: 우리보다 훨씬 잘알듯
[파티] haewo1: 파트너아님
[파티] 빚과송금: 노퓨쳐 전문가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중요한 일은 전문가한테ㅇㅇ
[파티] 쥐안에든독: 흔적님 믿습니다
[파티] haewo1: ?ㅋㅋ
[파티] Z10N: 그래
[파티] Z10N: 친하다니까 믿어보자고
[도해준 씨.]
채팅을 치자마자 헤드셋 너머로 날 부르는 서정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한 번밖에 안 했는데.”
아무리 서정연이라고 해도 노퓨처랑 친하다는 소리는 듣기 싫은 모양이다. 꼴좋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재빨리 입을 손으로 가렸는데 용케 웃음소리를 들은 서정연이 나를 따라 픽 웃으며 말했다.
[웃으니까 좋긴 한데, 이따 화내지나 마세요.]
“내가 화낼 만한 일을 벌이겠다는 의미냐?”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찝찝하게 뭐야, 이 자식.
눈가를 좁히는 그때, 기다리던 노퓨쳐가 드디어 나타났다. 숲 입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에게 곧장 달려온 노퓨쳐가 인사를 보내왔다.
[전체] 노퓨쳐: 안녕하세요 지온님ㅎㅎ
[전체] haewo1: 안녕하세요
‘정말 괜찮은 거겠지?’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서정연이 알아서 노퓨쳐의 인사를 받아 줬으니 아예 이대로 자연스럽게 뒤로 빠지면 될 것 같았다.
정말로 노퓨쳐가 여기까지 찾아오자 놀란 기색인 파티원들도 나처럼 끼어들지 않고 대신 파티 채팅으로 말했다.
[파티] 빚과송금: 이런식으로 노퓨쳐 만나는건 첨이네
[파티] 쥐안에든독: ㄹㅇ맨날 길전때만 만났는데
[파티] 쥐안에든독: 생각해보니까 노퓨쳐는 다른데 돌아다닌걸 못봤음
[파티] 빚과송금: 레이드가면 어나더 길원 종종 마주쳤는데
[파티] 빚과송금: 노퓨쳐는 만난적 없는듯?
[파티] 쥐안에든독: 일욜님은 만난적 있어요?
[파티] Z10N: ㄴㄴ없음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노퓨쳐를 만난 건 나도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노퓨쳐를 마주한 기억 자체가 많이 없었다.
노퓨쳐보다는 흔적을 자주 만났지. 흔적은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와서 훼방을 놓고는 했으니까… 그럼 노퓨쳐는 뭐지? 1년이나 어나더 길드와 전쟁을 해 왔는데 부길마인 노퓨쳐와는 교류 한번 없었다니.
‘너무 부자연스럽잖아.’
노퓨쳐와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한 손에 꼽힌다. 그마저도 한 번은 저번에 가짜 흔적을 떠보기 위해 광장으로 찾아갔을 때고.
‘흔적을 신경 쓰느라 노퓨쳐에게 너무 관심이 없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알아봐 놓을 걸 그랬다. 혹시 우리 말고 다른 길드원은 노퓨쳐와 마주친 경험이 있을지 모르니 나중에 마하에게 확인해 보라고 얘기해 놔야겠다.
[전체] 노퓨쳐: 아ㅎ
[전체] 노퓨쳐: 헤우? 혜우1님? 맞나요?
[전체] 노퓨쳐: 지온님이 파장이신줄 알았는데
[전체] haewo1: 지온님은 지금 잠깐 일이 있어서 잠수세여
[전체] haewo1: 왜부르시는지?
[전체] 노퓨쳐: 아 부른게 아니라
[전체] 노퓨쳐: 설명 못들으셨나보네ㅎㅎ
[전체] 노퓨쳐: 님들 길드 들어오실래요?
[전체] haewo1: 길드요?
[전체] 노퓨쳐: 네네
[전체] 노퓨쳐: 님들한테 티거 길드가 계속 시비걸던데
[전체] 노퓨쳐: 우리 길드 들오시면 잘 지켜드릴게요ㅎ
[전체] 노퓨쳐: 지온님한테도 물어봤는데 지온님은 오케이하셨고
[전체] 노퓨쳐: 님들 의견 묻고싶대서 제가 직접 온거에용ㅎㅎ
‘이 새끼 봐라?’
오케이를 하긴 누가 오케이를 해. 간도 크네. 내가 이미 설명 다 해 놨을 수도 있는 건데.
[전체] haewo1: 지온님은 그런 얘기 안하던데?
[전체] 노퓨쳐: 저 온다는것도 모르셨으니까 그럴만하졍
[전체] 노퓨쳐: 암튼 님들도 ㄱㅊ으시면 우리 길드 오세요
[전체] 노퓨쳐: 렙업도 도와드릴게요ㅎㅎ
[전체] 노퓨쳐: 근데 다른분들은 아무말도 안하시넹
[전체] haewo1: 다 잠수중이라
졸지에 사람 불러 놓고 잠수 타 버린 비매너 파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와서 끼어들 수도 없고.
[파티] 빚과송금: 이거 진짜 괜찬은거 맞죠?
[파티] 쥐안에든독: 나만 뭔가 불안함?ㅋㅋㅋㅋㅋ
[파티] 빚과송금: ㄴㄷㅋㅋ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쎄한데..
나 또한 여여랑과 같이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가장 큰 걱정은, 혹여라도 노퓨쳐가 서정연이 흔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거였다. 어쨌든 둘이 같이 1년간 길드를 이끈 만큼 노퓨쳐도 흔적이 익숙할 텐데, 채팅 말투나 행동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거나 의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눈치가 빨라 보이지 않긴 한데.’
그래서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서정연의 부탁도 받아들인 거지만… 팔짱을 낀 채로 불안하게 모니터를 바라봤다.
[전체] 노퓨쳐: 아하
[전체] 노퓨쳐: 길드오는건 언제든 환영이니까
[전체] 노퓨쳐: 잠수 끝나면 친구들이랑 상의해보세요ㅎ
[전체] 노퓨쳐: 대답은 천천히 주셔도 돼요~
[전체] 노퓨쳐: 지온님이랑 친추했으니까 갠메주시면 길초 바로 보내드릴게요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나는 끝나 갈 때쯤이 되어서야 조금 안심했다.
‘생각보다 무난한데?’
서정연이 나서서 자기가 맡겠다고 한 탓에 쓸데없이 너무 긴장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쉰 그 순간이었다.
[전체] haewo1: 아~
[전체] haewo1: 근데 노퓨쳐님
[전체] 노퓨쳐: 네?
[전체] haewo1: 제안은 감사한데
[전체] haewo1: 우린 이미 노리고 있는 길드 있어서요
[전체] 노퓨쳐: ?
[전체] 노퓨쳐: 어딘데요?
[전체] haewo1: 요일 길드요^^
“뭐?”
[전체] haewo1: 길드 랭킹 찾아보니까
[전체] haewo1: 요일? 여기가 1위더라구영
[전체] haewo1: 그래서 우린 다 여기 들어가려고 했어요
“이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디코 통화가 연결되어 있어서 내 외침을 들은 게 분명할 텐데도 서정연은 싹 무시하고 계속 채팅을 쳤다.
[전체] haewo1: 어나더 길드 방금 검색해보니까
[전체] haewo1: 순위도 별로 안높고...
[전체] haewo1: ㅈㅅ해요
[전체] 노퓨쳐: ?ㅋㅋ;
미치겠네, 진짜!
너무 경악스럽고 기가 막혀서 말문이 턱 막혔다. 목덜미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떠는 사이에 노퓨쳐가 대답을 해 왔다.
[전체] 노퓨쳐: 요일길드는 지금 길원모집 안하는거로 아는데?
[전체] 노퓨쳐: 그리고 저런 곳은 님들같은 뉴비 안데려가요~ㅋㅋ
[전체] haewo1: 만렙찍으면 또 모르죠
“아니, 진짜……!”
끝까지 요일 길드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서정연의 행동에 더는 참지 못한 내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내가 미처 끼어들기 전에 노퓨쳐의 채팅이 이어서 올라왔다.
[전체] 노퓨쳐: ㅎㅎ;
[전체] 노퓨쳐: 모르는게 많으시네..
[전체] 노퓨쳐: 지금 만렙 찍고도 길드 못들어간 유저가 한트럭인데;;ㅋㅋ
[전체] 노퓨쳐: 길드는 기본적으로 가입 기간이 따로 있어요;
[전체] 노퓨쳐: 그때 아니면 못 들어가요ㅋ
[전체] haewo1: 아 그래여?
[전체] 노퓨쳐: 우리 길드니까 이렇게 제안도 주고 하는거지
[전체] 노퓨쳐: 딴덴 얄짤없어요
[전체] 노퓨쳐: 그러니까 가능성 없는곳에 기대걸지 말고
[전체] 노퓨쳐: 우리 길드 고민해보세요ㅎㅎ..
[전체] 노퓨쳐: 지온님은 긍정적인것 같으니깐여
[전체] haewo1: ㅋㅋ
[전체] haewo1: ㅇㅋ요
그걸 끝으로 노퓨쳐는 세이브 포인트로 이동했는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금까지 노퓨쳐가 서 있던 자리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파티] 쥐안에든독: ㄷㄷ
[파티] 빚과송금: ㅓ....
[파티] 쥐안에든독: 음...
[파티] 쥐안에든독: 일욜님?
[파티] 쥐안에든독: 이거 정말 ㄱㅊ은거 맞나요..??
[파티] 빚과송금: 제가보기엔 망한거같은데...
[파티] 쥐안에든독: 그냥 망한게 아니라
[파티] 쥐안에든독: ㅈ망한거같은뎈ㅋㅋㅋ
상황을 지켜보던 좋은날씨와 여여랑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는지 채팅을 보내는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나는 멍하니 모니터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하, 속에서부터 올라온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서정연 이 개새끼야…….’
일단 하나는 확실했다. 겨우 얻어 낸 기회를 서정연이 뻥 하니 차 버렸다는 거다. 그것도 다신 붙잡지 못할 만큼 아주 멀리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