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The And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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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성과 도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먼저 할 건지, 시선을 주고받다가 해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글쎄요. 사실 스캔들이랍시고 터졌다는 게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또 막상 설명하려니 조금 애매하네요.”
“스캔들이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김도형 씨에게 관심을 드러낸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냉랭한 분위기로 현장을 어렵게 만들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뿐이었죠.”
“김도형 씨도 마찬가지고요?”
“네. 아무래도 형과 헤어진 사이니까. 스태프들이나, 다른 배우들이 눈치 아닌 눈치도 많이 봤을 거예요. 그래서 친구로 지내는 최유찬 씨랑 조금 더 붙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미안했다. 유찬은 그런 의미로 제 옆에 붙어 있었던 게 아닐 텐데.
하지만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괜한 말을 한다면, 그의 노력에까지 먹칠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흥미진진해지는데요. 그래서, 정해성 씨가 먼저 김도형 씨에게 어필을 했다?”
“네. 맞습니다. 대본 리딩을 하던 그쯤부터. 정확히는 우리의 첫 스캔들 비슷한 기사가 터졌을 때부터, 김도형 씨를 의식하기 시작했죠.”
“지난번에 그 메시지 있잖아요? 큰 화제를 불러왔었던. 그것도 사실인가요?”
“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읽고 무시했던 적도 있어요.”
“엄청 상처받았습니다. 저.”
 
한 손으로 가슴을 붙잡고 쓰린 표정을 짓는 해성의 모습에 MC와 스태프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그 백화점 사진은 뭔가요? 어디에서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그건 이전 반박 기사에 냈듯, 우연히 만난 겁니다. <별을 담은 잔>에 출연한 배우진들 몇이 함께 백화점에 갔고요.”
 
뒤늦게 알게 된 건, 당시 소연도 그 백화점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하지 않았는데, 볼일이 있어 잠시 들렀다가 맘먹고 쇼핑을 즐겼다고 했다.
덕분에 나 감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짜낸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 수 있었다.
 
“소연 씨 같은 경우는 따로 쇼핑을 즐겼고, 저는 잠시 다른 곳에 들렀다가 느지막이 합류하던 차였어요. 먼저 돌아가던 그분과 우연히 마주친 건데… 글쎄요. 갑자기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할 이야기요? 혹시 그 발언이 스캔들과 이어진 걸까요?”
“아니요, 절대 스캔들과 관련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촬영 잘 부탁한다, 후배로서 선배에게 하는 통상적인 인사치레 같은 말이었죠. 그분이 주장했던 것처럼 제게 뭐 부탁을 했다, 그런 적은 없었어요.”
“사진 분위기가 너무 절묘해서 그럴싸하게 보인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네. 맞습니다. 넘어질 뻔하던 분을 잡아 준 것뿐인데, 사진이 그렇게 찍힌 게 신기하기는 하네요.”
 
하하. 넉살 좋게 웃고 넘어가는 해성의 모습에 도형은 제 손을 꽉 붙잡았다.
한고비를 넘겼다. 이제 저만 잘 넘긴다면, 저들에게 따라 오는 임하경이란 의문점은 해소될 게 분명했다.
 
“그럼, 도형 씨는요? 도형 씨도 사진이 찍혔던데. 비슷한 맥락인가요?”
 
태란의 질문이 이어졌다.
도형은 고개를 들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가 해성 선배님 생일쯤이었는데, 그걸 축하해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선물 고르는 걸 도와드렸는데, 감사의 표시로 넥타이를 받은 것뿐이고요. 원래 넥타이는 턱 아래에, 이렇게 대 보잖아요.”
 
마치 넥타이를 제 목 아래에 대 보는 것처럼 손짓하는 그 모습에 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그냥 그랬을 뿐인데 찍힌 사진은 꽤… 네, 그랬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유찬 씨랑도 많이 웃었어요. 사진 정말 잘 찍는다고요.”
“생각을 또 그렇게 해 볼 수도 있겠네요. 사진을 정말 잘 찍는 분이다. 일리 있어요.”
 
그제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게 마냥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 건 분명했다. 이미 끝난 일을 또 들먹거린다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저도, 해성도 당한 게 있는데 이 정도면 약과지.
 
“참 탈이 많았던 것 같네요. 다시 한번 정리하면, 김도형 씨와 관련된 주장은 모두 억측이고, 정해성 씨는 그런 김도형 씨가 너무 좋아서.”
“열심히 어택하는 중이었다.”
 
해성이 태란의 말에 받아치자, 태란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그 어택이 언제부터였는지, 그게 가장 궁금한데요. 사실 다른 이야기들이야 이미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방금 전 대본 리딩 때부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부터였을까요? 해성 씨가 도형 씨에게 본격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시기요.”
 
해성이 도형의 눈치를 봤다. 으음, 길게 고민하던 해성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입을 뗐다.
 
“처음 자각을 한 건 그때쯤이었지만. 사실, 저는 대본 리딩을 하기 전부터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심술이었죠. 최유찬 씨랑 제가 붙어만 있어도 눈에 불을 켜는 심술.”
“이건 또 색다른 해석인데요. 어때요, 해성 씨. 인정하세요?”
 
태란이 너스레를 떨며 묻자, 해성은 도형을 힐긋거리며 크게 웃었다.
 
“네. 맞습니다. 심술 좀 부렸어요. 그땐 유찬 씨가 우리를 도와주려고 일부러 그런 줄도 모르고, 둘이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사실 그런 이야기가 이리저리 많이 퍼지기도 했었죠.”
“아무래도 저희가 극중에서는 연인을 연기하다 보니까요. 정말 리얼하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를 많이 했던 것도 있어요.”
“역시, 배우들이군요. 그럼 정해성 씨가 그 부분에서 심술을 부렸고. 다음이… 드라마 촬영 시작쯤일까요?”
 
태란의 질문에 도형과 해성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 채 웃음을 터뜨린 두 사람의 모습에 태란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해성 씨가 도형 씨에게 어필을 시작했던 건 드라마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난 뒤부터다?”
 
해성과 도형이 슬쩍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수줍게 웃는다. 태란 또한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두 분 지금 눈 마주치고 수줍어했습니다. 괜히 같이 떨리는 기분이에요. 그쵸?”
 
도형과 해성은 입가에 걸린 미소를 거두지 못한 채였다.
한참 망설이던 중, 도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그때부터가 맞아요. 사실 조금… 긴가민가한 부분도 있었는데.”
“그건 제 불찰입니다. 확실하게 전해야 했는데, 저조차도 제 감정을 확신하지 못했거든요.”
“이건 또 의외인데요. 그런 면에서는 능숙할 줄 알았어요. 그럼 도형 씨는요, 정해성 씨가 그렇게 마음을 표현했을 때 어땠나요?”
“한 번에 선배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물론 그때도 좋은 감정으로 선배님을 생각하고 있던 건 맞지만. 어렵더라고요. 다시, 라는 말이.”
 
태란은 그 어떤 추임새도 넣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해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시선을 내렸다.
 
“사실 선배님과 헤어진 직후에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단순히 저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떠돌아다니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랑했으니까.”
“…네, 맞아요. 그래서 조금 더, 이겨 내는 게 힘들었어요.”
 
도형이 씁쓸하게 웃자, 태란 역시 흐뭇하게 웃으며 그를 지켜봤다.
과거를 돌이키며 말할 수 있는 건,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이겨 낸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제가 직진했죠. 김도형 씨에게. 물론, 싫다는 사람 붙잡고 막무가내로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걸 꾸준히 보여 줬어요.”
“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요?”
“뭐, 어떤 식이랄 게 있나요. 과장되게 꾸미는 건 진실성이 없고. 있는 그대로 보여 줬을 뿐입니다.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곁에서 맴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 계속해서 곁을 맴돌았고요.”
“정말인가요, 도형 씨?”
“네. 선배님 같지 않은 모습에 꽤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형의 대답에 태란은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 손에 담긴 카드를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연이어 질문이 쏟아지고, 해성과 도형은 곧잘 대답하며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사실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가장 놀랐던 게, 해성 씨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포기할 만큼 도형 씨를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이었을 텐데요.”
“네. 맞습니다.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정도. 딱 그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입니다.”
“정말, 진짜 모든 걸 다?”
“네. 정해성이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것들을 모두 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은퇴 선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김도형 씨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도형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쉽지 않은 일이라서, 그렇게 말을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달이 됐어요. 고맙고요. 다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연기하는 선배님만큼 멋있는 모습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부러움이 섞인 야유가 터져 나왔다. 몇은 박수를 쳤고, 몇은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지언정, 도형과 해성은 이 순간이 무척이나 특별하고 행복했다.
비즈니스가 아닌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음을 드러낸 도형도.
더는 자신이 가진 것에 얽매이지 않은 채, 제 감정에 솔직해진 해성도.
둘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손을 힘껏 부여잡았다.
몇 가지 질의응답이 더 이어지고, 촬영도 어느새 끝에 다다랐다.
 
“대한민국 세기의 커플. 정해성 씨와 김도형 씨의 재결합 소식을 알리기 위한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아무쪼록 이번에는 별 탈 없이, 두 분의 굳건한 사랑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저, 은태란이 응원하겠습니다. 바쁜 시간에 이렇게 출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태란의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해성과 도형도 머쓱한 웃음을 머금은 채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엔딩 음악이 흘러나오고, 태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전해지는 눈빛이 제법 따뜻했다.
쏟아지는 스태프들의 갈채를 받으며 해성과 도형 역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또 한 번, 산을 넘어 둘만의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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