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The And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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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정해성·김도형, 재결합한다.]
[<별을 담은 잔> 숱한 역경을 헤치고 드디어 방영 시작.]
[세기의 스캔들, 정해성과 김도형의 영향으로 <별을 담은 잔> 승리의 잔 움켜쥐나.]
[스캔들 싸움에 몸살. 나태석 감독 신작, <별을 담은 잔> 드디어 정체가 공개된다.]
 
연달아 터진 스캔들의 끝이 결국 두 사람의 재결합이라는 소식에 인터넷은 끝없이 달아올랐다.
거기에 <별을 담은 잔> 티저가 공개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드라마로 쏠렸다.
댓글은 모두 호평이었다. 기대 이상의 연기력과 영상미가 돋보인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제작사는 특별히 <별을 담은 잔> 출연진들과 스태프들을 모두 초청해 첫 방송을 함께 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물론, 그 자리에 기자나 방송사는 없었다. 오롯이 이 순간만을 위해 달려온 이들을 초대한 자리였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1시간 전.
 
‘스케줄 끝나고 바로 갈게. 먼저 가 있을래?’
 
해성의 연락에 도형은 곧장 알겠다고 대답했다.
우태와 함께 도착했을 땐, 배우 몇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쉽지만, 그 자리에 유찬은 없었다. 바로 이어지는 화보 촬영이 해외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도형 씨.”
 
그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넨 건 소연 쪽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 그녀는 도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해요. 방송 봤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어쩐지 낯부끄러웠다. 모두에게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결과인데, 정작 잘 봤다는 말이 왜 이렇게 민망하게만 느껴지는 걸까.
 
“정해성 씨, 많이 달라졌더라. 보고 깜짝 놀랐잖아.”
“…선배님이 보기에도 그렇죠?”
“응. 뭐, 그래도 난 여전히 마음에 안 들지만.”
 
새침하게 말하던 소연이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보기 좋다는 말을 남긴 뒤, 팔을 두어 번 꾹꾹 주물러 줬다.
조금 있다가 보자며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에 도형은 잠시 망설였다.
할 말이 있는데, 지금 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선배님.”
 
결국, 몇 걸음 가지 않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소연이 살짝 뒤돌아 그를 바라보자, 도형이 잰걸음을 옮겨 그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 모습에 소연이 조금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응? 뭐가,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니요, 많이 해 주셨어요.”
 
도형은 허리를 세워 소연을 마주했다.
어떤 것부터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하나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사전 미팅 때, 제 편 들어 주셨잖아요. 대본 리딩 때도 두 사람 사이에서 곤란해하지 말라고 종종 저 불러 주셨고. 촬영하는 동안 선배님께서 해 주던 조언들, 이야기들. 그리고 절 위해 해 주셨던 행동까지 모두 감사했어요.”
“…….”
“그리고 가장 감사한 건…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 묵묵히 응원의 말을 던져 주신 일이-”
“아니에요.”
 
가만히 듣던 소연이 도형의 말을 딱 잘라 끊었다.
어깨 위에 덮고 있는 새하얀 재킷과, 팔짱을 끼고 있는 흰 피부가 돋보였다.
도형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마주했다. 새카만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소연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말 들을 필요 있나? 내가 좋아서 한 거고,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일들이에요. 고맙단 말 듣자고 한 게 아니라.”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할 말을 찾고 있는데, 소연이 도형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단단하게 살아가요. 도형 씨 속, 여리고 물러 터진 게 매력인 거 잘 아는데. 그게 상황과 장소에 따라선 약점이 될 수도 있어. 나는, 도형 씨가 그걸 내보이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여리고 물러 터진 속이지만 함부로 찌르고 상처 줄 수 없다는 걸 보일 수 있는 힘. 내 말, 알아들었죠?”
 
그녀의 말을 한참 곱씹다가, 도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은 그럼 됐다는 말을 남긴 채 다시 뒤돌아 앞으로 걸어갔다.
저 앞에 있는 원로 배우와 인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가만히 주먹을 쥐어 본다.
 
‘나를 내보이는 힘.’
 
어려운 말이지만, 그렇다고 모를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쩐지 마음이 꽉 차오르는 기분이다.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내고, 그들의 진심을 느끼는 일은 언제나 감사하다.
숨을 들이마신다. 조금 전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뒤를 돌았다.
어쩐지, 앞으로의 일들도 모두 잘 풀릴 것만 같았다.
 
***
 
[<별을 담은 잔> 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 기록!]
[<별을 담은 잔> 첫 화, 시청률 16% 기록했다.]
[정해성·전소연·김도형·최유찬의 파급력. <별을 담은 잔> 연기력, 스토리, 영상미까지 두루 갖춘 드라마]
 
첫 방송 이후, <별을 담은 잔>의 호평이 쏟아졌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였고, 영상미가 좋았다. 배우 간의 호흡과 케미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반면에, 다음 회를 궁금하게 만드는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찬사들에 도형은 잠이 덜 깬 눈으로 핸드폰을 보면서 히죽거렸다.
반도 채 뜨지 못한 눈으로 핸드폰을 보는데,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해성이 고개를 돌리며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웃고 있지. 질투 나게.”
“어제 형이랑 같이 못 본 드라마, 최고 시청률 찍었대요.”
“…나랑 같이 못 본 드라마? 그런 게 있었나.”
 
잠에서 덜 깬 것이 분명했다.
스케줄이 끝나면 달려온다더니, 토크 쇼를 두 번이나 출연해 뱉은 이야기가 파급력이 컸던 모양이다.
뒤풀이에 붙잡힌 덕분에 드라마가 끝나고도 3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를 집에서 볼 수 있었다.
술에 만취가 된 채로 들어온 덕분에 꽤 뜨거운 밤을 보냈지.
 
“내가 본 건… 죽겠다고 울던 김도형밖에 없는데.”
 
픽 웃으며 말하는 해성의 모습이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괜히 그가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키득거리며 웃던 해성이 팔을 뻗어 도형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곤 가까이 당겨 이마에 연달아 입맞춤을 남겼다.
 
“그리고 또, 좋은 이야기는?”
“형이랑 소연 선배 케미가 좋았다.”
“그거 말고.”
“나랑 유찬이 케미가 기대된다?”
“그건 더 말고.”
“더 말고는 무슨 말이에요.”
“몰라, 잠이 쏟아지니까 더 좋은 말로.”
 
정말 막무가내다. 도형은 핸드폰을 베개와 베개 사이에 끼워 두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조금 전 읽었던 기사 내용과 댓글들을 상기하다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김도형의 연기가 돋보였다. 지난 작품보다 발전된 모습이 다른 배우들의 열연을 더욱 안정적으로 뒷받침해 준 것 같았다.”
 
도형의 말을 가만히 듣던 해성이 픽 웃는다. 커다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이번에는 입술을 맞물리고 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맞는 말 했네.”
“형이 봐도 그래요?”
“나는 예전에도 말했었는데. 연기 많이 늘었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고, 다르게 말해 줘요.”
“어리광이 늘었어.”
“누구 덕분에.”
 
한마디도 지려고 들지 않는 도형의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소리 내어 웃던 해성이 다시 도형을 힘껏 끌어안고, 머리칼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순간이 가슴 시릴 만큼 행복하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
저를 보며 환하게 웃고 조잘거리는 도형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늦은 후회는 언제나 미련하지만, 그만큼 얻어 가는 게 많다.
두 번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지. 다시금 저를 다잡게 된다.
 
“호흡도 좋아졌고, 감정 처리도 깔끔하고. 딕션도 또렷해졌고. 캐릭터 이해도도 높아져서, 상대가 어떤 식으로 받아칠지 미리 계산하기보단 함께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생겼어.”
“…응. 나 많이 노력했어.”
“그게 두 눈에 보이니까. 나도, 전소연 씨도, 최유찬 씨도.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었던 거야. 유진으로, 혜아로, 온영이로. 드라마를 무사히 찍을 수 있었던 건….”
 
말을 하면서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연기를 하던 도형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랬었지, 하게 되는 일들.
 
“가장 많은 배역과 얽혀 있는 김도형이 잘했기 때문이야. 관계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시켜야 하고, 천천히 빌드업되는 감정을 잘 연기해 줘서. 예현이 그 자체를 네가 잘 소화했기 때문에.”
 
도형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얼마나 무던히 노력했는가.
벅차오르는 마음을 애써 갈무리하며 도형의 등을 토닥였다.
 
“고생 많았어. 그리고 고마워. 힘든 와중에도 네 장점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갈고닦아 줘서.”
 
진심 어린 해성의 말이 도형의 코를 시큰하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마음을 다잡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응. 맞아. 잘했다. 김도형.”
 
또 넙죽 받아서 자화자찬을 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좀처럼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졸음이 점점 제게서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서서히 정신이 또렷해지고, 오늘이 쉬는 날임을 깨달았을 때.
해성이 도형의 머리칼 위로 잘게 입맞춤을 남겼다.
 
“오늘 스케줄 있어?”
“없어요.”
“그럼 오늘은 자축 파티나 할까.”
“파티?”
 
그의 품에서 몸을 떼어 낸 도형이 해성과 눈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요리를 좀 해 볼까 하는데.”
 
도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요리도 할 줄 알았어요?”
“할 줄 알게 됐지. 혼자 있을 때 굶어 죽지 않으려고.”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가 요리를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하지만 기분이 좋은 건 별개의 이야기다. 저를 위해 요리를 해 준다는 사실에 잔뜩 들떴다.
그게 축하를 곁들인 일이라고 해도.
 
“응. 해 줘요. 뭐 해 줄 건데요?”
“할 줄 아는 건 파스타뿐이라.”
“파스타 좋아해요.”
“그리고… 좋은 와인이 하나 있으니까. 그것도.”
“샐러드도 있으면 좋겠다.”
 
조잘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도형의 모습에 해성은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어디선가 들었던 ‘소확행’의 본뜻을 떠올리자, 마음이 또 한 번 간질거렸다.
그래, 그러자. 짧게 대답하면서도 목소리에는 그 여운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어느새 도형의 말이 줄어들고,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맞물렸다.
그들의 머리 위로 반짝거리는 햇살이 넘실거렸다. 꼭, 앞으로 걸어갈 길마저도 따뜻하고 행복할 거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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