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당연한 건 없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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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이라고 하던데.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말이 틀렸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바라보는 내내 해성의 미간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최유찬 김도형. 두 사람의 이름을 붙여 검색하자마자 쏟아지는 기사와 글들이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성혁과 경수가 베타라서 다행이지, 만약 알파나 오메가 둘 중 하나였더라면 지금쯤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났을 법했다.
날카로워지는 신경만큼이나 페로몬이 이리저리 날뛰는 게 느껴졌다.
 
<최유찬 배우와 김도형 배우의 끈질긴 인연>
 
한 블로거가 올린 글을 읽다 보니 점점 머리가 지끈거렸다.
데뷔 때부터 유달리 친분이 두터웠고, SNS에는 종종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맛집 투어, 당일치기 여행.
때로는 소소하게 영화를 보거나 당구를 치는 여가 시간까지 함께 즐겼다.
그 대목에서 해성은 자신의 기억력을 한참이나 원망해야만 했다. 아니, 유찬의 말마따나 자신이 도형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일지도 모르지.
핸드폰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 보면 도형의 SNS는 제대로 들어가 본 적도 없었다.
애초에 그의 계정이 있다는 걸 성혁에게 전해 들었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겠지.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다가, 몸을 숙여 조수석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형.”
“아, 깜짝이야.”
 
누구와 연락을 하고 있던 건지, 핸드폰을 제 쪽으로 끌어안은 성혁이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해성을 흘겨보았다.
 
“연애해?”
“연애할 시간이 있겠냐? 왜, 뭔데.”
“연애하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그럴 시간이나 좀 있었으면 좋겠다.”
 
이상하다. 중얼거리며 성혁을 흘기던 해성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좌석 간의 거리를 벌려 둔 것일 테지만, 이럴 땐 영 불편하기 짝이 없다.
 
“도형이랑 최유찬 씨. 친한 거 알고 있었어?”
 
정말 궁금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성혁의 당황스럽다는 표정. 그리고 땅이 꺼져라 터지는 깊은 한숨이었다. 안전벨트를 꽉 쥔 채 힘껏 늘린 그가 몸을 반쯤 돌려 턱짓했다.
 
“일단 제대로 앉아서 들어.”
“괜찮아.”
“너 인마, 잘못해서 얼굴이라도 다쳐 봐. 그럼 누가 욕을 얻어먹겠냐, 너? 아니면 경수?”
“도 실장님이겠지.”
“그러니까 앉으시라고.”
 
고집을 더 피웠다가는 된통 욕을 먹을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뒤로 기대 성혁을 빤히 바라봤다.
 
“걔들 친한 거 너만 모를 거야. 둘이 데뷔 동기잖아. 예능도 몇 번 같이 출연했고, 또 그거 뭐냐…. 그래, 무슨 경기하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지. 거기서 도형이는 운동 신경이 영 없는데, 유찬이는 운동 잘해서. 그걸로 케미 좋다고 난리였잖아.”
 
도형에게 운동 신경이 없다는 말에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도 몇 번이나 운동을 시작하려고 해 봤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아 포기하기 일쑤였지.
스쿼시라든가, 클라이밍 같은 종류는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게 편할 정도였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혼자 다니기를 바라기도 했고.
 
“둘이 결혼하기 직전에는 웹 드라마도 하나 같이 했지, 아마?”
“네, 맞아요. 웹툰 원작 드라마요. 흥행은 못 했지만, 두 사람 케미 좋은 거로 입소문 좀 탔을걸요? 그림체가 비슷하다고 다들 좋아하던데.”
 
경수까지 말을 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도형에 대해 정말 관심이 없었구나, 자신의 무심함을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제가 알던 도형이 아니라 꼭,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일순간, 저들이 헤어진 이유가 되었던 일련의 사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손끝이 따끔거렸다. 온몸이 빳빳하게 굳다가, 머리의 회전마저 멈추었다. 성혁이 무어라 말을 하는 건 알 것 같았는데, 그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는 대체 무얼 보고, 어떤 이유로 도형을 그렇게까지 끄집어 내린 걸까.
 
‘형이 나에 대해 뭘 알아요?’
 
울면서 제게 말했던 그 밤의 모습을 떠올렸다.
힘껏 주먹을 말아 쥔 모습, 벌겋게 부어오른 두 눈과 코끝. 그리고 절망으로 일렁거렸던 눈동자까지.
그날 도형은 처음으로 제게 원망을 쏟아 냈었다. 대체 저에 대해 뭘 아냐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았기에 그런 말을 함부로 하냐며 울음을 토해 냈으나.
 
‘나보다 너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도형아.’
 
그때의 저는 도형을 처참히 짓밟았다. 감히 자신해서는 안 될 이야기로 그를 옭아매고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게끔 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도형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던 그 찰나가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야, 듣고 있어?”
“…아니, 사실 하나도 안 들려.”
“이게 진짜 형이랑 장난하나.”
 
짜증 어린 성혁의 말투에도 해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만 두어 번 쓸어내리며 앓는 소리를 연달아 내뱉을 뿐.
속으로 삼키는 한숨이 쓰다. 헛헛하게 달아오르는 목 언저리를 붙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앞으로 고꾸라지듯 고개를 숙인 채 도형의 이름을 곱씹었다.
 
***
 
잔뜩 긴장한 숨을 뱉는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난 뒤, 촬영 전까지 잠시 대기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분명 푹신한 소파인데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놓고, 무릎을 꽉 그러쥐었다가 놓기를 몇 번.
 
“도형아.”
 
뒤쪽에서 다가온 우태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차가운 물 한 병을 어깨 위에 살짝 얹어 준 그가 반대쪽 어깨를 힘껏 붙잡아 준다.
 
“늘 하는 말, 잊지 마.”
 
어깨를 꽉 쥐는 손길에 도형이 푸스스 웃어 버린다. 우태의 손을 힘껏 붙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태의 말을 어떻게 잊을까.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잠재력을 지닌 사람. 늘 좋은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는데.
만약 여기서 자신감을 잃는다면 그 말을 믿고 굳건히 걸어온 지난날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누군가의 기대를 짓밟지는 말아야지. 자신이 낮아 보이고, 못나 보인다고 한들 그건 오롯이 저 혼자만의 생각일 테니까.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잔뜩 긴장되었던 속을 풀어 주었다. 할 수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니까. 멋진 사람이니까. 수십 번 곱씹으며 생각을 이어 가던 그즈음.
 
“너무 오래 기다렸죠, 미안해요. 카메라 하나가 말썽이라 그거 교체한다고 시간이 좀 걸렸어요.”
 
도형의 인터뷰를 싣기로 한 잡지사 직원이 걸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했다.
 
“인터뷰까지 마치면 화보를 촬영하게 될 거예요. 아마, 지금부터 인터뷰 시작하면 오후쯤 끝날 거니까. 의상 설명 듣고, 메이크업 다시 하고. 일몰부터 밤까지의 김도형 씨를 담을 건데, 이건 송 작가님이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송 작가님이요?”
 
다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이름이다. 송현우. 도형의 연예계 인생 중, 처음으로 촬영을 중단했던 사진 작가였다.
 
‘감정의 깊이가 없어.’
 
단호하게 말하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에 담긴 것도 없고. 애절함이 있든, 행복이 있든. 희망이 있든. 뭐라도 보여야 찍을 맛이 날 거 아니야.’
 
잔뜩 짜증을 내던 그는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현장을 박차고 나갔다. 듣기로는 이후에 위약금을 당당하게 물었다고 하던데, 또 차후에 들어 보니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앵글에 담을 마음이 들지 않으면 셔터조차 누르지 않는다는 사람.
이후, 잡지 촬영을 할 때면 도형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썼다. 그즈음에 연기를 해야 했던 역할로, 혹은 직전에 끝났던 인물의 얼굴로.
그러다 보니 점차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오롯한 김도형을 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어쩔 수 없지. 피사체가 될 수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그런 송 작가가 먼저 제안을 했단다. 손을 힘껏 맞잡으며 입을 달싹이던 그때, 인터뷰를 진행하는 직원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김도형 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자연스럽게, 김도형 씨 그대로를 보여 주면 돼요.”
 
그 말이 이토록 위로가 되는 말이었나. 아니, 어쩌면 지나온 시간이 가져다 준 깨달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껏 너무 많은 가면을 쓴 채로 살아와서, 오롯한 자신의 모습을 잃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기 때문에 해성 또한 저를 마주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어둠 속에 갇혀 지내는 내내 그런 고민을 했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충분히 거쳤으니, 이제는 깨달은 것들을 내보일 차례였다.
느려도 좋으니 확실하게 한 발을 내딛자.
실패한다고 두려워 말고, 실패를 생각하지도 말자. 스스로 몇 번이나 다잡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준비해 온 녹음기의 버튼을 꾹 누르는 것을 신호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김도형 씨. 너무 오랜만이에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아니, 사실 이런 질문도 좀 죄송하기는 해요. 잘 지냈다. 못 지냈다. 그런 말로 판가름할 수 없는 시간이었을 텐데. 무례했다면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모두가 물어보는데, 사실 거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항상 고민해요. 음… 어느 순간엔 너무 힘들어서 잘 지낸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고, 그 시간을 버티고 나니 조금 살 만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살 만한 시기를 지나서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언젠가 그 시간마저도 잘 지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 같다. 라고 대답할 수 있길 바라는 시기입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을까요?”
“순탄한 시기는 아니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잘 이겨 내고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그럼 그간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따로 취미가 생겼다거나, 특별히 하는 게 있다거나?”
 
인터뷰는 항상 벅차고 부담스러운 순간이었는데, 이렇게 편한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됐다. 잘 지내고 못 지내고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까.
길고 긴 인터뷰 시간이 끝날 즈음, 잠시 고민하던 기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마 이 인터뷰가 실릴 때면, 김도형 씨의 차기작. 그러니까 복귀작이죠? 나 감독님의 드라마 크랭크 인 소식이 들릴 텐데.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김도형 씨와 정해성 씨가 다시 만난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역시, 해성의 이야기가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도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죠, 맞아요. 작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기자의 입술에도 씁쓸하게 미소가 걸린다.
뒤이어 질문이 따라오지 않는 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일 테다.
 
“정해성 씨와 편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날 어떤 관계였고 무슨 일이 있었고를 떠나서 아무래도 제게는 선배님이시니까요. 서 있는 곳이 다른 것도 아마 한몫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결정적으로 불편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이잖아요. 배우가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 이외에 어떤 문제든, 어떤 감정이든 덧대지 않을 생각입니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우태는 고개를 슬쩍 돌려 눈을 질끈 감았다.
도형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으로서, 지금 이 대답이 그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장하다 김도형, 속으로 몇 번이나 그 말을 곱씹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는 도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도형은 말없이 그 손을 붙잡았다.
 
“앞으로의 행보 기대할게요. 김도형 씨”
 
별거 아닌 이야기일 텐데도 괜히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코끝이 시큰해지다가, 이내 그 열기가 가라앉는다.
메이크업까지 해 놓고 울 수는 없지.
힘껏 맞잡은 손을 놓기 무섭게 도형에게 다가온 건 송 작가였다. 그때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려 주듯, 여전히 눈빛이 매서웠다.
 
“오랜만입니다. 김도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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