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산을 넘고 나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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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담은 잔> 촬영 도중 사고 발생… 김도형 감싼 임하경 배우 중상으로 확인]
[말 많고 탈 많은 나태석 감독 신작. 조연 배우의 기지로 큰 사고 피했다.]
 
사고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단단히 입단속을 했음에도 인터넷은 연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퍼지는 악성 루머에 나 감독은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나태석 감독, 촬영장에 차별 대우 없어. 악성 루머 유포자 찾아내 강경 대응할 것.]
 
드라마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까 침묵하던 나 감독 또한 결국 입을 열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터졌다.
 
“진짜 엔드패치 미친 거 아니냐?”
 
우태는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땅에 내던지려다가 한숨을 크게 터트렸다.
도형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해성-최유찬, 김도형을 두고 신경전 있었다. 관계자 제보 잇따라….]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실린 건, 대본 리딩 합숙 당시의 사진이었다.
도형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노려보며 설전을 벌이는 해성과 유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그것만 남았다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정해성/최유찬 대본 리딩 신경전 입수]
 
유X브를 시작으로 녹음 파일이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배우와 배우 사이의 대화만 본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녹음 파일과 기사에서 꼬집는 ‘김도형’의 존재가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도형과 해성의 결합설과 유찬과 도형의 연애 전선에 해성이 끼어들었다는 루머도 퍼져 나갔다.
 
“아니, 이게 지금 신경전 운운할 일이냐고. 이게… 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분노하는 우태의 모습에도 도형은 평정심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하경이 미리 언질을 해 준 기분이었다. ‘후회하지 말라.’는 말은 이걸 의미한 걸까.
 
“괜찮아.”
“뭐가 괜찮아. 너 다른 기사 못 봤어? 유명 배우와 무명 배우 뭐, 그거?”
“…….”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동은 늘! 오메가 배우 한 사람을 위해서였다! 그거 완전 너잖아. 지금 촬영장에 오메가 배우가 너 말고 또 누구 있어!”
“…사실이잖아.”
“김도형!”
“사실 맞잖아. 내 히트 사이클, 들쭉날쭉해서… 스케줄에 영향 많이 준 거, 진짜잖아.”
 
힘없는 도형의 목소리에 우태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유! 분에 찬 탄식을 토해 내며 괜히 주먹으로 벽을 쳤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악의적인 기사들이었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도형과 해성, 유찬까지 줄줄이 엮고 들어가려는 속셈이 뻔했다.
대체 뭘 위해서. 속이 답답해졌다.
 
“형.”
 
그때, 도형이 우태를 넌지시 불렀다.
 
“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야, 너는 지금 이걸 보고도-”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야만 했다.
 
“괜찮아, 정말로. 이런다고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해.”
 
동요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줘야만, 하경에게서 또 다른 징조가 보일 테니까.
 
“짚이는 데도 있고… 지금은, 우리가 동요하면 안 될 것 같아.”
“짚이는 데가 있어? 뭔데, 어?”
 
도형은 고민했다.
유찬이 전해 준 이야기가 신경 쓰였고, 해성 또한 그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저는 우태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의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우태라면. 제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데.
 
“대답하기 전에, 나 솔직하게 할 말 있어.”
“얘는 또 왜… 하, 그래. 말해 봐. 뭔데?”
“어쩌다가 듣게 된 이야기가 있거든.”
“엉. 무슨 이야기인데.”
“이제까지 연이어 터진 기사들….”
 
상처받겠지.
우태를 범인으로 확신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잠시나마 그에게 의심의 화살을 돌렸으므로.
그렇기에 더욱, 지금 말해야만 했다. 더 늦어진다면 상처만 키우는 셈이 된다.
 
“전부 배우 측 관계자에게서 나온 정보래.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도형의 말에 우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싶었다.
멍하니 도형을 살피던 우태가 미간을 좁히더니,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나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리고 다시 생각을 이어 가다가, 또 한 번 펄쩍 뛰며 도형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도형아. 그래, 알아. 의심스러울 수 있는 상황인 거 맞는데. 나 진짜 아니다. 통화 내역, 이메일 내역, 뭐 메신저? 그래, 다 보여 줄게. 싹 다 보여 줄 수 있어. 내가,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데. 인마. 진짜 아니야. 하늘에 맹세코, 우리 와이프 걸고 맹세한다. 어?”
 
당황해서 줄줄이 뱉는 그의 모습에 도형은 픽 웃었다.
누군가는 우태가 이러는 게 더 이상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이건 도형이기에 확신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태는 찔리는 게 있으면 눈을 피한다. 괜히 말을 돌리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며 천연덕스럽게 굴려고 하는 편이지.
이렇게 당황하는 건, 도리어 정말 결백하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오래 지켜봤기에 알 수 있는 일이다.
 
“응. 형 믿어.”
“뭐?”
“형 믿는다고. 아니라는 거 알아.”
 
순간, 맥이 탁 풀린 모양이었다.
황망한 표정으로 도형을 바라보던 우태가 괜히 손을 탁 뿌리쳤다.
 
“야! 너는, 너는 인마. 믿는단 말부터 해야지. 나는 네가 나 안 믿을까 봐.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이내 우태의 눈이 글썽글썽해졌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도형을 보다가 그대로 고개를 휙 돌렸다.
 
“미안해. 의심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형은 아닐 거라고 믿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은 나한테 안 그럴 사람이니까. 절대로.”
 
알아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어쩜 그러냐고 따져야 할지.
코를 훌쩍거리며 도형의 말을 잠자코 듣던 우태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근데 왜 그런 말을 한 거냐고 물으려는데, 도형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생각을 좀 정리해야 했어. 일단 뜬소문은 아닌 거 같은데. 형한테 사실은 알려야 하고, 이제까지 나온 기사나 지금 상황까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니까.”
“그래서 결론이 뭔데.”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우태의 모습에 도형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방식이 비슷하다. 엔드패치의 힘을 빌리는 것도, 자극적인 제목과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까지도.
변하지 않는 건 언제나 의심의 여지를 남기기 마련이다.
진짜 쟤는 뭐라는 거야. 부루퉁한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도형은 혼자 조용히 되뇔 뿐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거.”
 
***
 
[수다] 논란을 담은 잔 아님?ㅋㅋ
 
무슨 하루도 안 빠지고 일이 터지네 ㅋ
찌라시보니까 이번에 다친 그배우
오메가배우땜에 스케줄 번번이 밀렷다던데
뭐냐 논란잔 배우편파지리네~
 
댓글 (211)
ㄹㅇ 잘나가는 배우들 델고잇다고 콧대 높아진듯ㅋ
근데 솔직히말해서 ㅋ 그럴만한 배우진들 아니냐?
└글쎄 한명은 모르겠는뎈ㅋㅋㅋㅋ
└└한명 ㄴㄱ?
└└└ㅇㄱㄹㅇ 솔찌; 김도형은 급이 안됨;
여기중에 일정 배려 받는 오메가 잇으면 개웃길듯ㅋ 히트모르냐?
└소름;; ㄹㅇ 잇을듯
└└내말이; 히트땐 당연히 암것도 못하는거 아님? ㅈㄴ 웃김
왜 신경전 이야긴 없음ㅋ ㅈㄴ웃긴데
└신럽라 유찬도형 방해꾼 정해성? ㅋ
└└전남편에서 방해꾼ㅋ ㅈㄴㅇㄱ
난 이런글 진짜 모르겠음. ㅈㄴ 자기가 쌓은만큼 돌려받는 거 아님? 그러려고 기를 쓰고 유명해지고 돈 버는 거 아녔음?
└22222 자본주의에서 살면서 뭔ㅋ
└└걍 피뎁따자 ㅋ 볼만하겟네
 
***
 
커뮤니티의 글이 점점 확산되고, 사람들의 추측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하지만 도형과 해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각 소속사 대표들은 사태를 무마하려 했으나, 두 사람이 그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런 가십거리에 휘둘리면 드라마의 본질마저 흐릴 것 같았기에.
 
“대표님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바보도 아니고, 자꾸 당한다고.”
“나도. 웬일로 가만히 있느냐고, 본인이 더 난리더라.”
 
나란히 앉아 손을 맞잡고 있던 도형이 쓰게 웃었다.
해성의 손등을 살살 어루만지다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우태 형도 난리고….”
“참, 우리만 속 편한가 보다. 그치?”
 
두 사람은 눈을 마주한 채 키득거리며 웃었다.
잠시나마 풀어진 분위기에 안도한 듯, 서로에게 의지했다.
도형은 해성의 어깨에, 해성은 도형의 머리 위에 기댄 채 온기를 만끽했다.
 
“형보고 방해꾼이라는 말도 하던데.”
“어. 그거 보고 조금, 화날 뻔했어. 누가 방해꾼인데….”
“그냥 밝힐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괜히 내가 고집 피워서….”
 
말을 잇지 않는 도형의 모습에 해성이 잠시 생각을 곱씹는다.
 
“이 정도로 우는소리 하고 싶지 않아.”
 
많은 속내가 담긴 이야기다.
그걸 알고 있기에, 도형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것들이야. 내가 저지른 게 있는데, 당연하지.”
“하지만-”
 
해성은 도형이 더 말을 할 수 없도록, 그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도형아, 형 믿지?”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도형이 해성을 힐긋 올려다봤다.
제 생각과 영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대답은 해야겠지.
 
“응, 믿어요.”
“그럼, 나 믿는 만큼만. 조금만 기다려 줘.”
“…형?”
“생각해 둔 게 있어. 움직이기엔 아직 이른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것뿐이고, 대표님이랑도 어느 정도 이야기 끝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도형은 해성을 믿고 있었다.
어떤 결정을 내렸든 간에, 해성이라면 분명 정답을 내어 놓을 테니까.
 
“응. 알았어요.”
 
그러니 해성의 결정을 믿고, 그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시 해성의 품에 기대듯 안기며 눈을 감았다.
 
“네 고집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단 생각은 하지 말고.”
“응.”
 
그렇게 따지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제가 아닐까, 해성은 생각했다.
하지만 입에 담지 않는다. 괜히 말을 뱉었다가, 도형이 또 다른 상념에 빠지면 곤란했으니까.
그저 이 폭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자신이 생각하고 계획한 일이 원만하게 흘러가, 모든 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
 
“이제 촬영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것만 집중하자.”
“응. 아마 그쪽도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예요. 더 움직였다간… 역공 맞기도 쉽고.”
“그렇지. 나 감독님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니까. 제작사도 그렇고.”
 
그래, 그들이 가진 힘 또한 믿어 보기로 했다.
이 모든 역경을 이겨 내는 건 저들만이 아니었으므로.
괜찮아질 거다. 모두 나아지고 좋아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입가에 미소를 그린다.
 
“그럼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
“신혼여행?”
“아니면….”
 
제게 딱 붙어 있는 도형을 슬쩍 떼어 낸 해성이 씩 미소를 지었다.
 
“애는 몇이나 낳을까요, 김도형 씨.”
 
이어지는 말에 도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곤 이내 주먹을 작게 말아 쥔 채 해성의 어깨를 톡! 두드렸다.
 
“무, 무슨 아기 계획을 벌써 말하고 있어요!”
“왜 부끄러워하지? 나 닮은 아들 하나, 너 닮은 딸 하나면 좋겠는데.”
“몰라. 아, 나는 몰라요!”
“알 텐데. 도형이는 알고 있을 텐데.”
 
도형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소파의 끝으로 몸을 피했고, 해성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행복에 가득 찬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그들의 바람이 가득 묻어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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