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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이 되었으나 반에서 내 생일을 아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유별난 하루가 되지는 않았다. 대신 이은섭과 나는 아주 오랜만에 야자를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생일이니까 한 턱 쏴라.”
“뭐 먹고 싶은데? 다 사줄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언제는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다고. 나는 이은섭에게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렸다. 한 번쯤은 나도 친구에게 무언가를 돈 걱정 없이 마구 사주고 싶었다. 이은섭은 내게…… 유달리 소중한 친구니까.
이은섭은 내가 먼저 손을 잡고서 얼른 가자고 끌자 얼굴을 붉히며 씨익 웃었다.
“영도 씨는 내가 그렇게 좋아?”
“응, 좋아.”
“아, 씨발. 야, 너는, 너는 어?! 내가 장난을 치면 너도 장난으로 받아쳐야 될 거 아냐!”
“나도 장난이었는데…….”
“……아, 그러냐. 아, 어, 그래.”
별것도 아닌 농담에 씩씩거리며 화내던 이은섭은 내게 심통이 잔뜩 났어도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왔다. 실은 이은섭이랑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은 곳을 몇 군데 검색해서 찾아놓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지만 이은섭이 내 생일에 빈손으로 축하한다고 한 마디만 할 것 같지가 않아서.
우리는 학교에서 좀 멀리 떨어진 대학교 근처로 향했다. 거기에서 파스타와 화덕 피자를 먹고, 나는 이은섭이 계산을 먼저 할까 걱정되어 후다닥 계산대로 달려가기까지 했다. 이은섭은 그런 나를 가만히 보다가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오늘 좀 뱁새 수인 같다?”
“무슨 뜻이야?”
“……몰라도 돼.”
“몰라도 되는 거면 그냥 잘 먹었다는 말이나 해.”
“잘 먹었습니다, 뱁새 형님!”
“그―래.”
돈 쓰는 건 재미있었다. 대학로 근처에는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교복을 입은 우리는 이방인 같았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이은섭이랑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괜히 평생 꼽지 않을 머리핀 같은 것도 꼽아보고, 손에 맞지도 않는 반지를 끼우고서 낄낄거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전부 별거 아니지만 내게는 주어지지 않던 사소함이었다.
오늘은 내가 다 사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은 터라 이은섭과 분홍색 일색에 반짝거리는 룸카페에 가서도 계산은 내가 했다. 다음 주까지는 한 푼도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도 뒤에 서 있는 이은섭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돈 쓸 줄 안다고.
생일에는 케이크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초코생크림케이크 한 조각까지 산 우리는 좌식 룸으로 들어갔다. 어른 흉내 좀 내보겠답시고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쓰기만 하고 별맛도 없어서 우리는 둘 다 웃고 말았다. 커피 한 모금 빨았다고 둘 다 표정이 한껏 구겨져 있었다.
“생일 축하 노래 불러줄까?”
“하지 마―, 옆방에서 다 들을 거야.”
“뭐 어때.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태영도, 생일 축하합니다! 빨리 소원 빌어.”
“초도 없는데 무슨…….”
“그래놓고 손은 왜 모으냐? 웃긴다니까, 이 새끼.”
겉이 버석하게 마른 케이크를 가운데에 두고서 사랑하는 태영도, 그렇게 부를 때 귀 끝에 빨간 열매가 맺힌 것처럼 귀를 물들였던 이은섭은 얼른 소원 빌라고 하면서 자기도 손을 모았다. 이은섭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지 궁금해하며 나도 조금은 낯간지러운 소원을 빌어보았다.
“자, 이제 선물 전달식!”
“너 그럴 줄 알았어.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데 꼭…….”
“다른 새끼들이야 생일날 어떻게 지내든 알 바 아니지만 너는 좀 다르지. 자, 받아.”
다른 애들은 어떻든 알 바 아니라는 말에 괜스레 웃음이 비어져 나오려는 걸 입꼬리에 힘을 줘 참았다. 그리고 나는 이은섭이 건넨 커다란 상자를 받고서 진짜로, 웃기가 힘들어졌다.
“아빠한테 물어봤더니 대학도 가고 하니까 이게 필요할 거라는 거야.”
“아, 응…….”
“대학생 되면 알바해서 갚겠다고 하고 아빠랑 같이 가서 샀어. 잘했지?”
100만 원은 족히 넘어가는 태블릿 피시. 얼떨떨한 얼굴로 그걸 받아 든 나는 들떠서는 내 반응을 살피는 이은섭에게 속없는 척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과연 이은섭에게도 그렇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맘에 들어? 혹시 있는 건 아니지?”
“맘에 들어. 잘 쓸게.”
“아―, 무슨 선물 받고도 반응이 이러냐? 좀 더 왁! 하고 좋아해야 재밌지.”
심장을 누가 옥죄었다가 놓아주길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선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네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달라서였다. 차라리 네가 저번 주에 사준 모찌롤이 선물이었다고 했다면 서운했을지언정 이런 비참함까지는 느끼지 않았을 텐데.
나는 네가 준 선물을 옆에 조심스럽게 놓아두고서 네 두 번째 손가락 끝에 입 맞췄다.
“쓸 때마다, 네 생각 할게.”
“……오늘 내 생일 아니지?”
“아하하하!”
울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늑대 귀가 튀어나온 너를 보고 크게 웃었다.
“한 번 더 해봐. 내 손가락 아다 니가 가져갔다, 책임져라, 태영도.”
내가 빈 소원은, 너와 함께하는 매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