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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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너랑 하루 종일 뽀뽀만 할래.”
“아, 미쳤냐……. 나 진짜 심장 멎을 것 같아. 인터뷰하다가 발기하면 어쩌지?”
“난 뽀뽀만 하자고 했는데 왜…… 세우고 그래.”
“하루 종일 뽀뽀하면 당연히 서지. 우리 한창 때야, 영도 씨.”
지금 당장 뽀뽀를 한 것도 아닌데 이은섭은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책임지라고 또 입술을 삐죽였다.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먹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찌 된 게 고등학생 때랑 변한 게 없는지. 물론 그래서 더 좋기도 하지만.
쉴 새 없이 투덜거리면서 이따 인터뷰할 때 곤란한 질문만 잔뜩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 이은섭의 이마에 쪽, 입 맞추고서 촬영장에 다시 자리했다.
“은섭 씨랑 영도 씨랑 서로 질문 열 개씩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 지면에 메인급은 아니어도 두 분 관련 내용이 꽤 비중 있게 다뤄질 예정이거든요. 체험 삶의 가치가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들한테도 인기가 꽤 많으니까요.”
사수는 쉬는 시간을 갖고 돌아와서도 내내 투닥거리는 이은섭과 나를 보며 ‘젊은 여성들’에 특히 강세를 두어 말했다. 나는 괜히 찔려서 소극적으로 좋다고 답한 반면에 이은섭은 아주 신나서 떠들어댔다.
“그쵸, 저랑 태 아나 케미가 산다고 하는 반응들 보니 출연하길 잘했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살면서 이런 큰 잡지사 에디터 일을 어떻게 해보겠습니까, 사수님이 기대하는 그 이상으로 잘해보겠습니다!”
“정말 신입 사원처럼 적극적이시네요. 그러면 두 분 10분 정도 시간 드릴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질문지 작성해주세요. 어려운 부분이나 도움 필요하시면 저나 옆자리 막내한테 물어보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이은섭과 내가 하루 종일 들고 다닌 노트북이 드디어 일을 할 때가 되었다. 이은섭은 두고 보라고, 섹스 판타지 같은 거 물어볼 거라고 되도 않는 소리를 했고 나는 그냥 무시로 일관했다. 너무 유치찬란해서 차마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10분뿐이라 마음이 급했다. 그에 비해 이은섭은 2분 정도 걸렸나? 다 썼다고 노트북을 보란 듯이 접고서 콧노래를 불렀다.
“태 아나는 질문 몇 개나 적었어요?”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이―, 하나도 못 썼죠? 난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빛의 속도로 끝냈는데.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관심 많고, 이제 적을 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쓸데없는 거 말고 알찬 질문 부탁드릴게요!”
은근하게 약 올리고서 자기는 커피나 한 잔 해야겠다고 사라지는 이은섭을 딱 한 대만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번호를 매겨 질문지를 작성했다.
우선 첫 번째. 이상형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리고 두 번째는, 배우가 된 계기를 물어보면 좋을 듯했다. 세 번째는 연관된 질문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 네 번째는 앞으로 맡고 싶은 배역.
고민한 게 무색하게 너무 쉽게 질문지가 채워졌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식의 성의 없는 질문은 이은섭의 팬도,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이은섭도 실망할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왕 하는 거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됐으면 좋겠는데…….”
“질문 짜는 거 어려우세요?”
“네? 아, 너무…… 쉽게만 가는 느낌이라서요. 특별한 질문도 한두 개 정도는 넣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내 옆에서 거의 석상처럼 앉아 있던 여자가 곰곰 생각을 하다가 넌지시 말했다.
“저는 아직 막내라 누군가를 직접 인터뷰해본 적은 없거든요. 근데 저희 선배 에디터님들 하는 거 보면 자기가 진짜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해서 인터뷰할 때는 질문이 엄청 다양하게 나왔어요. 그러니까, 찐팬이면 질문이 좀 색다르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렇더라고요.”
“찐팬…….”
“제가 이은섭 배우 팬이라서 그러는데, 이거 하나만 물어봐주시면 안 돼요?”
이은섭의 찐팬이라니. 어쩐지 아까부터 바짝 굳어 있던 게 이해되었다. 어린 에디터는 이은섭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데 정말 별거 아니라고 하며 운을 떼었다.
“혹시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봐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첫사랑이요?”
“네. 로맨스 영화를 찍어도 항상 그런 질문에는 노코멘트라고만 했는데, 태영도 아나운서님이 물어보시면 달리 답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혹시 곤란하시면 안 물어보셔도 돼요!”
별거 아닌 질문이었다. 그런데 한 번도 답을 한 적이 없다고 하니 특별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다섯 번째 질문으로 첫사랑은 어떤 사람인가요, 를 적고서 여섯 번째 질문으로 체험 삶의 가치에 임하는 자세와 앞으로 체험해보고 싶은 직업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흔해빠진 질문들을 잔뜩 적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도 씨 거 안 사려다가 삐질까 봐 샀어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다시 촬영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 * *
체험, AQ잡지 에디터!
며칠 전부터 서울 소재 AQ잡지사가 시끌거렸다. 에디터들은 물론이고, 편집장까지 ‘그 사람들 언제 온대?’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업무를 공유하는 시트와 스케줄러에 금주 금요일, 오전 8시부터 촬영 시작이라고 적어놓았음에도 말이다. 서로 ‘그들’이 오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도 묻고 답했던 일주일. 그 일주일이 지나고 문제의 ‘그들’이 사무실로 왔다.
안녕하세요, 태영도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은섭입니다.
간결한 인사로 시작한 촬영. 아침 일찍부터 와 있던 tibc의 태영도 아나운서는 몇몇 에디터들에게 어색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이미 더 유명해질 수도 없을 만큼 유명한 배우 이은섭의 옆에서도 충분히 반짝이는 그에게 시선이 머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처음 촬영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체험, 삶의 가치!>는 이렇게 뭇사람의 주목을 받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당연히 당초 계획은 두 사람의 에디터 체험이 전부였으나…… 자본주의 사회의 잡지사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있을까. 계획을 변경하여 출연진의 룩북 촬영과 간단한 화보 촬영, 지면을 할애할 수 있도록 10문 10답을 제안하자 제작진 측에서 흔쾌히 오케이 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체험, AQ잡지 에디터!> 프로젝트. 아마 프로 에디터들의 인터뷰보다 거칠고 날것의 맛이 느껴질 거다. 이은섭과 태영도, 두 사람은 브라운관 밖에서 더욱 친하니 말이다.
태: 안녕하세요, 은섭 씨.
이: 뭐예요, 우리 방금 전에도 계속 말하고 있었잖아요.
태: (잠시 침묵) 장단을 좀 맞춰주시면 어디가 덧나나요?
이: 하하! 놀릴 때마다 반응을 하지 말아야 내가 안 놀리죠. 아까 골머리 앓으면서 질문 짜더니 다 짜셨어요?
태: 얼추 짰습니다. 미리 말하지만 식상한 질문뿐이니 실망하지 마세요.
이: 아―, 역시 태 아나는 나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
태: ……질문 먼저 하시겠어요?
이: 그래요, 제가 먼저 시작하죠. 첫 번째! 태영도의 비밀스러운 신체 콤플렉스는?
태: 무슨 질문이 그럽니까? 인신공격 아니에요?
이: 제 전문이에요, 인신공격.
태: (잠시 침묵) 콤플렉스…… 아랫니 하나가 살짝 비뚤게 나 있습니다. 그게 약간 콤플렉스예요.
이: 다른 콤플렉스는요?
태: 이거 두 번째 질문으로 쳐도 되는 거라면 답하겠습니다.
이: 아뇨! 아냐. 그냥 아랫니로 퉁쳐요. 그럼 이제 영도 씨가 나한테 질문하세요.
태: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 식상한 질문 많이 짰다더니 정말 시작부터 식상하네요.
태: 질책하지 말고 답이나 해주세요, 제발.
이: 착하고, 나보다 똑똑하고, 귀여운 사람. 눈이 땡그래서는 웃을 때 반달처럼 휘어졌으면 좋겠고, 귓바퀴가 선명한데 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선이 가냘픈 게 좋습니다. 그래서 그 능선을 한번 만져보고 싶게끔 만드는 사람. 소박하면서도 심지가 곧은 사람이면 더 좋을 것 같고, 목소리는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데 귀를 깃털로 간질이는 것처럼 계속 듣고 싶은 맛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