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2 0 0
                                    

얼토당토않은 대화를 듣다가 나는 그냥 책을 펼쳤다. 아주 죽이 착착 맞아떨어지는데 하등 들어서 도움이 될 얘기가 아니었다.
조용히 독서를 하며 가려던 계획은 이은섭이 나를 답삭 끌어안는 것으로 무산되었다. 이은섭은 친절하게 책을 다시 가방에 넣어주고선 어떻게 애인을 옆에 두고 책을 볼 수 있냐고 힐난했다. 어째 열아홉 때보다도 감정 기복이 심한 것 같은데 얘를 어쩌면 좋을지…….
“화장 지워질라. 조금만 떨어져.”
“메이크업 수정 얼마 걸리지도 않아. 나 오늘 멋있어? 너한테 잘 보이려고 빡세게 해달라고 했는데.”
“음……. 항상 멋있어서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아.”
“뭐야, 일현이 있는 데서는 키스 못 해!”
“내가 키스하자고 했어?”
“응.”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은섭의 입술을 막다가 룸미러로 아주 육갑을 떠는구나, 라는 식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일현 씨와 눈이 마주쳤다. 억지 눈웃음을 짓는 일현 씨에게 나도 억지로 눈을 접어 보이고서 이은섭을 밀어내는 데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시사회 장소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리기 전 이은섭은 자기는 살피지도 않고서 내 옷매무시를 열심히 정리해주더니 기어이 볼에 뽀뽀를 한 번 하고서 배시시 웃었다.
“오늘 착장 잘 어울린다. 영화 대사 중에 내가 여주한테 ‘키스할래?’ 이러거든? 그럼 나와서 비상구로 와.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나 영화는?”
“아오, 나중에 나랑 심야로 같이 보러 가. 됐지? 이따 봐.”
나물 무치듯이 내 볼을 조물조물 만지다가 떠나는 이은섭의 뒷모습을 그 애가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보다가 나도 엘리베이터를 탔다. 굳이 키스 신 전에 나오라는 건 자기가 키스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런 걸까? 아니면 그때 키스하자는 걸지도 모르겠네.
어느 편이든 꽤 낭만적이고 사려 깊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포토월에 섰다.
“태영도 아나운서, 눈 떠주세요!”
“케이하트 한 번 해주시고, 큰 하트도 한 번!”
“이제 손인사!”
“오른쪽, 가운데, 왼쪽, 차례로 봐주시면 됩니다!”
무슨 시장통에 온 줄 알았다. 정신없이 터져대는 플래시에 눈물이 맺힌 채 눈을 끔뻑이던 나는 기자들이 시키는 대로 작은 하트, 큰 하트를 차례대로 그리고 손도 흔들어준 다음 포토월에서 벗어났다. 플래시 세례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어질거려서 잠깐 비상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숨 좀 돌리다 가야지. 눈을 감고서 점멸하는 빛 조각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던 나는 사람들의 환호 소리에 비상구의 문을 살짝 열고서 포토월을 바라봤다.
“열심히 만들었으니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잔뜩 멋있는 척을 하는 이은섭이 포토월 위에 있었다. 주연 배우들 사이에서도 단연 튀는 이은섭. 아마 10년 전이었으면 저런 애 옆에 어떻게 설 수 있겠냐며 그냥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택했겠지만, 10년이 흐른 이제 나는 어엿한 이은섭의 연인이었다.
먼발치에서 영영 잡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이은섭이 사실은 내 손안에 있다는 걸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어이없어서 작게 실소한 후 메시지를 보냈다.
빨리 네가 키스하자고 했으면 좋겠다. 13:01
몰래 너를 지켜보는 재미도 꽤 괜찮다고 느끼며 나는 영화 상영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수락> 시사회 후기
이은섭 배우 시사회 다녀왔어~ 혹시나 했는데 태영도 아나운서도 보러 왔더라. 포토월에서 눈을 제대로 못 뜨는 게 너무 귀여워서 다들 앓았다ㅠㅠ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어려 보였어 한 25살 정도라고 해도 믿겠더라~ 다른 사람들보다도 태영도 아나운서 얘기가 많은 이유는 내가 무인이나 시사회 자주 가서 웬만한 연예인은 다 봐서^^;; 다들 예쁘고 잘생겼는데 태영도 아나운서가 너무 어수룩하게 굴어서 제일 기억에 남아.
영화 내용! 다들 알다시피 불미스러운 일로 은퇴한 형사가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의 재수사를 사설 탐정으로서 수락하는 내용. 이은섭이 이 영화 찍느라 벌크업 열심히 했다더니 진짜 몸이 크더라……. 늑대 수인으로 알고 있는데 실물은 곰…… 수인에 가까웠어.(곰수인 실제로 본 적 없음) 하여간 엄청 컸다! 두툼하고 길쭉하고 거대!! 이은섭이 예술 영화에도 나오고 소규모 독립 영화에도 나오고 완전 메이저인 드라마에도 나오는 배우라 사실 연기력은 걱정할 거 없고, 내용 자체도 나쁘지 않았어. 아주 좋다!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영화관에서 볼 만한 액션이 꽤 많아. 그래서 나는 친구가 보러 갈 때 낑겨서 한 번 더 보러 갈 것 같아.
이건 논외 이야기이긴 한데 영화 다 끝나고 나서 배우들이랑 감독이랑 무인 짧게 했는데 이은섭이 좀 늦게 오더라고. 분명히 상영관 입장은 같이 했는데…… 사전에 감독이랑 배우들이랑 얘기도 안 됐던 듯했는데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 열심히 해서 봐줬다!
추천 33/반대 0
* * *
댓글
* * *
영화 평이 극과 극이더라 나 유혈낭자한 거 잘 못 보는데 보러 가도 괜찮을까?
* * *
┖괜찮을 거야 피보다는 그냥 웃통 깐 남자들이 많이 나와
* * *
┖┖꼭 보러 갈게^^
* * *
* * *
은섭이 비중 어때?
* * *
┖50퍼센트 이상. 예상외로 서브 남주가 꽤 많이 나오더라궁 이은섭이 촬영하면서 친해졌다고, 차기작도 같이 하고 싶다고 인터뷰 한 거 봤는데 둘이 연적으로 나오는 거 보고 싶어
* * *
로맨스 요소 많아?
* * *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