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또 내 거 같아.”
“나 네 거 같아?”
“응, 예뻐 은섭아.”
앞으로 영도의 모든 시간을 함께할 테니까.
“그럼 예뻐해 줘, 태 아나.”
이제 영도가 남겼던 쪽지를 봐도 아련해지지 않았다. 함께하지 못한 시절보다 같이 나아갈 미래가 훨씬 길기에.
외전 2. 빅 이벤트
결혼식 날, 은섭은 영도와 함께 하객들을 맞았다. 사업을 크게 하는 은섭의 아버지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하기를 희망했지만, 당사자 두 사람은 조용히 양가 가족들과 아주 친밀한 사람 몇만 초대하기를 원해서 결혼식 규모는 매우 작았다. 어쩌면 결혼식장 바깥에 있는 기자의 수가 하객 수보다 많을 수도 있었다.
“자고로 결혼식 같은 경사는 크게 축하해야 하는 법인데.”
“축하받고 싶은 사람만 딱 초대하니까 더 좋은 것 같은데요?”
“그래? 해원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은섭은 주접을 떨어 대는 부모 때문에 영도를 볼 면이 안 섰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두 아빠를 뒤로하고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영도에게로 향했다.
누가 제 거 아니랄까 봐, 오늘 영도는 너무 이쁘고 귀여웠다. 평소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내리고 다니던 앞머리를 깔끔하게 올려 동그란 이마가 드러난 것도 귀엽고, 아는 사람이 올 때마다 저를 소개하며 ‘우리 신랑이야.’라고 수줍게 소개하는 것도 귀여워 죽을 지경이었다.
영도가 딱 열 번째 자신을 신랑이라고 소개하는 걸 듣고 나서 은섭은 영도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나 신랑이라고 하니까 왜 이렇게 꼴리냐.”
“말 좀.”
“왜 이렇게 서냐.”
“……말문 막는 데 재주 있다니까.”
“꼴리는데 어쩌라고.”
“이런 말을 해도 네가 좋으니 결혼하는 거지만.”
“어?”
“이제 입장 준비하자!”
고등학생 때는 애정 표현이나 스킨십에 퍽 소극적이었고, 10년 만에 재회한 후에도 특유의 무심한 태도를 고수했던 영도는 동거를 시작하며 아주 빠르게 몸과 마음을 열었다. 은섭은 그게 너무 좋은 동시에 가끔 소년처럼 부끄럽기도 했다.
하객들을 맞이하며 제 손을 살짝 쥐었다가 놓는 영도의 손길이 기꺼웠다. 은섭은 저를 올려다보며 눈웃음을 치는 새신랑의 시선을 은근히 피했다.
“왜 피해?”
“너 밑에 깔고 싶어서.”
“진짜 말버릇 고치자, 은섭아…….”
왜 아직도 얘랑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으면 이렇게 부끄러울까?
영도가 저를 리드하는 게 좋으면서도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던 은섭은 기어이 제 부모에게 한 소리 듣고 말았다.
“이은섭이―. 어째 나랑 하는 짓이 똑같다?”
“아, 제가 언제요!”
늑대 아빠의 능글거리는 말에 은섭은 득달같이 화를 냈다. 토끼 아빠에게 치대는 것만 보면 예순이 아니라 스무 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철없는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자 나잇값 못한다고 흉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그러나 제 신랑은 그 말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버님께서 너 귀엽다고 하시는 거잖아. 난 좋은데.”
“그래……?”
“태 서방이 내 뜻을 알아주네. 인마, 아빠처럼 하면 사랑받는 남편 되고 좋지 뭘 그래? 그치, 해원아?”
“아빠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영도한테 잘해.”
혼주석에 앉아 있을 테니 신랑 입장 잘하라고 단단히 일러주고 난 후에야 부모는 자리를 떴다. 은섭은 안 그런 척하더니만 들뜨고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영도의 손을 꽉 잡고서 걸음을 떼었다.
버진로드에 첫발을 디딘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서로 말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 * *
결혼식을 마친 후 은섭은 눈가가 발갛게 부어오른 영도의 곁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실은 영도 몰래 축가 이벤트를 짰는데, 제가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울 줄은 당연히 몰랐더랬다. 은섭은 첫 소절을 부르기도 전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영도가 노래를 마칠 즈음에는 푹 젖은 얼굴이 된 것을 보고 ‘괜히 노래한다고 나댔나?’ 하고 생각했다.
“여보, 뚝! 그만. 기운 없어, 그만 울어.”
“너무 행복해…….”
다행히 이벤트는 성공이었다. 은섭은 끅끅대며 제 어깨에 살며시 고개를 누이고서 반지를 들여다보는 영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 아이는 내년에 가지기로 한 거지?”
“100번은 말한 것 같다. 내년이라고, 내년.”
“맞아, 태영도 입사한 지 이제 겨우 1년 됐는데 벌써 육아 휴직 쓰면 안 되지. 말도 안 돼.”
“너는 빨리 아빠가 되고 싶어?”
“아니, 뭐…….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