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훔쳐봤다니까.”
“여기서 편하게 드시면서 은섭이 감상하세요.”
“그런 거 아닌데…….”
“맛있어?”
“응, 맛있다.”
“많이 먹고 살 좀 찌자, 우리 영도―.”
플레이팅까지 예쁘게 하려고 한 듯했으나, 새우가 열 마리나 되어서 면이 안 보이는 게 웃겼다. 누가 파스타에 새우를 열 마리나 넣는다고. 그래도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아서 군소리 없이 포크를 들었다.
나는 이은섭이 해준 파스타를 양껏 먹으며 이은섭이 파스타 한 입에 내 머리칼 한 번 만지는 걸 가만히 두었다. 별다른 뜻 없이 이은섭이 요리를 해줬으니 나도 이 정도는 참아주는 게 맞는다는 생각에서였다.
“너는 고등학생 때랑 거의 달라진 거 없다.”
“응?”
“응? 할 때 웅? 이러는 것도.”
이은섭이 이렇게 근질거리게 굴 줄 알았다면 식사고 뭐고 간에 빨리 프로그램 하차 논의나 하자고 하는 건데.
가만두니 아예 볼까지 조물조물 나물 무치듯 만지기에 화다닥 고개를 저었다.
“아…… 야, 밥 먹을 때 머리 만지는 거 아냐. 빨리 먹기나 해.”
“나 다 먹었는데?”
“그럼 나 먹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태영도 존나 깐깐해. 태깐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태권도라고 저장해야겠다. 아무도 모르게.”
박수까지 치며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양 구는 이은섭을 앞에 두고 묵묵히 파스타를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안 보이는 새우와 눈싸움을 하며.
식사를 다 하고 나서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하자 이은섭은 어깨를 꾹 눌러 앉히고서는 식기들을 모두 식기세척기에 집어넣었다. 뭐라도 하면 더 이상 너를 곁눈질하며 훔쳐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나선 거였는데. 나는 머쓱해져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은섭은 그런 나를 힐끔 보더니 찬장을 열었다.
“커피 마실래?”
“응.”
“초코 맛?”
“응.”
맹하니 앉아서 이은섭이 하는 말에 응, 하고 대답하자 이은섭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에스프레소 샷에 초티를 녹인 후 우유를 부어줬다. 우유 팩을 보니 우리가 지난번 촬영 갔던 동물 복지 목장의 상품이어서 괜히 알은체를 하고 싶어졌다.
“우유 거기 거 먹네? 우리 저번에 갔던 데.”
“어. 이거는 루비가 준 거야.”
“봐봐. 어, 진짜네. 나는 해피랑 친했는데.”
입에 꽃 한 송이를 물고 있는 루비의 사진이 우유 팩에 프린트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즐거워 보이는 소의 사진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은섭은 그 와중에도 내 손등을 톡톡 치며 정신 사납게 굴었다. 그게 꼭 예전 우리 고등학생 때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에야 데면데면하니 친하지 않았으니 내외를 했지만, 한 달도 안 되어 이은섭과 친해졌던 게 떠올랐다. 조금 친해졌다 싶은 순간부터 내게 살갑게 굴며 여기저기를 가볍게 만지던 이은섭. 그 애의 집에 놀러 가는 날이 많아질수록 오래오래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나.
순수하게 너를 좋아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커피를 홀짝이다가 정신이 든 건 네가 볼을 꽤 아프게 꼬집어서였다.
“아!”
“사람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나랑 할 얘기 없어?”
“아, 어. 너 체험 삶의 가치 계속 나올 거야?”
볼을 쭉 늘였다가 제자리로 돌려놓은 이은섭은 자기가 꼬집어놓고서는 아프겠다며 볼을 쉬지 않고 쓰다듬었다. 키우는 강아지도 이 정도로 만지지는 않겠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그게 영 간질거려 손을 슬그머니 피하자 다시 내 손등을 톡톡 치는 게 어이없었다. 너랑 나랑 무슨 사이나 된다고 이러는지.
“계속 나가야지. 제작진이 나 없으면 안 된다고 했어.”
“난 진짜…… 네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는지 모르겠다. SNS 확인 안 해봤지, 너.”
“아니? 나 방송도 녹화 떠서 보고 SNS 확인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는데? 너랑 나랑 반응 좋더라. 백허그 짤 도는 거 보여줄까?”
“……그런데 계속 나오겠다고? 예산도 얼마 없어서 네 출연료 맞춰주지도 못할 게 뻔한데.”
“출연료가 문제겠냐?”
“그럼 뭐 때문에 나오는 건데!”
네가 보기에는 우리 둘이 붙어 있는 짤을 만들고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유난스럽겠지. 그러나 나는 나대로 생각이 많았다.
나는 여전히 우리가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는 내가 가난하더라도, 부모가 없는 걸 알았더라도 나를 좋아해줬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런 걸 다 설명하기가 눈물 날 만큼 쪽팔리고 초라해서 차마 한마디도 못 했다. 장학금만 보고 죽기 전까지 공부해야 하는 나와 돈으로 내가 꿈꿔온 대학에 들어가는 네 사정은 천지 차이였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네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너를 보면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고,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 너를 마주칠까 봐 전전긍긍해 하던 나는 초라하고, 그런데도 나는…….
“왜일 것 같은데?”
“그걸 내가 알면…… 읍!”
주제도 모르고 자꾸 너랑 같이 있고 싶어져.
“씨발, 모른 척 작작 해.”
내 손등 위를 톡톡 치던 이은섭의 손이 단숨에 손목을 잡아챘다. 나는 10년 전에 한 첫 키스 상대에게, 두 번째 키스를 당하기 시작했다.
“잠, 깐만……! 읏, 이은섭!”
“너는 매번, 씹, 가만히 있어.”
아무리 내가 이은섭과 덩치 차이가 난다지만 엎치락뒤치락 정도는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그냥 덜렁 이은섭에게 메다 꽂힌 채 일방적으로 키스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건 내가 이은섭의 성장을 얕잡아본 탓이 컸다. 내가 기억하는 이은섭은 나보다 약 10센티미터 더 크지만 날씬한 느낌이 드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 숨 막혀, 으응,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