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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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일이 안 들어오는데 어떡하라고.”
“일이 안 들어오기는 무슨……!”
“어쨌든 내리렴. 오빠 카드로 여름옷도 한 벌 사, 옆에 백화점 있더라. 우리 일현이 행색이 이건 뭐, 매니저가 아니라 거지 왕초 대회 나가도 손색없겠어.”
“넵. 즐거운 시간 되십쇼!”
여름옷도 한 벌 사라는 말이 가슴에 꽂혔는지 투덜대던 매니저는 곧장 카드를 받아 운전석에서 내렸다. 이은섭은 매니저가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내 입술로 돌진했으나, 차창을 두들기는 소리에 입술에 혀도 대어보지 못하고 떨어져야 했다.
“매니저님 뭐 두고 나가셨나봐, 차창 열어드려.”
“아오, 오일현 저 덜렁이가……. 왜!”
“아니, 별건 아니구요―.”
차창이 열리기 전 후다닥 이은섭의 옆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은 나는 이은섭을 놀리는 게 분명한 말소리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니, 너무 티내면 재미없으니까 적당히 하시라구요, 오빠.”
“뭐? 야, 야!”
“연애 안 해본 티가 너무 나잖아요―. 하하! 카드 잘 쓸게요!”
“야 이…… 카드 내놓고 가, 오일현!!”
늑대 귀를 내놓고 자기가 언제 티를 냈느냐며 꽥꽥거리는 이은섭이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하니 대신 차창을 닫아줬다.
“얼른 도시락이나 먹어…….”
“아니, 내가, 어? 어?!”
“그냥 먹으라고…….”
길길이 날뛰는 것도 귀여워 보이니 나도 중증은 중증이네…….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이은섭의 손에 작게 사각형 모양으로 잘린 샌드위치를 들려줬다. 이은섭은 정말 쟤는 왜 저런 말을 하는 거냐면서도 은근히 자랑을 하고 싶은 듯했다.
“근데 나 진짜 연애 한 번도 안 해봤다.”
“갑자기?”
“아니, 네가 좀 알아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지―.”
그러니까, 제 순정에 대해서.
나는 유부초밥을 먹다 말고 웃음이 나올 것 같아 급하게 입을 가렸다. 확실히 저번에 이은섭의 집에서 온종일 키스를 한 게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은섭이 무슨 말만 하면 귀여우니 어떡하지? 이래서야 이따가 서로의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냅다 ‘은섭아 나랑 사귀자!’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우리가 고등학생 때 꽤 풋풋하게 서로를 좋아하긴 했어도, 나는 이은섭을 다시 만났을 때 얘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어도 꽤 깊은 연애를 한두 번 정도는 했으리라 어림짐작한 게 사실이었다. 나야 먹고사는 일에 치여 여유가 없었다지만 이은섭은 그런 일에 연연하지 않아도 괜찮은 형편이었다. 심지어 오만떼만 잘난 사람이 다 모인 연예계에서 몇 년씩이나 경력을 쌓았으니 연애를 안 한 게 더 이상했다.
“야야! 천천히 먹어. 사레 들렸어? 물 줄까? 아오, 유부초밥 새끼 이거 패버릴까.”
닳고 닳지는 않았어도 조금의 때는 탔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은섭이 내게 하는 짓이 전부 고등학생 때와 크게 변한 게 없어서 당황스럽긴 했다. 그 서툰 모습들이 유독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연애 경험이 없어서였나?
키스를 좀 잘하긴 했어도 시종일관 무식하게 밀어붙이기만 했던 이은섭을 떠올려보니 영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곰곰 생각하는 내 앞에서 이은섭은 정말 초딩처럼…… 유부초밥을 패는 시늉을 하느라 바빴다.
“야, 너 뭐 해…….”
“이제 괜찮아졌어?”
“응. 근데 너 진짜야? 연애 한 번도 안 해본 거.”
이은섭은 어이없다는 듯 내 이마에 살짝 딱밤을 먹이고는 곧장 뽀뽀하고서 답했다.
“난 너밖에 없는데 누굴 만나.”
“…….”
“너는?”
밥을 먹다 말고 별걸 다 묻고 답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너를 그때처럼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놓칠 수는 없어서 나도 냉큼 말했다.
“나도 없어.”
“진짜?”
“나도 네 생각만 했어, 은섭아.”
이은섭은 퍽 감동받은 듯했다. 입술을 삐죽이며 울음을 참는가 싶더니 아예 도시락을 치워버리고서 나를 무릎에 앉히는데 부담스럽지만 차마 내려달라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배우가 되더니 아주 일상이 영화구나 은섭아…….
“야아…… 이번주 주말에도 우리 집 놀러 와, 내가 또 맛있는 거 해줄게.”
“너는 무슨 내가 먹을 거에 환장한 사람인 줄 아냐.”
“뱁새 모습도 보여주면 안 돼? 우리 어차피 결혼할 건데, 응?”
“대화를 해야지,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그게 대화냐…….”
“식장은 언제 잡을까? 내일?”
도통 말이 안 통하는 이은섭에게 그건 좀 이르다고 한마디 하려다가 내려다본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그냥 나도 그 애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 결혼은 좀 차차 생각하자고.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니까.
메이크업이 망가지면 안 되니 키스는 못 하고 서로 손이나 주물거리다가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이은섭이나 나나 둘이서만 있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마지막으로 잡힌 인터뷰 촬영이 차질 없이 빨리 끝나야 했다.
“나한테 질문할 거 생각했어?”
“어.”
“하나만 알려줘, 답변 미리 생각해놓을래.”
“영도 씨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어, 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내 이상형은 예전이랑 똑같은데.”
비상구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기분좋게 치근거리는 이은섭의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