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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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학 합격 후 나는 여러모로 너그러워졌다. 그걸 이은섭도 잘 알았다. 이은섭은 수능 닷새 전 나한테 넌지시 그런 요구를 해왔다.
“뽀뽀 한 번 해준다고 네 입이 썩는 것도 아니고, 어?”
“왜 그러는데, 진짜…….”
“너 말 끌지 마. 내가 그거에 약한 거 알면서 이러잖아. 근데 그런다고 뽀뽀 포기할 거 아니거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대학 합격 선물이라며 통장 하나를 내어주셨다. 합격 전에는 한국대에 붙더라도 4년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곳으로 진학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붙고 나니 다른 대학에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입학한 첫해에 한 해 학비를 조부모로부터 보장받은 나는 우선 한국대에 가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이은섭은 나를 따라 꿋꿋이 한국대 원예과에 진학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경영학과와 원예학과는 하늘과 땅처럼 멀지만 어찌 되었든 나와 같은 학교에만 가면 된다고 주장하는 이은섭을 이은섭의 집에서도 말리지 않는 게 신기했다. 4남매 중 장남인데도 불구하고 이은섭은 성적이나 진학에 있어 어떤 부담감도 없어 보였다.
공부는 내 동생들이 잘하니까 나는 좀 못해도 티도 안 나. 그렇게 말하던 이은섭은 내가 합격 통지를 받자마자 일주일 남은 수능에 사활을 걸겠다고 난리였다. 한국대는커녕 대학에 가지 않아도 그 애는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솔직히 집이 좀 못살았더라도 이은섭은 공부 같은 데 소질 없다고 살길이 막막해질 사람은 아니었다. 우선…… 우선 얼굴과 허우대가 너무 남다르다 보니.
“한 번만, 응? 맨날 나만 해주잖아. 너 왜 받기만 해? 그거 그렇게 좋은 버릇 아니다.”
“내가 해달라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 정 그러면 앞으로는 안 해도 돼.”
“썅, 누구 좋으라고 안 하냐?!”
“뻑하면 소리 지르고. 너 때문에 나 귀 다 먹었어.”
“아, 진짜 태영도 할 말 없으면 다 내 탓이네. 야야, 됐어. 나도 너 필요…… 하여튼 그래.”
“필요 없다고?”
“내가 언제 그랬는데. 그냥 너 필요라고. 너 태필요라고, 영도 아니고 필요.”
내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대신 내 이름을 바꿔버린 이은섭은 자기 공부할 테니 나는 누워서 쉬고 있기나 하라고 나를 냅다 제 침대에 눕혔다.
그렇다. 나는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이은섭에게 뽀뽀 두 번을 받고, 그 애 집에서는 대학에 합격한 걸 축하한다며 파티까지 해주었다. 이은섭의 동생들이 용돈을 모아 샀다는 예쁜 케이크 위의 촛불을 끄고서 어색하게 박수 세례를 받은 게 바로 어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은섭과 어제 처음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별거 없었다. 이은섭이 틀린 문제의 답을 설명해주고 우리 대학 가면 뭐 할까, 같이 미팅도 나갈까,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뽀뽀해주면 한국대 갈 수 있는 거 맞아?”
“……어. 존나존나, 100퍼.”
그리고 나는, 네가 미팅 같은 거 안 나갈 거라는 말이 못내 좋아서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감추느라 혼났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모르겠다며, 저 새끼는 저만 잘났고 사람을 아주 호구로 본다고 다 들리게 중얼거리던 이은섭의 옆으로 갔다.
“그거 안 해준다고 사람을 앞에 두고 욕하냐?”
“너 같으면 안 서운하겠냐? 사람 마음 개좆으로 알아, 진짜…….”
말본새가 도통 좋아지지 않는 이은섭은 다 집어치우라고 하면서도 제 옆으로 간 나를 계속 힐끔거렸다. 그 시선에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뽀뽀 한 번 안 해주면 너는 사람도 아니다.’라는 식의 감정이 넘실대고 있어서 나는 못 이긴 척 그 애의 턱과 볼쯤에 입술을 묻었다.
“……됐지?”
“……반대쪽 볼에도 해줘. 왼쪽 볼이 서운하대.”
“그럼 반대편으로 앉아봐. 해줄게.”
“어.”
쪽, 소리가 나게 반대쪽 볼에도 입을 맞추고서 다시 그 애 침대에 가서 누웠다. 그리고 결국에는 적당히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 태영도 정 없는 새끼…… 하란다고 진짜 딱 두 번만 해주냐? 내가 저한테 해준 뽀뽀가 몇 번인데. 뽀뽀 삼만리였는데 진심 정도 없지…….”
“야! 붙으면 키스해줄 테니까 적당히 해!”
“무르기 없다!”
“나 잘 거야. 빨리 공부해.”
“야, 키스해준다고 한 번만 더 말해봐. 녹음하게.”
“……이은섭이 한국대에 가면 키스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됐지?”
속없는 얼굴로 히죽대는 이은섭을 보다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저딴 호구 같은 수작에도 설레는 걸 보니 이은섭이 나를 보고 정 없다고 한 말은 틀렸다. 완전히.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