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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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자연스럽게 날갯짓해 제게 날아올 뱁새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어서 새부리처럼 살짝 튀어나온 영도의 윗입술에 입 맞추는 자신도.
거기까지 떠올린 은섭은 거칠게 욕설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한 걸 알게 된다면 영도가 싫어할 것 같았다. 그나마 있던 알량한 호감도 사라질 정도로 삿된 생각이 맞으니까.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따라서 일어나며 졸졸 쫓아오는 영도의 시선을 피했다. 보면 뽀뽀라도, 아니면 포옹이라도 할 것 같아서 불안했다.
“더 있다 가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동생 때문에.”
“그럼 내일은 오래 있다가 가. 나랑 같이 공부하기로 했잖아, 기억하지?”
“어. 그럴게.”
“조심히 가, 은섭아―.”
쟤는 사내새끼가 왜 근지럽게 은섭아, 은섭아, 저렇게 말꼬리를 늘일까? 좋으면서 괜히 투덜댄 은섭은 창문에 반쯤 나와 인사를 하는 영도에게 크게 반원을 그려 인사했다.
* * *
“은섭이 때문에 고생 많았지, 영도가. 그래도 이렇게 대학 남들보다 빨리 결정 나고 좋아, 그치?”
연말에 영도는 완벽한 생기부와 내신 성적으로 한국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담임은 그런 영도를 불러 은섭이와 반년 넘게 짝을 하느라 고생했다고 노고를 치하했다. 영도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하나도 안 힘들었습니다. 은섭이가 저를 많이 참아 줬어요.”
“그래? 어이구, 선생님이 잘못 알고 있었네.”
“네, 잘못 알고 계셨어요. 은섭이가 얼마나 착한데요.”
왜냐면 이은섭은 태영도의 남자친구니까.
여름 방학 때 은섭의 고백으로 사귀게 된 두 사람은 보는 사람이 다 흐뭇할 정도로 건전한 연애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영도는 은섭이 저를 만질 때 손을 발발 떨며 조심스러워하는 걸 즐겼다. 정작 저가 은섭의 손이 닿으면 좋아서 온몸이 새빨개지는 바람에 은섭이 더 손을 발발 떠는 줄도 모르고.
연말, 대학교에 합격한 영도는 본격적으로 은섭과 스킨십 진도를 빼기 시작했다. 은섭이 대학에 별 뜻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빠들 사업이 잘 풀리고 있다나 봐.”
“그럼 너도 지방 가야 해?”
“아니. 너 여기 있는데 내가 왜.”
춥다는 것을 핑계로 보일러를 풀가동 중인 방에서 영도는 은섭에게 안겨 쉴 새 없이 꼼지락거렸다. 어쩌면 이렇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마음에 들까? 은섭이 지방에 내려가면 매일매일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영도는 해사하게 웃으며 허리를 끌어안았다.
“안 가니까 좋아. 너무 좋아.”
“……심심한데.”
“응?”
“뽀뽀……나 할까.”
그런데 이게 웬 고리짝 작업 멘트인지. 영도는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라는 몇십 년 전 작업 멘트를 친 은섭을 올려다봤다. 포옹과 볼 뽀뽀까지는 했어도 입술에 뽀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스킨십을 주도하는 은섭에 비해 저는 먼저 다가간 적이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싫으면 말고.”
“조, 좋아. 너랑 하는 건 다 좋아.”
“나도 너 좋아, 태영도. 존나 좋아.”
장난기가 묻어나는 노골적인 고백에 둘은 키득거리며 입술을 마주 댔다. 첫 키스라고 하기에도 뭣할 정도로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앞으로 함께할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IF 외전 「부자 영도와 거지 은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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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Mar 25,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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