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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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은섭과 나는 사귀자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은섭은 수능이 끝난 후에는 아예 드러내놓고 말하곤 했다.
“우리 교복 입을 수 있을 때 데이트 많이 해야 돼. 내년부터는 사복 데이트해야지.”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
“영화 보고, 카페 갔다가 집에 데려다주고, 뽀뽀도 하는데 이게 데이트가 아니면 뭐냐?”
“야!”
“아니, 네가 데이트 아니라며. 웃기는 놈이라니까, 태영도 이거. 됐고, 빨리 영화나 보러 가자. 상영 시간 다 됐어.”
교문 앞에서 내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다 목도리도 다시 매준 후 이은섭은 여타 하교하는 학생들의 눈치 같은 건 보지 않고서 내 손을 잡았다. 예전 같았으면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손잡는 거 싫다고 했겠지만, 솔직히 이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서 나도 장단을 맞춰 그 애의 손에 깍지를 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상영관이 새카맣게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 이은섭은 내 손등에 몰래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이은섭의 손등에 쪽, 하고 입술을 붙였다 떼었다.
“아빠가 분위기 좋은 파스타 가게 있다고 하던데. 거기 가볼래?”
“응, 가자.”
“내가 사줄게. 너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영화 예매도 네가 했잖아.”
“아버지가 맘에 드는 애한테 돈 쓰게 하는 거 아니라던데. ……그냥 내가 사줄 테니까 먹기나 해.”
정말 좋아한다는 말만 안 했지 이은섭은 나 좋다는 티를 숨기지 못해 안달이었다.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제 코트 주머니에 내 손을 끌어다 넣고서는 조물거리는데 내가 그 애의 마음을 모를 수가 있을까? 아마 이런 맹목적인 호감을 받는다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조금은 상대방에게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으리라.
“은섭아.”
“또 불러봐, 은섭이라고.”
“은섭아.”
“응―, 왜애, 영도야?”
파스타집에 가서도 내 손등을 간질이며 낮게 웃는 이은섭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살그머니 지나가길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은섭이 올곧게 나만 보는 게 약간 머쓱한 상태로 말문을 열었다.
“너 대학 어디로 가……?”
“아, 대학.”
가채점을 할 때도 영 자신 없어 하던 이은섭은 실제로 성적이 나왔을 때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은섭과 캠퍼스 커플이 될 미래는 일찌감치 접었다. 이전에 말했듯이 이은섭이 다른 학교에 진학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자주 보지는 못할 테니 그게 약간 아쉬울 뿐이지.
이은섭은 내가 묻는 말에 미간을 좁혔다가 풀며 푸스스 웃었다. 뭐 그런 걸 걱정했냐는 표정은 티끌 한 점 없이 맑았다.
“한국대학교.”
“진짜? 너 저번에 수능 망쳤다며.”
“수능 치기 전에도 그랬잖아. 한국대 갈 거라고.”
“그거야 그런데……. 사람 마음대로 다 되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너 한국대 못 가면 위로해주려고…….”
이은섭이 한국대에 못 간다고 해서, 그 애의 마음을 모른 척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정말로.
이은섭은 어물어물 말을 흐리는 내 볼을 톡 치고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부 입학 하는 거여서 11월부터 결정 난 거였어. 한국대 가는 거.”
“기부…… 입학?”
“어. 내 성적에 10억인가 기부하면 원예과는 들어갈 수 있다고 하길래 아버지한테 부탁 좀 했지. 너 입학하면 아버지네 회사 이름으로 장학금도 나갈걸? 태영도 공부 잘하잖아―.”
“아, 아…… 그, 그랬구나.”
“그랬구나, 이게 끝? 좀 더 좋아해야 되는 거 아냐? 나 너랑 같이 살 집도 알아볼 건데. 자취방 어디쯤이 좋을까? 방 두 개 있는 데로 가서 하나는 옷방, 하나는 우리 침실로 쓰자.”
대학에 가는 방법 중에 기부도 있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날 나는 이은섭이 사준 파스타를 반 이상 남겼다. 그러는 바람에 이은섭은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약국으로 가 오만 가지 비상약을 손에 들려줬고, 나는 집에서 그 애가 사준 약을 알뜰살뜰 챙기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다가 울고 말았다.
은섭이
아푸지 마 영도야ㅠㅠ 23:09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한 거지. 그런 생각으로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