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마주 웃어주고 싶어서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으나 기어이 눈물이 흘렀다.
“10년간 연습했어. 너한테 프러포즈할 때 직접 만든 꽃다발 주려고.”
오늘 만든 꽃다발이 가장 예뻐서 다행이다.
너는 그렇게 말하고서 맨바닥에 냅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작은 반지 케이스를 꺼내는 네 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고 있어서 나는 예전에, 너와 키스 후 헤어지던 때처럼 울고 말았다.
“많이 부족하지만, 너한테 평생 매여 있고 싶어.”
고개를 연신 끄덕였는데 어깨가 하도 떨려 그게 잘 안 보일 것 같았다. 나는 꽃다발을 품에 안고서 냅다 너한테 달려들었다.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나랑 결혼하자, 태영도!”
“응, 나도, 너 행복하게 해줄게.”
10년간 못 잊은 첫사랑이었다. 그 첫사랑이 이제는 내게 평생을 매여 있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사랑해, 은섭아.”
공원을 산책하던 사람 몇몇이 유난스러운 우리를 보고 박수를 쳐주었고, 그 사이로 틈틈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내일 기사에 얼마나 작위적인 사진이 뜰지. 뒤늦게 부끄러워져 꽃다발에 코를 박고서 얼굴을 숨겨보았지만 웃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태영도 엉덩이에 털 났나 확인하게 빨리 집 가자.”
“이 변태야!”
“날 변태로 만든 건 너야.”
반지를 끼워주고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는 네게 목도리를 두르는 척하며 입술 도장을 찍었다.
“확인시켜줄 테니까 얼른 집에 가자.”
난리를 치는 사이 자정이 되었다. 서른이 된 늦은 밤, 우리는 비로소 집으로 향했다.
『늑대와 함께 춤을』 <완결>
외전 1. 예쁜 내 거
“아, 아!”
“왜, 못 하겠어? 안 될 것 같아?”
“어떡해…… 아!”
영도는 모니터 앞에서 절규했다. 분명히 이은섭 팬미팅 가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이은섭의 팬카페에서 다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라는 글이 여럿 올라왔었는데 이게 다 무슨 일일까?
1월 1일을 화려하게 장식한 두 사람의 스캔들을 이은섭의 소속사는 일절 부인하지 않았다. 상체만 한 꽃다발을 안고서 우는 남자와 그 남자를 안고 뿌듯하다는 듯 웃는 남자의 사진은 뭇 커뮤를 뜨겁게 달궜다.
열애설 사진이 찍힐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드러내놓고 사귀는 티를 내라는 건 아니었는데. 은섭의 소속사 대표는 머리를 싸매고서 짧게 고민한 뒤 두 사람은 열애 중이 맞으며, 올해 상반기에 결혼 예정이라고 아주 쿨하게 인정했다.
연인 관계라고 인정한 것치고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목격담이 너무 많기도 했거니와 은섭이 티를 지나치게 많이 낸 덕이 컸다.
“내가 표 준다니까. 한 자리 빼는 거 안 어려워. 은조 그 새끼 자리에 우리 영도 오면 딱이네.”
“……취소표 티켓팅 하면 돼.”
“아오, 그거 새벽에 하는 거 아냐? 잠이나 자. 무슨 새벽까지 티켓팅을 한다고 난리냐? 네가 원한다면 난 네 앞에서 스트립쇼도 가능한 쉬운 남자야. 팬미팅이랑은 수위 자체가 다르다니까?”
빈말이 아니라는 듯 제 앞에서 바로 웃통을 까고서 울룩불룩한 근육을 자랑하는 이은섭을 영도는 한 번 흘겨봤다. 남의 속도 모르고 평상시처럼 까불거리는 모습이 얄미워 견딜 수 없었다.
“그만 놀려라.”
“놀리는 게 아니라 우리 영도를 위한 서비스라니까―.”
제법 무섭게 인상을 쓰고 노려봤음에도 한번 시작한 육체미 소동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도는 허리를 튕기며 외설스럽기 짝이 없는 행위를 이어 가는 은섭을 외면했다.
이은섭 네가…… 네가 뭘 알아. 네가 내 맘을 알아? 네 도움 없이 팬미팅 가고 싶었던 내 맘을 아냐고!
은섭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영도는 미래의 배우자 몰래 팬미팅에 가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계획이 초장부터 망한 것이다. 느려터진 손가락 때문에.
이유는 지난 12월 31일에 받았던 꽃다발을 저도 전해 주고 싶어서였다. 원예과를 나온 은섭이 만든 퀄리티의 꽃다발을 자신이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제 정성이 담긴 꽃다발을 만들어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팬미팅 자체도 못 가게 생겼으니…….
작년 말 은섭에게 프러포즈를 받으며 제 몸만 한 꽃다발을 받은 영도는 꽃을 곱게 말려 책갈피로도 만들고, 바삭한 드라이 플라워를 여러 송이 엮어 화병에 예쁘게 꽂아 놓기도 했다. 집 안 어디를 가도 은섭이 만들어 줬던 꽃다발의 흔적이 있는 게 어찌나 좋던지. 생기라고는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은 꽃이지만, 볼 때마다 은섭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래서 저도 팬미팅이 끝난 후 짠, 하고 꽃다발을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그건 몰래 하지 않으면 감동이 반으로 뚝 떨어지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영도의 머리를 지배했다. 아무래도 은섭이 아주 거하게 프러포즈를 한 덕에 영도는 그에 준하는 선물을 팬미팅 무대 아래서 주고 싶었다.
“됐어, 나 들어가서 잘래.”
제 속도 모르고 주접스럽게 가슴 근육을 오른쪽 왼쪽 차례로 움직이는 예비 신랑을 흘겨보던 영도는 아주 트워킹까지 하게 생긴 은섭의 엉덩이를 짝 소리 나게 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나게 육체미 소동을 완수한 은섭은 영도의 볼을 쪼물거리며 장난을 칠 뿐이었다.
“알겠어. 네 자리 하나 빼놓으라고 할게. 걱정 마, 영도가 그렇―게 은섭이를 좋아한다는데 회사 사람들도 이해할 거야. 솔직히 신랑 사랑하는 마음을 내 주변 사람들이 몰라줄 리 없어. 나같이 완벽한 신랑이 어디에…… 읍.”
“말 좀 그만해, 나 진짜 심란하니까…….”
“허 참. 왜 이렇게 심란해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네.”
잔뜩 시무룩한 영도의 앞에서 보디빌더 자세를 취한 은섭은 기어이 한 대를 더 맞았다. 제발 장난 좀 치지 말라고 엄중하게 꾸짖었으나 그는 반성을 모르는 늑대였다.
“안 되겠다. 제대로 스트립쇼 보여 줄게.”
“삡!!”
“어딜 도망가, 이리 와!”
“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