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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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태영도입니다.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셨다고 들었는데 오시는 데 힘들지는 않으셨고요?”
첫인상은 ‘와, 진짜 잘생겼구나.’였다. 방송국에서 일하며 연예인깨나 많이 봤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도 시선이 가는 미남이었다. 아주 빚은 듯이 잘생긴 남자와 악수하며 속으로 저렇게 생긴 사람은 사는 게 어떤 느낌이려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 반질반질한 느낌이었다. 조부모가 ‘사내놈 얼굴 빤빤하면 재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게 이런 느낌이려나. 분명 잘생겼지만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남들도 그렇게 느끼는 걸까? 나만 있을 때는 굉장히 수다스럽게 재잘거리던 작가들이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대충 인사하고 집에 다시 가서 몸조리하세요. 그런 마음을 담아 악수를 위해 손을 뻗은 나는 내 손을 낚아채는 악력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 나았습니다. 금요일까지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여간 답답한 게 아니더군요.”
“그래도 아플 때 푹 쉬어줘야 회복에 도움이 될 텐데요.”
“안 아프니 제 라디오 대타를 맡아주신 영도 씨를 뵈러 왔죠. 저 영도 씨 팬입니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부드럽게 답하고 싶었으나 의지와는 달리 입에서 나오는 건 단답뿐이었다. 방긋방긋 웃는 입매가 시원스럽게 보기 좋아야 정상인데 나는 그에게 마주 웃어주기가 조금 힘들었다.
악수가 좀처럼 끝나지 않아 손을 털어내듯 떼어내는 순간에 그의 엄지가 내 손바닥을 쓸고 갔다.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나는 섹슈얼한 뉘앙스를 빠릿빠릿하게 눈치챌 줄 아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이은섭이 넌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이것저것 가르쳐준 게 도움이 되었다.
라디오 대타도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한번 눕혀보려고 그랬나. 이전 같았다면 허허 웃고 넘어갔겠으나 이은섭은 아주 까탈스럽고 다루기 힘든 애인이었다. 애인 비위를 맞추려면 이런 식의 플러팅에 실수로라도 장단을 맞춰줘서는 안 되었다.
“저는 바로 녹음 들어가야 하는데 박 배우님도 일 보러 가시죠. 잠시 들르신 것 같은데.”
“잠시 들른 게 아니라 오늘 영도 씨 녹음하는 거 보는 게 제 일정의 전부인데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아, 예.”
“안…… 아프세요, 오빠?”
“어, 안 아파.”
무슨 놈의 배우 스케줄이 남의 녹음하는 걸 바보처럼 구경하는 것인지. 어이가 없어 작게 실소하자 보다 못했는지 작가 하나가 안 아프냐며 눈치를 줬다. 박재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손목이며 발목을 유난스럽게 돌리며 자기가 멀쩡하다는 걸 보여줄 뿐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부스 안으로 들어가며 나는 돈가스를 챙기는 대신 작가들이 사 온 카야 토스트를 챙겼다. 유리 부스 바깥에서 내가 토스트를 먹는 걸 보며 박재현이 돈가스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으나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섭아 나 라디오 녹음 중인데 갑자기 박재현 왔어 20:49
내 착각일 수도 있는데 박재현 배우가 나 좀 그런 식으로 보는 것 같아서 20:50
이따 집 갈 때 20:51
섭♥
???????????????????? 20:51
데리러갈테니까이따연락받아;;
개미친새끼;; 대가리에 총 맞았나 누구한테 껄떡대 깝죽거리는것도 봐가면서해야지
눈에 띄는 거 안조아하니까 검은색 차 타고 갈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차-3-
이따 집 갈 때 택시 타고 얼른 가겠다고 하려 했는데 1분 안에 무슨 놈의 메시지를 이렇게 빨리 보낼 수 있는 건지.
우다다다 오는 메시지 세례에 잠시 먹던 토스트도 내려놓고서 벙쪄 있던 나는 유리 부스 밖에서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답신을 보냈다.
나 〈응 택시 타고 가려 했는데 안 되겠다ㅠㅠ 부탁할게 은섭찌-3-〉 20:52
이은섭에게서 온 답신에 그제야 편안하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섭♥ 〈잘난 애인 두니 아주 몸이 피곤하다 피곤해!〉 20:53
섭♥ 〈하지만 그게 바로 오복 중 하나지 우리 복덩이 데리러 지금 간다 주차장에서 기다릴게-3-〉 20:53
우리 둘이 경쟁적으로 쓰는 눈 감고 입술을 내미는 듯한 표정의 이모티콘이 가득한 메시지를 보다가 녹음에 임했다. 별일이야 있을까, 이은섭이 이따 데리러 온다고 하기까지 했으니 무슨 일이 생길 리 만무했다.
“한 해의 반이 훌쩍 지났네요. 저도 서른을 목전에 두게 되어 알밤 님이 보내주신 사연에 공감이 많이 됩니다. 거쳐온 사람들은 다들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사실 서른을 앞둔 사람들은 그렇게 가볍게 하하, 하고 넘기기가 힘들죠.”
밤 시간대 라디오답게 고민 상담 코너가 성황이었다. 작가들 말로는 주로 박재현 팬들이 보내는 연서에 가까운 상담도 많다고. 다행히 내 앞으로 온 사연 중 그런 러브레터는 없었다. 대신 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의 사연이 있었다.
서른을 앞둔 사람의 마음. 그건 스물을 앞둔 사람의 마음과는 전혀 다를 터였다. 아무래도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모두 기대감에 부풀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앞자리가 2를 벗어난다는 것은 부담감으로 다가오기 쉽지 않을까. 한 사람의 몫을 온전히 해내기도 전에 너무 나이 들어버린 느낌이기도 한 나이, 서른.
그러나 나는 조금 달랐다. 나는 스무 살이 되는 게 더 무서웠다. 이제 성인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잠들기 힘들었고 취업 방향을 정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기댈 만한 구석이 없었다.
“서른을 앞두고 저는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걱정은 있지만, 그 걱정에 매몰되어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을 계속 강구하는 중입니다. 아마 제가 20대 초반이었다면 그런 방법을 찾기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요즘은 제가 단단해졌다고 느끼고 있어요.”
작가들이 준 대본을 거의 다 살리는 동시에 내가 실제로 느꼈던, 그리고 지금 느끼는 감정도 말했다.
“지금 하는 고민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이었다고 알밤 님도, 저도,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둔 청취자 여러분들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어요. 알밤 님의 신청 곡 틀어드리며 선물로 지금 흐르는 곡의 주인공이 직접 사인한 시디 보내드리겠습니다.”
라디오 애청자들의 애칭인 ‘알밤’을 사연이 끝난 후에도 몇 번 발음해 보았다. 알밤, 알밤. 보통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청취자들에게 애칭을 지어 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알밤은 유독 귀여운 느낌이었다.
사연 보내 준 청취자에게 기댈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도 힘든 시기는 지나가는 법이었다. 내 마음이 라디오를 통해 다 전달될 리야 만무하지만, 어느 정도만 전달되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오늘 녹음 고생 많으셨어요! 금요일에 저희끼리 간단히 자축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태 아나운서님 점심 괜찮으세요?”
“아, 네! 좋습니다.”
“뭐가 좋은데요? 왜 나 빼고 얘기해. 내가 이 프로그램 디제이인데?”
“별 얘기 아니었어요, 오빠.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셔야죠.”
퍽 살갑게 귓속말을 한 이유가 내가 가까이 느껴져서가 아니라 박재현이 못 듣게 하려 그런 거였나?
박재현이 근거리에 오자마자 내게서 후다닥 멀어지는 막내 작가에게 짧게 시선을 두었다가 서둘러 묵례했다. 제작진과 점심을 같이 하는 건 좋았지만 그 자리에 박재현이 끼는 건 어쩐지 싫었다.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