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은섭이 갈수록 내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나도 그 애에게 되도록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노력하는 순간들이 쌓여갔다. 알게 된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우리는 손도 잡고 포옹도 하고 뽀뽀도 했다. 물론 우리 반에도 사귀는 애와 섹스까지 한 애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연애가 내가 사는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은섭과 사귀는 사이까지는 아니기도 했다.
“면접 어땠어?”
“그냥저냥.”
“잘 봤지? 하기야, 태영도 얼굴 보면 ‘아 씨발 합격!’ 하고도 남는다.”
“어떤 면접관이 아 씨발 합격이라고 해…….”
“말이 그렇단 거지, 말이.”
학생부 종합 전형 면접이 엊그제였다. 가장 가고 싶던 대학인 한국대 면접이어서 담임과 한 달 전부터 자습 시간에 면접 준비를 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한국대 면접이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넣은 대학 중 맨 마지막에 잡힌 면접이어서 더 덜덜 떨었는데 이제 내 손을 떠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만은 편했다. 담임은 내게 네 군데 중 두 군데 이상은 붙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고 나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긴 했다. 가장 가고 싶은 대학에 붙는 행운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으니 마음을 놓자고 몇 번이나 되뇌기도 했고.
운이 좋으면 가는 거고 아니면 다른 대학 가면 되지. 내 옆에서 100퍼센트 붙었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이은섭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별별 짓을 다 했으면서도 여전히 바짝 긴장하는 게 그 애답지 않기도, 그 애답기도 했다.
“너도 한국대 넣었잖아. 우리 둘 다 공부해야 되는데 뭐 하고 있냐, 진짜.”
“하루 쉰다고 성적이 수직 낙하하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그리고 나야…… 원예과는 최저만 맞추면 된대. 그리고 정 안 되면.”
“정 안 되면?”
“아, 뭐…… 재수할 생각은 없으니까 나도 다른 데 가는 거지. 나 공부에 뜻 없어.”
공부에는 뜻이 없지만, 대학은 서울에 있는 데를 가고 싶어 한 이은섭은 남들은 되도록 넣지 않는 과에만 원서를 넣었다. 나는 이은섭이 한량처럼 꽃집에서 장미 줄기를 다듬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약간 기이한 행복을 느꼈다. 이은섭이 그러고 있으면 내가 매일매일 꽃집에 찾아가서 흙도 옮기고 꽃시장도 같이 가야지, 그런 먼 미래를 그리다 보면 갑자기 부끄러워져 괜히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나 그게 내 진심이었다.
이은섭과 내가 다른 세상에 사는 걸 알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이은섭과의 미래를 그렸다. 훗날 내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든 간에 이은섭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멈출 수가 없었다. 너를 좋아하니까.
“넌 무슨 남자애가 이마가 이렇게 봉긋하냐.”
“넌 납작해서 좋겠다.”
“하여간 뱁새 같다니까, 이마가 이러면, 어?”
“왜!”
“이은섭한테 뽀뽀나 당하지.”
얼굴을 턱 하니 붙잡고서 이마에 멋없이 입술을 꾹꾹 누르며 자기 거라고 도장이라도 찍듯 뽀뽀한 이은섭의 얼굴이 벌게서 내가 다 창피해졌다. 그래도 예전만큼 뻣뻣하지는 않아서 나도 이은섭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 * *
“아, 진짜 떨려서 나 못 보겠어…… 네가 눌러봐.”
“와, 반장 저렇게 떠는 거 나 처음 본다.”
“나도. 영도, 내 손이라도 잡을래?”
“어, 어. 손 좀 줘.”
하필이면 수능을 딱 일주일 앞두고 한국대 최종 면접 결과가 나왔다. 이미 대학 한 군데를 붙어서 이렇게 안달 낼 수준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고 싶은 대학의 가고 싶은 과에 대한 결과가 나오는데 제정신을 붙들고 있기가 힘들었다.
컴퓨터실에 모여 앉아 어떻게 하냐고 발을 동동 구르던 나는 옆에 있던 반 애에게 손을 주었으나 금세 다른 애의 손을 잡게 되었다. 아주 익숙한 손의 감촉이었다.
“야야, 내 손 잡아. 저 새끼 손 존나 단풍손이야.”
“너는 왜 남의 손 갖고 지랄인데……!”
투덜대는 목소리와 긴장하지 말라는 이은섭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오늘 결과가 나오는 건 나뿐인데도 자기 일처럼 왁왁거리는 반 애들 사이에서 나는 이은섭의 손을 마지막 동아줄이나 되는 양 꼭 쥐었다.
“씨발, 야야, 눌렀다! 나 눌렀다, 반장!!”
“와 씨, 우리 반에서 한국대 나오나요?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두렵지 않죠?! 악!!”
“나 진짜 못 보겠어서 그런데 누가 대신 좀 봐주면 안 돼?”
“씨바, 영도, 그럼 내가 볼게. 가보자고!”
“하나둘셋 하면 손 떼라, 너네.”
“하나, 둘, 셋!”
“아악!”
나보다도 더 오버스럽게 소리를 지르던 애들의 소리가 일순 멎었다. 눈도 못 뜨고서 기도하듯 이은섭의 손만 쥐고 있던 나는 불시에 들어 올려졌다.
“으악!”
“오늘부터 태영도는 우리 반의 신이다.”
“영도 씨발―!! 태영도 미쳤다, 한국대 경영 붙었다고!!”
“무, 뭐? 와…… 와!”
“야야, 천장으로 쏘아 올려!”
합격했다는데 정작 합격한 나는 합격 창도 못 본 채 반 애들에게 헹가래를 당했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 속이 울렁거렸지만 반 애들이 다 축하해주는 게 고맙고, 못내 좋아서 나도 환호성을 질렀다.
“이 씨팔 새끼들아!! 태영도 떨어뜨리면 뒤진다 진짜!”
안절부절못하는 건 이은섭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