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래.”
“싫냐?”
“싫다기보단…… 오늘 되게 치대네.”
늑대 아빠는 토끼 아빠보다 무려 열두 살이나 많으면서 틈만 나면 들이대기 바빴다. 나물 무치듯이 손을 조물조물 만져대다가 배도 만지작거리고, 그러다가 자기 무릎에 앉히고는 볼에 입술을 맞대고는 무어라고 귓속말을 하기 일쑤였다. 토끼 아빠는 그때마다 늑대 아빠를 귀여워죽겠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이따가, 애들 안 보는 데서’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허구한 날 뽀뽀나 하고 있는 아빠들을 떠올리며 태영도에게 들러붙었다. 장난인 척 자기야, 그렇게 부르기도 했는데 실은 화장실로 달려가 심장을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떨렸다. 괜히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하는 나를 태영도는 이상하게 보면서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설마 내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겠지? 다른 애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으나 태영도가 나를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빴다.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뭘 그렇게 잘해주느냐 묻는다면 딱히 말할 건 없다) 날 싫어할 리가 없지.
“다른 게 아니고…… 나는 너랑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하거든.”
내 예상대로 태영도도 나를 퍽 가깝게 생각하는지 내 머리도 쓰다듬는 수준으로 우리 관계는 발전했다. 이대로면 무난하게 대학 갈 때쯤 정식으로 사귀고, 대학 졸업하기 직전에 결혼도 가능하겠지? 토끼 아빠가 스무 살 때 결혼을 했으니 나도 좀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카페에 가자고 하더니 내게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라고 말하는 태영도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이어지는 말에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랑 짝 되면서부터 우리 둘이 야자도 하고 그랬잖아. 그래서, 음…… 내가 너한테 좀, 그러니까 네 기분에 내가 많이 좌지우지되는 것 같아서.”
“아, 어…… 어? 나 때문에?”
“너는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너 가끔 느닷없이 정색할 때 있거든……. 그때마다 너한테 뭐 잘못했나 싶어서. 혹시 내가 뭐…… 고칠 거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만약에 있으면 편하게 말해도 돼. 나 그런 걸로 꽁해 있고 안 그래.”
……태영도는 나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내 눈치를 보는구나.
순간 참담한 기분이 되었다. 열심히 들이댔는데 나를 좋게 보는 건 둘째 치고 내 눈치를 봤다고? 내가 한 학년 선배도 아니고 동갑인데…….
늑대 아빠가 하던 대로 했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나 곰곰 생각하는 내 앞에서 태영도는 아주 친절히 자신이 나를 어렵게 느낀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뭐만 하면 너 갑자기 창문 보는 거 알아?”
“내가?”
“어. 야자 할 거냐고 물어보려고 손등 찌르면 너 막 손도 팍팍 털잖아. 솔직히 그거 기분 나빠. 나한테서 무슨 나쁜 냄새 같은 거 나면 말해줘.”
코 박고 죽고 싶은 향기밖에 안 나는데 나쁜 냄새는 무슨 나쁜 냄새…….
울고 싶어졌다. 나는 그저, 잘 보이고 싶은 태영도의 앞에서 가오 죽게 늑대 귀나 꼬리가 튀어나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그런 것뿐이었는데.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좋아서 졸도를 할 것 같아 그런 거라는 말을 할 수는 없어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내가 시킨 아이스티가 담긴 유리잔이 나 대신 땀을 뻘뻘 흘렸다.
“나도 너 좀…… 신경 쓰이거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듯. 미안.”
“그러니까 어떤 점이? 말해주면 안 돼?”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는 늑대 귀나 꼬리가 나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자리에서 옷을 찢고 늑대로 변신도 가능할걸.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는 이유를 알려달라는 태영도의 볼을 붙잡고서 아빠들이 하는 것처럼 입술을 쪽쪽 빨고 싶었으나 다리를 달달 떨며 참아냈다. 지금도 완벽하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점수가 깎일 만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아 좀, 말로 정리할 수가 없는데…… 나쁘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고. 너도 눈치챘겠지만 내가 반에 특별히 친한 애가 없잖아. 학교 애들이 좋은 거든 나쁜 거든 간에 내 뒷얘기 하고 다니는 거 나라고 모르겠냐. 근데 영도 너는 딱히 나한테 벽 치는 것도 없고 하니까, 나도 너랑 친하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아, 씨발! 아, 존나 정리가 안 되네.”
“갑자기 왜 욕을 하고 그래.”
“아, 개씹 답답해서. 너한테 불만 있는 건 존나 하나도 없어. 네가 나 그렇게 신경 쓰는 줄 알았으면 내가 조심했을 텐데 고 3 되면서 눈치 다 뒈졌나 봐. 앞으론 신경 안 쓰이게 할게.”
내도록 내 눈치를 봤다던 태영도의 눈치를 살피며 그 애의 새끼손가락을 쥐고 흔들었다. 나를 미워하지 말라는 뜻을 담아서. 다행히 태영도는 내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줬다.
“태영도, 스무 살 되면 나랑 맨 먼저 술 먹자.”
머지않은 미래에 너한테 고백하겠다고 예고하기.
“몇 달 뒤 얘기를 벌써 하냐.”
“미리 약속해. 그때 말해줄게, 너 왜 신경 쓰이는지.”
딱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개수작이었다.
* * *
태영도를 좋아하는 마음은 아주 순조롭게 커갔다. 일거수일투족 마음에 안 드는 게 없는 태영도. 어떻게 반장이기까지 할 수가 있지? 멋있게. 토끼 아빠가 말한 대로 태영도의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좋았다. 그런 환경에서도 항상 1등을 사수하는 명석한 두뇌. 누가 종교를 물어보면 ‘종교 같은 건 없지만, 요즘은 태영도라는 애처럼 살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나는 태영도가 뱁새 수인이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뱁새 수인?”
“응.”
“나중에 한번 보여주라.”
“내가 왜……?”
“보여달라면 좀 보여줘.”
“그래, 나중에.”
씨발! 뱁새라니…… 존나 귀엽다……. 태영도가 뱁새 수인이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바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 나는 그날 이후로 핸드폰 배경 화면을 뱁새 사진으로 바꿔놓았다. 태영도는 아마 뱁새 중에서도 제일 동그란 뱁새일 거라고 멋대로 단정 지은 나는 언젠가 내 손바닥 위에서 뱁새로 변해 잠들 태영도를 상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태영도를 아주 한없이 좋아하게 된 데는 태영도의 역할이 지대했다. 다른 반 애들에게는 은근히 벽을 치는 태영도는 내게만은 다정했다. 가끔 나를 남동생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 애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오고 난 후에 확신했다.
“이불에서 네 냄새 나…….”
“뭐, 뭐? 야, 무슨 뜻이냐, 그거?”
기말고사가 끝날 때쯤 태영도는 우리 집에 아주 자주 오게 되었다. 아빠들은 내가 처음으로 태영도를 데리고 가자 ‘이 자식이 왕따는 아니었구나.’ 하고 안도했고, 그 친구가 심지어 매우 착실해 보이는 데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 자주 가는 건 실례라고 생각하는 태영도에게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일갈하고 아주 뻔질나게 태영도를 집으로 끌고 갔다. 너무 자주 끌고 가니 토끼 아빠는 내가 태영도를 친구 좋아하듯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애 상대로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했으나 별 신경을 쓰진 않았다. 어차피 사위로 태영도를 들이게 될 텐데 미리미리 보고 서로 인사를 해두면 좋으니까.
처음에는 우리 집에 오는 걸 부담스러워하던 태영도는 딱 2주 만에 내 침대에서 낮잠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폐를 끼치면 안 된다며 발소리도 조용조용 걷던 태영도가 내 침대에 눕다니. 게다가 내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이불에 고개를 폭 잠기게 묻다니!
“야, 자냐?”
저 새끼가 나한테 끼를 부리는 게 분명하다고 잠든 태영도 앞에서 길길이 날뛰던 나는 괜스레 태영도에게 말을 걸었다. 자냐? 자는 척하는 거 아니냐? 자는 척하는 거면 넌 진짜 쓰레기야. 아니, 쓰레기는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