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로 변했으나 영도는 집 안을 두 바퀴 돌고 나서 은섭에게 잡히고 말았다. 은섭의 손안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던 영도는 힘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스트립쇼, 그래. 나쁘지 않았다. 저는 은섭의 몸을 너무나도 좋아하니까.
그래도 팬미팅은 꼭 가고 싶었는데, 내 이벤트는 어떡하지…….
“삐이…….”
“뱁새는 특별히 VIP석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만을 위해 옷을 훌렁훌렁 벗어 재끼는 은섭을 보면서도 영도는 시무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어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 * *
은섭에게 미련일랑 하나도 남지 않은 척했으나, 영도는 사실 팬미팅 표를 갈구했다. 하여 티켓팅 날 이후, 영도는 은섭 모르게 뒤에서 열심히 취소표 티켓팅에 참전했다.
“악……!”
그러나 이번에도 이선좌였다. 이런 망할, 새벽 두 시에 은섭 몰래 잠을 이겨 내고 참전했는데도 실패라니. 이번에는 티켓팅 전에 하는 게임을 10분 정도 하기까지 했는데도 허사였다. 영도는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은 남자친구의 팔을 팍팍 때리고서 자리에 누웠다.
진짜 포기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오기가 생겼다. 영도는 취소표 티켓팅까지 실패하자 그 속상함을 대학교 친구에게 넌지시 전했다.
“아, 진짜 이벤트 해 주기 힘들다, 힘들어.”
“너 진짜 이벤트 때문에 그래?”
“그……럼. 다른 이유가 있겠냐.”
“이벤트는 아무 때나 해 줘도 되잖아.”
근황 얘기를 하다가 이러쿵저러쿵 속을 털어놓자, 친구에게서는 뭘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아주 복에 겨워 호강에 요강을 차는구나, 네가.”
“왜……. 깜짝 이벤트 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깜짝 이벤트는 그냥 하는 말이지? 너 그냥 팬미팅 가고 싶은 거잖아.”
핵심을 찌르는 말에 영도는 뜨끔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사실 친구 말이 맞았다. 이벤트야 언제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섭은 제가 별거 아닌 이벤트를 들고 가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좋아할 사람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한 번 하는 연애를 남들 열 번 연애하는 거랑 맞먹게 하네.”
“무슨 소린데.”
“아―주 유난스럽다고.”
그렇다. 문제는 팬미팅……. 그것도 결혼 전 팬미팅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었다.
결혼 상대가 자기 자신이기는 하지만 기혼일 때와 미혼일 때 팬미팅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은섭의 팬카페에서 ‘유부 되기 전 총각 이은섭을 볼 마지막 기회’라는 노골적이고도 간절해 보이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오지 않았던가! 매일 보는 이은섭도 좋지만 큰 무대에서 방방 뛰는 이은섭이 보고 싶었다. 남들이 말하는 ‘총각’ 이은섭을.
그런데 티켓팅을 이렇게 실패할 줄이야. 맨 뒷자리여도 괜찮으니 몰래 가서 모두 다 보고 그다음에 퇴근길에 짠, 하고 꽃다발을 주고 싶었는데. 이것도 저것도 다 실패하니 속상할 수밖에.
친구의 반응에 그냥 이벤트만이라도 해 줄까, 싶어 꽃다발 만들기 체험을 검색하던 영도는 새로운 화제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 나 신선도 또 올랐다.”
“신선도?”
“내가 요즘 미니멀 라이프에 꽂혔잖냐. 그래서 집에 있는 세간살이 다 팔고 있어.”
“어디, 뭐 팔았는데?”
“오늘은 겨울옷. 안 입는 패딩 팔았는데 쏠쏠하다.”
요즘 중고 거래에 푹 빠졌다는 친구는 ‘상추의시대’라는 닉네임의 회원과 짧게 채팅을 이어 가더니 거래가 성사될 것 같다고 쾌재를 불렀다. 영도는 친구가 하는 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상추 마켓…….”
“너 팬미팅 티켓도 여기서 한번 구해 봐. 잘하면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거다, 상추 마켓.
영도는 그날로 상추 마켓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그러곤 친구가 가르쳐 준 대로 글을 올렸다. 아주 정직하기 그지없는 제목으로.
[이은섭 팬미팅 티켓 양도 구합니다]
과연 신선도 10% 회원다운 글 제목이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후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채 영도는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손가락을 놀렸다. 같은 제목으로 팬카페에도 올리고, 다른 SNS에도 올린 다음 반응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계획은 알림만 확인하는 것이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온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게 되었다.
딱 한 명만 팔아 주면 되는데, 많이도 필요 없고 좋은 좌석도 필요 없고 그냥 딱 한 명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저를 끌어안고 누운 은섭을 등지고서 몰래 핸드폰을 보던 영도는 불시에 질문하는 목소리에 어깨를 움칠 떨었다.
“뭐 하는데, 뱁새.”
“어? 아무것도. 자자.”
“반응이 왜 이래. 수상하다?”
“내 반응이 뭐. 피곤할 텐데 이리 와. 오늘은 뭐 때문에 이렇게 늦게 왔어?”
“팬미팅 무대 때문에. 티켓 값은 해야 할 거 아냐.”
“무대…… 무대 뭐 뭐 하는데?”
“어구구, 내 새끼 궁금해? 형아가 뭐 하는지 궁금해요, 영도찌?”
“짜증 나!”
은섭에게 넌지시 무슨 무대를 하기에 그리 고생이냐고 물어본 영도는 애 취급을 당하자 꽥!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팬미팅에 연연하는 자신이 퍽 지질하게 느껴졌기에 더더욱 은섭의 이런 반응이 달갑지 않았다.
은섭은 그런 제 머리를 쓱쓱 만지고서는 곰곰 생각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노래 두 곡이랑, 춤도 세 갠가 준비했고 연애 상담, 고민 상담……. 아, 꽃꽂이 시간도 있다.”
은섭이 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무대 해 봤자 얼마나 하겠어, 싶었던 영도의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