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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블릿 피시를 선물받고 난 후에 이은섭은 조금 달라졌다.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는 핑계를 대며 손을 잡고 걷다가도 인적이 드물면 괜히 손등이나 볼 같은 곳에 제 입술을 꾹 찍어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너 핸드크림 뭐 써?”
“그냥 아무거나.”
“아무거나 쓰는데 좋은 냄새 나. 나도 네가 쓰는 거 따라 사도 돼?”
“응. 맘대로 해.”
“뽀뽀도 해도 돼?”
냄새 맡는 척하면서 이미 몇 번이나 입술을 뭉갠 주제에 마치 처음으로 뽀뽀를 하는 양 허락을 받는 게 약간 가증스러웠지만, 그러라고 손등을 내어줬다. 촉 소리를 내며 붙었다가 떨어지는 입술에 온몸이 좋다고 지랄발광을 했으나, 나는 그즈음 이은섭이 쓰는 모든 물건이 꽤나 비싸다는 것에 온 정신이 붙잡혀 있었다.
“안아봐도 돼?”
“아 씨, 안 돼!”
“왜?!”
이은섭이 꽤 사는 집 자식인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애의 집에 여름 방학 내내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니까. 내가 갈 때마다 불량식품과는 거리가 먼 제철 과일을 간식으로 먹을 때마다 맨날 이런 걸 먹나? 하는 생각도 했고.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이런 걱정은 사실 이은섭의 입장에서는 새삼스러울 만했다.
“이게 그렇게 발끈할 일이야?”
“뽀뽀는 되는데 안는 건 왜 안 되냐고. 이해가 안 가서 그럼. 네가 잘 설명하면…… 야, 그래도 한 번만 안아보자. 뭐 내가 한 번 안는다고 네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날도 존나 추워. 나 네가 안 안아주면 추워서 여기서 요절한다. 진짜로. 나 추위 존나게 타.”
나를 좋아한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이은섭이 조금만 덜 잘살았다면 나도 튕기지 않고 단박에 안겨주었을 텐데.
10월 말이었다. 이은섭은 나와 같은 학교는 아니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정도의 성적은 되었다. 나 하나면 몰라도 우리 둘 다 한국대에 가는 것은 조금 힘들 듯했다. 이은섭은 공부에는 진심으로 관심이 없는지 내가 진학을 희망하는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학교를 리스트로 만들기도 했다. 무조건 한국대랑 가까이 있는 학교면 된다는 말은 하나도 한심하지 않았다. 마냥 좋기만 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은섭과 같이 자취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1학기 때도 덩치가 좋았는데 반년 후인 지금은 웬만한 성인 남성이 와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체격이 좋아진 이은섭이 성큼 내게 다가왔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이은섭의 허리를 먼저 끌어안았다. 안 그런 척해도 너는 내가 무언가 하기 전에 먼저 다가오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게 나를 위한 배려라는 걸 알아서 나는, 나는.
“……내가 저번에 너 뱁새 같다고 한 거.”
“응.”
“그거 귀엽다는 소리였어.”
나는 네가 좋아졌다. 어쩌면 네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이.
허리에 손만 올리다시피 해서 살짝 안은 나와 달리 이은섭은 있는 힘껏 나를 끌어안았다. 손을 잡아올 때도 네 손이 큰 건 알았지만 두 손을 펼쳐 내 등을 온전히 감싸 안자 내 등의 반이 가려질 정도였다.
한동안 내 등을 도닥이며 어깨에 턱을 괴고 있던 너는 입술 근처에 네 입술을 꾹 누르며 말했다.
“자기 전에…… 매일 네 생각을 해.”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언젠가부터는 자기 전에 네 생각을 했는데. 언제쯤이면 네 생각을 안 하게 될지 잘 모르겠어, 은섭아. 그런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