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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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는 건 연애 인정?”
“상대는 누구야? 여자? 남자?”
“아이―, 그런 건 실례야! 요즘 MZ 세대한테 그런 거 물어보면 우리 다 인사부 상담 받아야 된다고!”
“그럼 못 들은 걸로 쳐요!”
“저 촬영 준비를 해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응, 들어가요.”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네게서 메시지가 와서 어려운 질문을 피할 수 있었다.
은섭이
자기야 나 지금 주차장 왔어♥ 13:02
이은섭이 마지막으로 체험할 삶은, 아나운서의 삶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대신 아래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은섭의 밴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은섭아―.”
“어구어구, 왔어, 우리 태 아나. 어디 한번 안아보자.”
“아저씨 같아…….”
“안 그래도 너랑 붙어 있는 거 팬들이 아저씨랑 학생 같다고 해.”
매니저더러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라고 했다며 밴의 문을 열어준 이은섭은 내 허리를 답삭 끌어안고는 무릎에 앉혔다. 에어컨 바람을 계속 맞고 왔는지 딱 기분 좋을 만큼 사늘한 몸이 좋아서 목과 어깨 사이에 얼굴을 누이고 안아주자 이은섭은 뽀뽀를 해달라고 조르는 얼굴이 되었다.
안 해줄 이유가 없지. 피부 화장이 무너지지 않게 양 볼에 조심스럽게 입술을 눌렀다 뗀 나는 사귀고 난 후로 매일 심각하게 잘생겨 보이는 내 애인을 다시금 끌어안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 듣지 마. 너처럼 귀여운 애가 어디 있다구.”
“내가 귀여운 거랑 노안인 거랑은 별개잖아…….”
“누가 노안이래? 데리고 와.”
“데리고 오면 혼내주게?”
“혼내지는 못하고…… 근데 너 진짜 노안 아니야. 그냥 딱 제 나이처럼 보여.”
“관리를 존나게 받으면 뭐 하나…… 팩 하나 안 하는 태영도만 못한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쌍한 표정을 짓는데 그게 실제로 불쌍해 보이는 내 눈이 문제였다. 나는 작게 한숨까지 쉬며 리프팅이라도 해야 할까 싶다는 말을 하는 이은섭에게 안겨 버럭 화를 냈다.
“안 돼! 하지 마. 지금 이대로가 좋아. 처진 데가 없는데 리프팅은 무슨 리프팅?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 중에 너보다 잘생긴 새끼 없어.”
“진짜……? 영도 있잖아……. 영도가 나보다 잘생겼잖아.”
“그거야 네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고. 객관적으로 은섭이 네가 훨―씬 잘생겼지. 그러니까 성형이나 시술 받지 마, 응?”
“알겠어……. 네 눈에만 예뻐 보이면 되지.”
이은섭의 매니저가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꼴값들을 떠네요.’ 할 만큼 유난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잘났다, 예쁘다, 칭찬을 해대던 우리 대화의 마지막은 역시 키스였다.
촬영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손도 제대로 잡지 못하니 밴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스킨십을 해야 했다. 물론 촬영이 끝나면 끝나는 대로 또 붙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당장 키스를 안 하면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키스할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닌지 입술에서 아무 맛도 안 나는 이은섭을 아주 양껏 끌어안고서 쪽쪽 입술을 빨다가 숨이 차서 떨어졌다. 스킨십에 거침이 없는 이은섭은 내 엉덩이를 주물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스킨십 진도 나갈 시간도 없는데 나 그냥 작품 들어가지 말까?”
“은섭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하아―. 키스 여섯 시간에 섹스 열두 시간 하려면 잠도 잘 수가 없는데 대체 일이 뭐라고!”
“섹스…… 열두 시간……?”
“그럼 10년 만에 너랑 사귀게 됐는데 한 번 하고 끝내? 나 고자 아닌데.”
“……섹스 열두 시간 하고 나면 너 고자 되는 거 아냐?”
“성불을 하더라도 너랑 섹스한 다음에 할 거야.”
좋게 말해 이채, 솔직하게 말해 눈에 광기가 도는 이은섭에게 약간 질려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이은섭은 스킨십을 정말정말, 환장하게 좋아했다. 10년 만에 첫사랑과 사귀게 되어 들뜨고 하루하루 얼치기처럼 실실 웃음만 나오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이은섭의 성욕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같이 있으면 목덜미는 예삿일이고 배, 허벅지, 심지어는 가슴팍에도 잇자국을 내놓는데 본격적으로 진짜 섹스를 하면 어떻게 할지…….
아직 섹스는커녕 제대로 된 애무도 해본 적 없으나 확신할 수 있었다.
“나 처음인 거 알지?”
“와, 나도 처음이야. 내 아다를 떼줄 건 태영도다, 하고 10년간 아껴왔다고!”
너처럼 열정 가득한 아다를 나 같은 아다가 감당하긴 힘들 거 같은 게 문제라고…….
반쯤 무시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열두 시간 동안 섹스를 해야 한다고 귓가에 중얼중얼 미친놈처럼 말하는 이은섭을 데리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은섭의 매니저는 이미 와서 제작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촬영을 잘 부탁한다는 게 인사의 요지였다.
그러고 보니 촬영 때문에 만나는 건 정말 마지막이네. 이런 프로그램은 너에게 도움이 안 되니 하루빨리 그만두라고 성화를 부리긴 했다. 그러나 마냥 시원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일주일에 한 번 너를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는 거니까 서운한 마음 역시 있었다. 그리고 이은섭은 그만두더라도 나는 이 프로그램에 사실상 반고정이 된 상태여서 더더욱 아쉬웠다.
제작진들의 노력으로 파일럿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이 되긴 했으나 배우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되는 프로그램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작진도 이은섭을 잡지 않고 아주아주 쿨하게 놔줬다. 마치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애초에 왜 수락했는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오늘은 제 파트너인 은섭 씨의 마지막 촬영 날이네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촬영은 마지막이지만 영도 씨와 저의 사랑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입니다.”
“예……? 그러시군요. 별 이상한 말을 다 하시네요.”
프로그램에 나오기로 한 거, 다 나 때문인데.
오늘도 역시 큐카드에 적힌 대로 하지 않고 제멋대로 튀는 발언을 하는 이은섭을 올려다보며 웃음을 꾹 참았다. 예전 같았으면 ‘얘 진짜 왜 이래, 이러니 예능에 안 나왔던 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 이제는 애인 사이가 아닌가. 귓가가 발간 걸 보니 아주 100퍼센트 진심을 말한 게 분명했다.
“저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오늘은 은섭 씨의 일일 사수인 만큼 열심히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촬영 끝나면 선배로서 맛있는 거 사줄게요.”
“넵, 선배님!”
에구 귀여워, 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서 이은섭의 소매를 잡고 내 자리로 끌고 갔다. 가자마자 옆자리에 앉은 아나운서 동기가 이은섭을 보고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오늘 아나운서실에서 촬영분이 있어 왔습니다. 조용히 촬영 마치고 얼른 나갈게요.”
“아뇨, 오래 있다가 가셔도 돼요.”
“그럴까요? 그래도 돼요, 선배님?”
“안 됩니다. 대본대로 하셔야죠.”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