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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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싹하게 통화를 마친 이은섭은 핸드폰을 침대맡 작은 협탁에 올려놓고는 내 배를 토닥였다.
“대표님한테 존나게 닦달해서 그 식장으로 예약했어.”
“내년까지 다 예약 찼다고 했던 거기?”
“응. 그 식장 못 잡으면 태영도 볼 낯이 없다고, 진짜 못 잡으실 것 같으면 그 식장 잡아주겠다는 곳으로 이적한다니까 바로 잡아주던데. 다― 할 수 있으면서 하여간 엄살 부리는 거 대박이라니까.”
“……네가 생떼를 쓴 건 아니고?”
“네가 10년 전에 날 차서 떼쟁이가 된 거야. 우리 짝꿍 된 날에 결혼하려면 서둘러야지.”
양 볼을 한 손으로 쥐고서 입술을 금붕어처럼 만들며 노는 이은섭의 볼을 나도 괜히 한 번 찔러보았다.
조부모께 말하지 않았다 해서 우리가 결혼 준비를 전혀 안 하는 건 아니었다. 거창한 프러포즈 같은 건 없었지만, 이은섭과 나는 이 연애의 다음 단계는 무조건 결혼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이은섭은 내가 그 생각을 철회하지 않으리라고 몇 번이나 주지시켜주었음에도 아주 다급하게 결혼 준비에 착수했다.
웨딩 사진을 촬영할 곳부터 식장, 하다못해 청첩장 업체까지 다 서치해온 이은섭 덕분에 내가 할 일은 정말 별게 없었다. 그냥 선택지 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바쁜 와중에 뭐 이런 걸 벌써부터 준비하느냐고 했으나 이은섭은 고개를 세차게 저을 뿐이었다. 원래 미인을 얻으려면 이 정도 고생은 해야 한다는 낯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우리 신혼집은…….”
“알아보는 중이야. 너 출퇴근하기 편한 곳으로 보는 중인데…… 이 아파트가 몇 동 없고 프라이빗한 느낌이라 좋은 것 같아. 어때?”
“나는 안 옮겨도 괜찮아. 지금 집도 충분히 좋은데 너는 싫어?”
아무리 이은섭이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한다지만 일방적으로 돈을 너무 많이 쓰는 느낌이 없잖아 미안했다. 내가 모아놓은 돈을 다 털어도 100분의 1만큼이나 도움이 되려나, 나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태도로 묻자 이은섭은 단숨에 나를 눕히고서 그 위에 올라탔다.
“이 집은 회사에서 구해준 거라 내 집 같지 않아. 그리고 신혼부부 느낌 내려면 집을 옮겨야죠, 서방님.”
“으음, 그래도…….”
“미안해하는 거 아는데, 그럴 필요 없어.”
원래 좋아서 환장하는 새끼가 이런 건 다 알아서 하는 거야.
답할 틈도 주지 않고서 옷을 전부 벗긴 이은섭에게 안겨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너 못지않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그날 밤은 좀 괴로웠다.
* * *
“영도 씨, 오늘이 라디오 대타 첫방이죠?”
“네. 실수 안 해야 할 텐데 벌써 긴장되네요.”
“자기 실수 없으면서 괜히 그런다. 저번 주부터는 하루 종일 라디오만 들었던 것도 다 아는데 엄살은.”
라디오 디제이가 꿈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렇다고 디제이가 부담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실 최근에 생긴 부끄러운 취미 탓이 컸다.
To. 태영도 아나운서
엄살 부리지 말라며 타박하는 선배에게 어색하게 눈웃음 짓고서 나는 곧장 한 포털 사이트의 카페 앱으로 들어갔다.
누가 보면 분명히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 게 분명하지만, 나는 요즘 내 팬카페에 들락날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 회사 계정으로 〈태영도 아나운서님께 드리는 초대장〉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을 때는 스팸인 줄로만 알았다. 초등학생 때 유행했던 ‘이 편지는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행운의 편지 같은 건가, 싶었다.
그런 제목의 편지를 족히 열 통은 삭제하고 난 후에도 계속 메일이 오니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해도 무작정 모른 척으로 일관할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메일 내의 링크로 접속하자 보인 것은 회원 수 1,000명이 훌쩍 넘는 규모의 내 팬카페였다.
너무 나대는 건가 싶은 마음에 눈팅만 해가며 몰래 들락거리던 나는 내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싶어 가입 인증을 하게 되었다. 운영자는 사원증을 찍어 보내자 군소리 없이 나를 특별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었고, 그 후로 난 카페 붙박이가 되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영도 오빠! 초등학교 3학년 민지예요. [15:30]
영도 오빠가 이번 주부터 라디오 디제이가 되신다는 소식을 엄마가 알려줬어요!
10년 살면서 처음으로 라디오를 듣게 될 것 같아요. 영도 오빠처럼 멋진 아나운서가 돼서 오빠랑 꼭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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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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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사랑:귀여운 팬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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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_태:10년 살면서 처음 듣는다는 말이 넘 깜찍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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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제가오타쿠같으신가요:10시 라디오였던가여?? 주파수는 어케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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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_태:10시 시작 맞고, 주파수는 40.8FM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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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제가오타쿠같으신가요: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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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뭇한 마음으로 초등생 팬이 내게 쓴 편지와 거기에 달린 댓글들을 훑어봤다. 팬카페에서 활동하는 팬들은 전부 다 무해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침을 열며 보기에도 괜찮고 저녁에 자기 전 보기에도 좋았다.
어떤 팬 한 사람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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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내꼬:아나운서 돼도 태영도 아나운서 못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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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