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아크롱해 | 팬미팅 티켓 정가 양도만 되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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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아사랑해 | 그런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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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아크롱해 | 네네 혹시나 해서 댓글 달아요 티켓 정가 양도만 되고 이번에 보안 빡세서 민증 확인도 한다던데 양도받아도 입뺀 당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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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아사랑해 | ㅠ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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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박사가뭐가어때서요; | 이마와 구하기 무즈까시이데스케도,,, ㅠㅠㅠㅠㅠ힘내세요! 그리고 크롬님이 다신 윗댓은 거짓 정보wwwwww 은섭이 소속사에 물어봤는데 민증 확인쟈 다.메! 이마와 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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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아사랑해 | 감사합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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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박사가뭐가어때서요; | 아니에요~ 섭섭아사랑해쨩 간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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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하게 쓴 글은 아니었지만 댓글 단 것을 쭉 훑어보니 팬미팅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은섭은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아주 애를 쓰고 있는 영도를 보니 기분이 미묘했다.
늘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상대방을 더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라고 생각해 왔더랬다. 은섭은 어떤 관계에 있어서든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의 포지션을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도의 앞에서는 그런 사고가 전혀 되지 않았다. 사실 식장까지 다 잡아 놓은 지금도 영도가 자신의 반려가 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잠든 영도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벅차오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태영도도 나를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 매일같이 붙어 있고 질리도록 보면서도 팬미팅에 오고 싶어서 저답지 않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티켓을 찾아 헤매는 뱁새를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새로 변한 그를 입 안에 넣고만 싶었다.
영도의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볼수록 그가 제 팬미팅에 꼭 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러다가 발견한 게 바로 중고거래 어플, 상추 마켓의 먹보고슴도치였다. 은섭은 고슴도치가 태영도이리라고 100퍼센트 확신했다.
“거래하겠다고 해. 그리고 네가 나가.”
“아, 제가 왜요!”
“야근 수당 내가 쳐서 줄게. 10만 원이면 돼?”
“지금 바로 채팅 걸겠습니다, 이은섭 배우님!”
언제는 안 가도 괜찮다더니. 귀여운 새끼.
은섭은 10만 원을 벌 생각에 신나서 채팅창을 켠 매니저의 뒤에서 몰래 웃음을 삼켰다. 이 깜찍한 뱁새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역시 오늘 밤도 스트립쇼를 보여 주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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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연락이! 여느 때와 같이 아무 알림도 오지 않은 핸드폰을 빤히 들여다보던 영도는 상추 마켓 어플 위에 뜬 숫자 ‘1’을 보고 서둘러 어플로 들어갔다.
“드디어!”
역시 간절히 바라면 안 되는 일이 없구나. R=VD는 과학이다! 너무 벅차서 머리가 다 띵할 지경이었다. 답을 늦게 하면 팬미팅 티켓 거래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다른 이에게 갈까 봐 영도는 후다닥 채팅창에 접속했다.
최고미남은섭:
이은섭팬미팅티켓양도하고싶은데요^^
넵! 감사합니다!
어디에서 뵐 수 있을까요?
최고미남은섭:
고슴도치님 사시는 동네로 제가 가겠습니다.
현금 거래로 부탁드리며, 13만원 정가 거래이니 걱정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내일모레 직거래 가능하실까요?
은섭의 팬카페에서 티켓은 무조건 정가 양도를 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기에 혹시나 ‘플미충’이면 가슴 아파도 신고를 하려 했는데 별다른 말이 없었다. 정가 거래를 한다는 말에 영도는 한시름 놓고서 아주 가볍게 손가락을 놀렸다.
이렇게 젠틀한 유저가 자신을 선택한 데 기뻐하며 영도는 약속 장소를 정했다. 처음엔 자기 동네를 말하려다가 아무래도 위치가 특정될 수 있어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을 말했다. 닉네임부터 마음에 든 어플 유저는 선뜻 제시한 장소까지 오기로 했다. 그렇게 영도는 팬미팅 닷새 전, 쿨거래를 통해 티켓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거래하기로 한 날 영도는 주섬주섬 현금 챙기고, 목도리도 단단히 한 후 제법 비장한 표정으로 신발을 신었다. 회사로 저를 데리러 왔던 은섭은 집에 저를 내려 주자마자 다시 연습실행이었다.
「연습 끝나고 몇 시쯤 집에 와?]
「어어. 열 시 전에는 올게.]
「열 시…… 전?]
「왜?
「아니, 아무것도 아냐! 파이팅해, 은섭아―.]
어제는 자정쯤 오더니 왜 오늘은 열 시 전에 온다는 거야. 은섭이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늘수록 팬미팅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던지라 영도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은섭이 집에 오기 전에 얼른 거래를 마치고 먼저 귀가할 생각뿐이었다.
정말 미치게 가고 싶던 팬미팅, 그토록 갈망하던 티켓을 드디어 오늘 구하는구나. 신나서 약속 장소로 향한 영도는 역 근처를 서성거리며 상추 마켓을 할 만한 사람을 살폈다. 딱 열 시 정각. 상당히 수상한 차림새로 사람들을 살피던 영도는 깜빡이는 핸드폰을 부리나케 확인했다.
섭♥
나 곧 가~ 22:09
벌써?? 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