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다고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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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춤을』 외전 <끝>
IF: 부자 영도와 거지 은섭
영도는 새로운 짝이 불편했다.
자신이 원해서 짝이 된 거긴 하지만, 영도는 제 짝이 이렇게까지 말이 없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신 언제나 소문만은 무성했다. 이은섭 아빠가 조폭이래, 어렸을 때부터 투견장에서 자랐대, 쟤가 중학생 때 소년원에 다녀왔대……. 흉흉한 소문의 근원지인 은섭은 정작 짝이 되고 보니 예상과는 달랐다. 영도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욕을 퍼붓는 등 특별한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다. 조금 과묵한 양아치, 그게 영도의 짝 이은섭이었다.
늘 맨 뒤에 혼자서 앉는 늑대 수인. 영도는 홀로 짝꿍 없이 앉아 있는-사실 앉는다기보다는 매번 엎드려 있는- 이은섭에게 관심이 갔다. 담임은 반장으로서 은섭의 짝을 자처하는 영도에게 장하다고, 우리 영도 같은 반장이 또 없다며 한껏 추켜세워줬다.
정작 영도는 자신의 관심을 은섭이 달갑지 않아 할 것 같아, 막상 짝이 되고 난 후에는 하던 대로 얌전히, 공부만 했다. 영도가 관찰한 결과, 은섭은 말수가 적어도 너무 적어서 약간 무서울 지경인 애였다.
“저기.”
“왜.”
“아니야…….”
“어, 그래.”
호기롭게 전교에서 가장 무섭다는(?) 은섭의 짝을 자처한 영도는 최근 자신이 얼마나 쫄보인지만 깨달았다. 어제가 가장 쫄보일 줄 알았는데 아니고 오늘이 가장 쫄보답구나……. 같은 반 학우들이 모두 좋아하고 잘 따르는 영도는 짝인 은섭의 옆에서는 졸아붙어 기를 못 폈다.
필기해야 하는데……. 혹여나 은섭에게 들릴까 봐 아주 조그맣게 혼잣말한 영도는 제 책상까지 넘어온 은섭의 팔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1분이 다 되도록 쳐다봤으나 팔은 여전히 책상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영도는 상체를 구겨 가며 마저 필기를 했다.
* * *
한 달간 은섭을 관찰한 결과, 영도는 은섭이 양아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론을 도출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은섭은 학교에서 날라리로 소문난 놈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은섭, 오늘도 같이 안 갈래?”
“내일도 안 가니까 묻지 좀 마.”
“니랑 피시방 한 번 가기 드럽게 힘드네. 싸가지 좆된다, 좆돼.”
“어, 좆되는 싸가지한테 묻지 말고 가라.”
입은 좀 걸어도 은섭은 양아치들과 놀지 않았다.
다음으로 은섭은 교사들에게 덤비지 않았다.
“이은섭이, 허리 세우고 똑바로 앉자.”
“네.”
“반장이랑 짝이 돼서 그런가, 말도 더 잘 듣는 것 같네.”
“아, 예.”
빈정거리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교사와 맞먹으려 드는 그런 질 나쁜 양아치는 아니었다. 만사 귀찮다는 듯한 태도긴 해도 교사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은섭은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제 곁에 오면 아주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도는 이런저런 은섭의 모습을 취합하여 결론을 내렸다. 이은섭은…… 그냥 잠이 지나치게 많은 애다.
그도 그럴 것이 은섭은 등교하고 하교할 때까지 잠귀신이 들린 사람처럼 어디에서든 머리를 대고 잤다. 책상에 엎어져 자는 것은 예삿일이고, 가끔 보면 복도를 지나다닐 때도 눈을 반쯤 감은 듯한 얼굴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제 책상까지 팔을 뻗고서 잠을 자는 은섭을 골똘히 바라보던 영도는 잠든 은섭의 팔에 쪽지 한 장을 끼워 놨다. 잠에서 깬 은섭은 그걸 보고 눈썹을 한 번 샐쭉거릴 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너는 왜 맨날 잠만 자?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놀린다고 생각한 걸까. 영도는 쪽지에 ‘진짜 궁금해서’라고 덧붙였다. 돌아온 것은 싸가지 없는 은섭의 단답이었다.
“알 바 아니잖아.”
“……그래. 마저 자.”
“어.”
두 번 말 걸면 한 대 때릴 기세였어. 영도는 싸가지 없이 대답하고도 제 책상에서 팔을 비켜 주지는 않는 무심한 은섭을 노려보다가 언제나와 같이 웅크려 공부했다. 짝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전교권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 * *
잘사는 집 아이들은 과외도 유별나게 받았다. 집에 혼자서 과외를 받으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호승심도 잘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도는 조부모 친구들의 손자, 손녀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오피스텔을 한 칸 빌려 그룹 과외를 받았다. 꼬박 네 시간 동안 수업을 듣고 나온 영도는 아주 오랜만에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우리 먼저 갈게.”
“너네 할머님께는 말한 거지?”
“응, 다 말했어. 다음 주에 봐.”
“조심히 가―.”
함께 과외를 받는 친구들은 과외가 끝난 후에 곧장 집에 가야 했다. 먹는 시간, 자는 시간까지 감시받는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영도는 상황이 조금 괜찮기는 했다. 적어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가끔 조정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건 영도가 워낙 착실한 걸 조부모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아―.”
한국대 경영학과에 입학만 하면 이 생활도 끝나겠지. 영도는 그렇게 믿으며 정처 없이 밤거리를 헤맸다. 원하는 학교, 원하는 학과 안정권이라는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들어 왔으나 3학년이 되자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이 생기면서 마음이 수런거렸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자란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누군가 안다면 나약하기 짝이 없다고 할까 봐 입 밖에 이런 고민을 뱉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열한 시가 되기 전에는 집에 가야지. 택시 정거장으로 향하던 영도는 익숙한 덩치가 쓰러져 있지만 않았다면 바로 집에 갔을 터였다.
“……이은섭?”
“누구…… 반장?”
“너 어쩌다가…….”
“별일 아니니까 갈 길 가라.”
“별일 아니긴 뭐가 아닌데? 다쳤잖아! 좀 봐 봐.”
절뚝거리며 쓰러진 자전거를 세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은섭이었다. 영도는 은섭을 일으켜 주고서 바지를 걷어 다 깨진 무릎을 확인했다. 안 다쳤다더니만 피가 철철 났다. 왜 이렇게 미련하게 구나, 싶어 눈을 흘기자 은섭은 가타부타 말없이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