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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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다들 밤길 조심히 들어가세요.”
“영도 씨는 어디 사세요? 제가 데려다드릴게요.”
“아, 오늘 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하, 친구분이 오시는구나. 그럼 주차장까지는 같이 가죠.”
“……네, 그러세요.”
영 찝찝하게 사람을 위아래로 훑는 시선을 한시라도 빨리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박재현은 내가 불편해하든 말든 기어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다.
섭♥ 〈나 다 왔어 지하 3층 A구역!〉 21:30
섭♥ 〈빨리 와 보고 시푸니까-3-〉 21:30
불편한 건 불편한 거고, 이은섭이 보낸 메시지가 좋은 건 좋은 거였다. 나는 이은섭에게 나도 보고 싶다고, 마침 끝났으니 5분 안에 갈 거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누구한테 온 메시지이길래 그렇게 웃어요?”
“친구가 왔다고 해서요. 집 갈 생각에 신나서 웃음이 나왔나 보네요.”
“아아.”
뭔데 짜증 나게 말을 걸지.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혼자 하는 생각이 이은섭의 불퉁한 말투를 닮아 있어서 또 웃고 말았다.
웃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주먹으로 입을 막고서 큼큼 헛기침을 한 나는 목 뒤를 손가락으로 쓰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남자의 손을 쳐냈다.
“뭐 하시는 겁니까?”
“혹시 왔다는 친구가 이은섭?”
“뭐라고요?”
뺨에 솜털이 바짝 서는 게 느껴졌다.
“어쩌다 보니 아까 영도 씨 통화 내용 들어서. 맞나 보네요? 저기 이은섭 차 있는데.”
“지금 무슨…….”
잠시 사고 회로가 멈추었다. 아까 실컷 청취자에게 말한 걸 속으로 되뇌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다, 내게는 기댈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다 괜찮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영도야―, 가자.”
“연락드릴게요, 태 아나운서님.”
아니, 별로 안 괜찮은데.
이은섭 덕분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려고 하기도 했고. 그러나 느물거리며 연락 주겠다는 말에 결국 뒤를 돌아봤다.
“제 번호도 모르실 텐데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락?”
“아냐, 가자.”
미끈하게 웃는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이은섭은 나와 남자의 대화를 듣더니 왼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고는 내 정수리를 검지로 콕 찍었다.
“재현아, 나 얘랑 결혼하는데 청첩장 나오면 너한테도 줄게. 조심히 들어가라.”
“……네,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어엉―, 아무 데나 껄떡대지 말고. 결혼식장에서 보자.”
저 씨발 새끼,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영 불퉁했다. 얼굴 위에 올라왔던 솜털은 그 짤막한 욕설에 모두 가라앉았고, 이은섭이 박재현에게 한 말도 아주 속 시원했으나 나는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오! 저 씨발 새끼. 나랑 엮이면 어떻게든 껄떡대네, 진짜.”
“……너랑 엮이면? 나 말고 누가 또 있었어?”
“아니?”
“그럼 방금 그건 무슨 소린데?”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이은섭의 손등을 살살 문지르던 나는 이내 도끼눈을 뜨고 너를 쳐다봤다. 나 말고 누가 또 있었다고?
갑자기 이야기가 예전 연인 관계로 튀니 어이가 없었는지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이은섭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고 따졌다.
“너랑 엮이면 어떻게든 껄떡댄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박재현이 나한테 자격지심이 좀 있어서.”
“그러니까 나 말고도 너한테 보여주려고 껄떡댄 사람이 있었다는 거 아냐?”
“이쪽에서 작품 한 번 하면 이상한 소문 정도 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 진짜 너밖에 없는 거 알면서 왜 그러냐. 서방님, 지금 질투하는 거야?”
“됐어, 빨리 집 가.”
“태영도가 질투를 다 하네. 내일 해 뜨자마자 복권부터 사야겠다.”
이 귀여운 새끼, 집에 가면 바지부터 벗길 거야. 그렇게 말하며 왼쪽 볼이 닳도록 쪽쪽 대는 이은섭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집에 가는 내내 차창 너머의 야경을 보려 했으나, 밤이 너무 캄캄해서 유리창에 비치는 이은섭의 옆모습만 내도록 훔쳐보는 꼴이 되었다.
이은섭의 말로는 10년 내내 나랑 언젠가 다시 만나기만을 고대했다고 했지만, 주위에서 이은섭을 가만히 놔뒀을 리 없다. 너 같은 애와 한 번이라도 좋으니 데이트하고 싶고, 자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아마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을 터였다. 나랑 사귀고 있는 지금도 이은섭을 원하는 불특정 다수가 얼마나 많을지.
첫사랑과의 드라마틱한 재회, 그리고 안정적인 연애로 안온하게 지내던 내게 이건 처음 해보는 걱정이고 고민이었다. 이은섭의 과거사에 새삼스럽게 연연하게 되는 내가 나로서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두말할 나위 없는 질투였다.
“씻고 잘래…….”
“아오, 입술 튀어나온 거 한 접시 썰어서 갖고 다니고 싶네.”
“잘 거라니까…….”
“내가 누구 만났던 거 생각만 해도 그렇게 싫고 짜증 나?”
“…….”
“진짜 누구 안 만나긴 했는데…… 네 반응 보니까 기분은 좋네.”
고개를 푹 숙이고서 눈도 안 마주치는 나를 가볍게 들어 자기 무릎에 앉힌 이은섭은 내 구레나룻을 살살 매만지며 얼굴을 살폈다. 그러더니 입술을 꼬집으며 한다는 말이 이따위 주접이었다. 입술을 갖고 다니는 게 뭐가 좋다고.
하지만, 실은 나도 갈수록 애정 표현이 독특해지는 이은섭이 좋았다. 밤이면 더 반짝이는 금안도 좋고, 여전히 웃을 때 개구쟁이 같은 것도 좋았다. 이렇게 잘난 네가 평생 나 하나만 바라보는 게 더 이상한 일인 줄 머리로는 아는데 왜 마음이 이렇게 안 좋은지.
등허리께를 토닥이면서 둥가둥가 나를 얼러주는 네 품에 몸을 기대었다.

পহুৰ লগত নাচি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