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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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은섭 배우 팬미팅에 가고 싶은데 표를 못 구해서요. 그래서 여러 사이트 두루두루 보고 있는데 티켓 구하기가 힘드네요.”
“남자친구가 티켓 안 줬어요?”
“준다고 하기는 했는데…… 몰래 가서 놀래키고 싶어서 됐다고 했어요.”
“어우, 영도 씨 그렇게 안 봤는데 팔불출이다, 팔불출.”
야유하는 소리에 영도의 볼이 붉어졌다. 지현은 영도가 멋쩍어하거나 말거나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냈다.
“기사에서는 이은섭 배우가 완전히 팔불출이라던데. 거의 매일 영도 씨 데리러 오는 거 보고 나도 그런 줄 알았더니만 영도 씨도 만만치 않네요.”
“그, 그쵸……. 민망하지만 그렇죠…….”
“보기 나쁘다는 건 아니고, 영도 씨가 워낙 연애 전에는 시니컬했잖아요. 나이에 비해 가벼운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좀 나랑 동갑 같아요. 그리고 티켓은…… 슬프지만 아마 구하기 힘들 거예요. 나도 예전에 아이돌 덕질해 봤는데 2주 앞두고 티켓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이니까 그냥 이은섭 배우한테 티켓 한 장 달라고 해요.”
“네…….”
“기분 풀어요, 제가 커피 사 줄게요!”
자신이 어떤 덕질을 했는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동기에게 호응해주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였다.
넉살도 좋은 동기는 우울해하는 영도에게 따뜻한 라테 한잔을 쥐여 줬다. 할 말은 다 끝났으나 두 사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대화를 이어 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번에도 지현이었다.
“커피도 사 줬으니까. 기사 내용 물어봐도 돼요?”
“무슨 기사요?”
“영도 씨랑 영도 씨 남자친구 열애설!”
“아아, 딱히 비밀스러운 것도 없는데…….”
“둘이 진짜 서로 첫사랑 맞아요? 그건 기자들이 양념 친 거죠?”
영도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보는 동료의 앞에서 윗입술에 우유 거품을 묻힌 채 얼굴을 붉혔다.
사실 기사가 나갈 때부터 영도는 조금 불안했다. 서른이 다 되어 가도록 연애 한 번 안 해 본 남자 둘의 결혼 기사. 다른 사람들이 저와 이은섭을 이상하게 보리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아무래도 이은섭이나 저나 나이도 꽤 있는 편이고, 이 나이에 사람 한번 제대로 안 만나 봤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하자 있는 인간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저야 그렇다 치지만 이은섭에 대해 소문이 이상하게 날까 봐 걱정된 영도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영도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을 못 하자 앞에 있던 동기의 표정이 활기 띤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짜 서로 첫사랑이에요……? 10년간 아무도 안 만난 것도 진짜?”
“그…… 비밀로 해 주세요. 자랑도 아니고.”
“웬일이야, 그 기사 내용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사실이었다니.”
꺄꺄거리며 너무 낭만적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지현의 반응을 보자 약간 안심이 되었다. 은섭의 이미지가 나빠질 일은 없을 듯했다.
영도는 과거 아이돌 덕질을 해 봤다는 동기에게 비밀을 알려 줬으니까 같이 팬미팅 티켓을 구해 달라고 넌지시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눈꼴시어서 더 들을 수가 없다는 면박뿐이어서 바로 자리를 뜨긴 했지만.
“핸드폰이 고장 난 건가?”
팬미팅은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영도가 깔아 놓은 무수한 어플에서 따로 오는 알림은 전무했다. 내 신선도가 너무 낮아서 그런가? 새싹 회원은 믿지 않는 세상이 밉다…….
그보다도 이은섭은 왜 이리 인기가 많은 건가. 본질적인 문제에 한숨을 푹 내쉰 영도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무조건 구해야지.”
은섭과 결혼까지 앞둘 정도로 관계가 발전한 데는 은섭의 노력이 8할 이상 있었다.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영도는 <체험, 삶의 가치!> 프로그램에서 은섭과 만났던 당시 연애를 피했던 게 여전히 마음에 짐처럼 남아 있었다. 지금이야 둘 다 무탈하고 깜찍한 연애를 하는 중이지만, 그때 내색은 안 했어도 은섭이 마음고생깨나 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그 애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지내지 못했을 거야. 영도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 관계는 저를 향한 은섭의 순수한 사랑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으리라고. 은섭과 깊은 관계로 나아가며 자존감도 높아지고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된 영도는 이제 은섭에게 자기 마음을 보여 주고만 싶었다.
섭♥
자갸자갸! 오빠오빠! 오늘 저녁으로 맛난 거 먹자. 엉아가 사 줄게-3- 13:30
좋아! -3- 13:30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반드시 구하고 말 거야. 애교가 덕지덕지 묻은 메시지를 확인한 영도는 주먹을 꼭 쥐었다. 은섭에게 서프라이즈가 뭔지 보여 주고 싶었다.
* * *
“이거 아무리 봐도 태영도 아니냐?”
“닉네임이 ‘먹보고슴도치’인데 이게 영도 오빠 같다고요?”
“걔가 은근히 이런 이름 짓는 재주도 없고 귀찮아하고 그래서 사이트에서 초반에 랜덤으로 지어주는 닉 그대로 써. 그리고 영도 오빠라고 하지 말고 태영도 아나운서님이라고 하랬지.”
“영도 오빠는 오빠라고 불러도 된다던데요?”
“일현아. 제발 사람 속 좀 긁지 마. 난 우리 영도가 너한테 오빠라고 불리는 게 싫거든? 영도를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와, 진짜 토 나와.”
한편 영도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은섭은 영도가 자기 팬미팅 티켓을 구하고 다니는 걸 이미 애저녁에 눈치챘다. 눈치라고는 닥닥 긁어 약에 쓰려야 쓸 수 없을 정도인 영도만 그걸 모르는 듯했다. 하기야, 그런 눈치가 있었다면 제가 대학 시절 스토킹에 가깝게 따라다닌 걸 모를 수가 없었겠지.
사실 영도가 팬카페에 가입한 시기가 작년이라는 걸 은섭은 알고 있었다. 닉네임을 바꿀 성의도 보이지 않고 포털 사이트에 이름으로 가입된 그대로여서 닉이 ‘태영도’였던 것이다. 그걸 보고 영도가 꽤 제게 관심이 많다는 걸 확인한 은섭은 한동안 뻐기고 다니느라 표정이 항상 거만했다.
팬카페 활동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가입 인사 게시판에 태영도라는 닉네임 그대로 ‘가입 인사드립니다’라고 글을 쓴 것마저 그다웠다.
팬미팅 티켓 양도 구합니다
작성자: 섭섭아사랑해
안녕하세요, 이은섭 배우 팬미팅 티켓 구합니다. 취소표 티켓팅도 참전했으나 좋은 결과 얻지 못해 불가피하게 팬카페에서 양도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새싹 회원이지만 이은섭 배우를 정말 사랑합니다! 편히 댓글 달아 주세요! 가격 선제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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