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의외라는 듯이 표정을 수습했다.
“피지컬이 워낙 좋으셔서 신체 강화 쪽 에스퍼이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력이 정말 엄청나셨을 것 같아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심태성이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부끄러운 걸까. 부끄러운 척하는 걸까.
“저는 의지박약이라 그렇게 못할 거 같은데.”
“도련님도 충분히 하실 수…….”
왜 말을 하다 말아.
나를 천천히 훑어보더니 작게 헛기침을 한다.
에스퍼들 눈에는 벌크업 가능한 몸이랑 불가능한 몸이 구분돼 보이기라도 하는 거야, 뭐야. 딱히 근육을 키울 생각은 없고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괜스레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었다.
“저도 기대는 안 해요. 그래도 나중에 운동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건강을 위해서 하긴 해야지 하고 있었거든요.”
“운동 말입니까.”
“네. 크게 아픈 데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자주 여기저기 불편해서.”
팔뚝을 주무르며 말했다. 열 오른 내 상태를 파악한 지 오래인 심태성의 눈에 동정심이 서렸다.
“당연히 비용은 따로 지불할게요.”
“괜찮습니다. 그냥 봐 드리겠습니다.”
“그럼 제가 죄송한걸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음……. 감사해요.”
생긋 웃으며 내 몫의 차를 비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잠시 다른 음료 좀,”
안 그래도 저질스러운 몸은 형을 가이딩하고 나니 확실히 더 쓰레기가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현기증으로 인해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반사적으로 소파를 붙잡으려던 순간,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지탱했다.
“괜찮으십니까?”
맞은편에 있었던 심태성이 눈 깜짝할 사이 곁에 와 있었다. 나는 용케 어떤 피부도 접촉하지 않은 자세를 빠르게 체크하고,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바로 경력직 경호원인가.
“네……. 살짝 어지러웠을 뿐이라.”
“그래도 이만 올라가시죠.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나를 단숨에 안아 올린다. 반사적으로 팔을 두르면서, 상대의 드러나 있는 목덜미에 손을 얹어 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주머니가 돌아다니는 곳에서 일을 치를 수야 없지.
계단을 올라 내 침실 앞에 도착했다. 심태성은 무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나를 침대에 내려놓으려는 찰나.
“……!”
자연스럽게 심태성의 손을 붙들면서 시트에 안착했다.
“옮겨 주셔서 감사해요.”
“…….”
“경호원님?”
뭔데.
왜 이렇게 잠잠해.
기대한 바가 있던 터라 다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릅떠진 두 눈과 굳어 버린 거구는, 그가 분명 가이딩 효과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언제까지 동상처럼 멈춰 있을 셈이지.
“경호원님.”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그제야 심태성이 막힌 숨을 토해 내듯 거칠게 호흡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신 거예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충혈된 눈이 한 번을 깜빡이지 않고 마주 봐 왔다. 제대로 홀린 듯하면서도 한 올의 이성이나마 남았는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시한폭탄 같은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팔뚝에 핏대까지 선 본인의 상태를 과연 알기나 할까.
“…….”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한 심태성이 심호흡을 한다.
“아닙……니다.”
진짜?
이걸 참는다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악문 잇새로 힘겹게 말하기는 하지만, 우리 형의 격렬했던 반응을 떠올려 보면……. 이 에스퍼는 실로 가공할 만한 참을성을 지닌 듯했다.
폭주 예정인 에스퍼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명단을 재확인하는 대신 몸을 움직였다.
“실례할게요.”
형을 떠보았던 것처럼 살포시 심태성의 이마에 손등을 대었다. 그로서는 피하고도 남을 속도일 텐데, 꼭 박제되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인다.
“이런. 열이 저보다 훨씬 더 심하신 것 같은데요? 대체 언제부터…….”
뜨겁다.
미친 듯이 솟구치는 욕구를 억누르고 있겠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까 봐. 처음으로 만난 경호 대상을 강간이라도 하게 될까 봐 말이다.
스스로가 왜 이러는지 의아한 감이 없는 모습을 봐서는, 역시 에스퍼임을 감추고 살아온 게 맞는 거고.
……아.
나 좀 꼴리는데.
환생한 지 어언 이십 년째다. 금욕 기간이 너무 길었다. 컨디션이 별로인데도 열감 때문인지 야한 생각은 날뛰고.
나를 기만하고 있다고 여기는 상대를 기만하면서 하는 플레이는…….
시발, 얼마나 짜릿할까.
***
심태성의 삶은 인내였다.
테러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여의고 맡겨진 친척 집. 일상처럼 쏟아지는 폭력과 모욕을 버텼다. 오로지 동생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서.
하지만 어느 날 가이드로 발현한 동생마저 빼앗겼다. 미성년자 가이드의 신변은 보호자 동의하에 협회로 이관될 수 있던 것이다.
무력감과 슬픔에 점철된 시기에 심태성 역시 각성했다. 에스퍼였다. 연락 없는 동생을 만나고 싶어 가이드 협회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시야가 어그러지더니, 그는 협회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기적적이게도 목격자는 없었다. 그 점까지 깨달은 심태성은 안심했다. 다행이다. 자신은 어렸고, 이 힘은 타인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숨기자. 못된 어른들에게 휘둘려 온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다짐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우선순위는 동생이었으니까. 가이드를 노리는 음지의 조직들로부터 동생은 언제나 납치당할 위험이 존재했다.
만일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어떤 제약도 없이 능력을 써서 동생을 구출해야 한다. 그러니 능력이 알려지고 통제되는 길은 피한다.
다만 동생이 무사히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는 아무도 모르게 능력을 이용해 동생과 간간이 만났다.
부모의 죽음에 영향을 받아 입사한 에스퍼 테러리스트 전담팀에서, 심태성은 그 계획대로 지냈다. 능력을 감추고 에스퍼가 아닌 척. 그래서 가이딩이 필요하지 않은 척. 극도로 발달한 신체야 지독하게 단련하는 면모를 보여 주고 다니면 끝이었다.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그는 선임 중 차은혁과 가장 많은 유대감을 쌓았다. 비슷한 과거를 지닌 데다가 아끼는 동생이 있다는 부분에서 서로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기실 그 점이 아니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 무엇보다 강한 힘을 지녔다. 리더의 재목이란 그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차은혁은 팀장이 되었다.
심태성의 또 다른 비극은 이후 찾아왔다.
동생의 부고.
사인은 자신이 염려하던 납치도, 테러도 아니었다.
바로 교통사고였다.
사람은 이토록 연약하여 죽기 쉽다. 에스퍼가 아니라면 그랬다. 어리석게도 그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한참 과거에 죽은 부모의 그림자에 얽매여 직장을 고르지 않고, 동생을 마음으로만 걱정하지 말고……. 그 곁을 항상 지켜 줬더라면 달랐을까?
한참을 후회와 허무감에 짓눌려 생활하던 그는 결국 팀을 나왔다. 그리고 사람을 지키는 일로 자신의 상실에게 속죄하기로 했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을 모두 잃은 후유증은 무시할 게 못 됐다. 누군가와 정이 드는 게 꺼려졌다. 그래서 장기 의뢰는 받지 않았다.
차은혁이 연락해 오기 전까지는.
그는 의뢰 기한을 통상의 계약 기간보다 길게 부르며, 바로 다음 날부터 막냇동생인 차은수의 경호 임무를 수행해 주기를 부탁해 왔다. 동생이라니. 지키지 못한 자신의 동생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거절할 수 없었다.
승낙이 이끈 곳에서 만날 존재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고.
‘안녕하세요.’
살아오면서 아름답다는 표현은 거의 써 본 적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찬사를 기꺼이 던질 만큼 차은수는 수려했다. 심지어 처음 보는 이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청년이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잠깐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하실래요?’
겨울 속에서 봄을 느끼게 하는 따뜻함마저 흘렀다.
그러나 미풍 수준이었던 기운이,
‘옮겨 주셔서 감사해요.’
겨우 피부에 가볍게 닿았다는 이유로 심태성의 세상을 뒤집었다.
무겁게 짊어져 온 고통의 현저한 감소.
참을 만하다고 스스로를 세뇌해 왔던 고통이, 자신을 날카롭게 비웃으며 스러져 갔다.
그 충격적이리만치 생소한 체감의 원인을 태워 버릴 기세로 내려다보았다.
차은수.
새로운 경호 대상에 지나지 않던 이름이, 죽는 날까지 기억할 활자가 되어 영혼에 아로새겨진다.
가이드였나.
에스퍼가 아니라는 내 거짓을 믿고 이토록 무방비한 것인가.
이내 그는 온갖 격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소중히 대해 주고 싶으면서도 폭력적으로 굴고 싶다. 당황스러운 듯 올려다보는 얼굴을 틀어쥔 채 입을 맞추고, 그가 내쉬는 숨을 전부 앗아 오고 싶었다. 부드러운 살결을 엉망으로 만들어 울부짖게 만들며 그 목소리마저 독식하길 원했다.
파괴욕에 가까운 열망이 이성을 파먹는다.
“경호원님?”
쿵. 쿵. 스스로의 심장 박동에 고막이 진동했다. 무슨 정신으로 아무 문제 없노라 답했는지 모르겠다. 포식자를 걱정하는 사냥감의 모습이란, 비소가 나오기는커녕 흥분이 더욱 들끓는 것이었다.
결국 볼품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경고할 수밖에 없었다.
“손, 치워 주십시오.”
“하지만…….”
마냥 괜찮다는 뜻인 줄 알았는지 차은수는 곧바로 손을 내리지 않았다. 높은 체온이 우려되는 눈치였다.
그에 뜨겁게 익은 머릿속에서 생각이 토막 나기 시작한다.
……더 이상은.
더 이상은 안 된다.
심태성은 상대의 손을 붙잡았다. 이어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최대한 정중하게 치웠다. 부들거리며 경련하는 듯한 자신의 손길에 차은수가 근심스럽게 눈썹을 늘어뜨렸다.
“경호원님……. 병원에 다녀오시는 게,”
“나가 보겠습니다.”
무례하게도 말을 끊어 버리고 방을 나섰다.
여유가 없는 자에게 대화란 사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