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경의 영역은 그리 쉽게 발각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인식 교란 능력을 지닌 조직원에 의해, 거대하고 황량한 공터는 간혹 생기는 목격자들로부터 보호되었다.
물론 정신 계열의 능력이 적용되는 것이니만큼, 정신력이 높은 이들이라면 교란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비슷한 능력을 지닌 에스퍼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주청경은 특히 장희강이나 차은혁의 세력에 속해 있을 그들을 유의하며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편이었다.
조직원들이 지키고 있는 건물을, 그로부터 아득한 거리의 수풀 사이에서 누군가가 지켜보았다. 한 가지 집념으로 물든 눈빛에는 신중함과 광기가 어려 있었다.
곧, 눈길이 사라졌다.
“…….”
쥐 죽은 듯 조용한 새벽이었다.
한 조직원이 음식과 옷 따위가 담긴 카트를 끌고 복도를 걸었다. 이내 그는 다른 곳들과 확연히 다르게 생긴 철옹성 같은 문 앞에 섰다. 원래 주인은 주청경이지만, 이제는 가이드 한 명이 감금되어 생활 중인 방이었다.
조직원은 가이드가 잠들었을 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기척으로 내부에 있는 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그는 방문의 잠금을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서 몸을 말고 누워 있는 가이드가 보인다. 어둠 속에서도 놀랄 만큼 빛을 발하는 외모였다. 고초를 겪고 있는 사람 특유의 초췌함이 존재하는데도 그러했다.
조직원은 저 청년이 주청경이 집착할 만한 수준의 가이딩을 할 수 있는 가이드라는 사실도, 그를 데리고 나가려던 다른 조직원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깨어난 가이드가 자신과 말을 섞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조직원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테이블로 향했다.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눈앞이 붉게 변하며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침입자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였다. 훈련 시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에, 조직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천장과, 가이드 쪽을 돌아보았다.
뇌가 울릴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퍼지고 있는데도 가이드는 기절한 듯이 잠들어 있었다. 미동도 없는 모습을 다소 이상하다는 듯 주시한 것도 잠시, 서둘러 방에서 달려 나갔다.
적의 공습이 발생할 경우 자신이 배치될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탓일까. 조직원은 방에서 사라지기 전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에스퍼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장희강에게 대비해, 이곳의 모든 조직원들은 기본적으로 무기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허술하게도 몸을 돌리다가 벨트에 차고 있던 총이 카트에 걸려 떨어진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청각을 마비시킬 듯 울리는 사이렌이 그 상황에 한몫했다.
또한 다급한 나머지, 침실 문을 닫은 후 잠금장치를 설정하는 것을 잊고 말았다.
“…….”
에스퍼가 나간 직후, 굳게 닫혀 있던 차은수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점멸하는 경고등의 빛에 붉게 물든 눈동자가 주위를 살폈다.
“……!”
바닥에 떨어진 총을 발견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은수는 침대에서 내려와 서둘러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허리를 숙여 주워 든 무기는 딱딱하고 차가웠다.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총을 쥔 그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기지 않은 방문을 확인한 낯에 기쁜 기색이 차올랐다. 그는 서둘러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주청경만 주로 사용하는 층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차은수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주청경을 경계하듯, 주변을 불안하게 둘러보며 계단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콰드드드드.
돌연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흠칫한 차은수가 걸음을 멈추고 위를 보았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 천장에 균열이라도 일으킬 듯한 기세의 강력한 진동이었다.
야윈 얼굴에 두려움이 스친 찰나였다.
진동이 뚝 멎었다.
사이렌 또한 끊겼다.
고요해진 복도에는 숨이 찬 차은수가 작게 헐떡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차은수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바로 세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맞은편에 우뚝 서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방금까지는 분명 아무도 없었던 지점이었다.
빨갛게 깜빡이는 불빛에 상대의 커다란 체격 정도만 파악한 차은수가 급히 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상대가 아닌 스스로를 겨누었다.
“다가오지 마세요. 안 그럼……!”
위협하듯 외치던 차은수가 멈칫했다.
점차 상대가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둠 속에 녹아들기 용이한 검은 전투복.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마스크. 비슷한 듯 다른 옷차림은 이곳 조직원들의 복장이 아니었다. 겨우 드러나 있는 그을린 듯한 피부색과 살짝 처진 눈매는 사뭇 익숙했다.
“…….”
온갖 감정에 점철된 눈빛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쿵쿵 뛰는 심장 박동이 스스로에게도 들렸다. 차은수는 스르르 총구를 내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경호원님……?”
확신과 의심을 오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련님.”
심태성이 느지막이, 맹목적인 애정을 가득 담아 답했다.
철커덕. 힘이 풀린 손아귀에서 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심태성의 애절하고 뜨겁던 눈동자가 냉랭히 식으며 차은수의 뒤쪽으로 향했다.
“매번 내 계획을 망치네.”
기척을 죽이지도 않고 나타난 주청경이었다.
“이런 식으로 찾아왔다는 건, 그냥 당신을 처리해도 된다는 의미겠죠.”
싸늘한 음성이 말했다.
차은수를 앗기 전의 주청경이 그저 안온함에 젖은 심태성을 비웃듯 짓밟았다면, 지금 주청경은 그 당시의 심태성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제 가이드를 절대 빼앗길 생각이 없다는 눈.
그러나 심태성에게 한 번 승리했던 전적이 있는 만큼 방심하는 마음도 없잖아 지니고 있었다.
심태성이 차은수를 데려가려면 두 사람이 닿아야 하리라 여기고 있던 주청경은, 우선적으로 차은수의 곁을 점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동급 에스퍼에게만 그 동선이 보일 만큼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
다만 심태성이 더 빨랐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팔을 쭉 뻗었다.
차은수가 등지고 섰던 허공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이상을 감지한 차은수가 그쪽을 돌아보기도 전에, 심연처럼 벌어진 공간은 순식간에 커져…….
그를 집어삼켰다.
***
“윽…….”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두 번째로 겪는 순간 이동은 첫 번째와는 달랐다. 순간적으로 몸이 압축되었다가 펴지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그나마 있던 체력도 죄다 고갈된 몸은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이동되면서 정신을 잃었다.
어지러움에 눈을 감았다 뜨며 일어나는데,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 비틀거리는 상체를 두꺼운 팔뚝이 부축해 왔다.
반사적으로 그 팔을 붙든 내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심태성과 눈이 마주쳤다.
“경호원님……!”
나는 안도감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진심이었다. 나만 어딘가로 보내 놓고서 자기는 주청경에게 복수한답시고 싸우기라도 하다가 잘못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 나를 애틋하게 응시하던 심태성이, 부축하지 않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매만졌다.
“도련님.”
“으읏, 흐으으…….”
울음을 참지 못한 채로 심태성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심태성도 나를 강하게 감싸 안으며 제 품에 욱여넣었다.
“죄송합니다.”
“흐윽, 끕.”
“고통스럽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전부 자기 탓이라고 사죄하는 모습은, 기실 나보다 심한 괴로움을 겪은 이처럼 보였다. 거뭇해진 눈 밑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날카로워진 턱선,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거구에서 비롯되는 위협적인 느낌을 꽤 흐려 주었던 순한 인상이, 이제는 무척 어두워져 오히려 더욱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
“다시는, 절대로.”
나를 안심시킬 목적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다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가 내 얼굴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히 감싸며 떼어 냈다.
묘한 안광이 서린 흑갈색 눈동자와 직면했다.
……어쩐지 조금 무서웠다.
말을 잘 듣고 인내심이 끝내주던 이전의 심태성과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기 위해, 짧은 대답조차 똑바로 발음하기 어렵다는 양 고개를 마구 내젓고는 울기만 했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심태성의 단단한 손바닥에 젖은 얼굴을 비비며 계속해서 설움을 토해 냈다. 눈물이 쉴 틈 없이 흘러나와 심태성의 손까지 축축하게 적시고는 뚝뚝 떨어졌다. 얼굴 전체에 뜨겁게 열이 오르고 두통이 더 심해졌다.
한참을 울다 웅얼거렸다.
“경호원님도, 흐윽, 무사하셔서. 다행, 끅, 흡, 다행이에요.”
“…….”
심태성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오래도록 내 눈물을 닦아 주고, 탈수가 올까 저어되는지 물도 꾸준히 먹였다.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챙김을 받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은 나만이 아니었다.
심태성 역시 파장 상태가 지독히도 꼬여 있어, 당장 가이딩을 받아야만 했다.
맞닿은 피부에서부터 느껴지는 내부 사정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었기에.
몹시 고통스러울 텐데……. 내색하는 법이 전혀 없이 나만 챙기고 있는 모습에 감탄사가 나올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