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납치당했을 때, 주청경과 기 싸움을 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솔직히 이번에도 그런 루트로 갈 줄 알았다. 장소만 해도 그렇잖아.
주청경 이 사이코는 제집에 미리 준비한 철창에다가 나를 가둬 두었다. 실내가 홀에 가까울 만큼 무척 넓어서, 내가 갇힌 설치물 정도는 수용하고도 남았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부조화를 이루는 이 공간은 주청경의 변태스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아마 파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가이딩을 받고 나면…… 자기는 바깥으로 나가서, 내가 꺼내 달라고 울부짖을 때까지 방치하겠지.
……그렇게 예측했는데.
“하, 크읏.”
“흐읏, 읏, 아!”
나갈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 몸에 돌던 약 기운이 사라지고도 지독하게 범하고 또 범해 왔다. 현실을 직시하게 도와주겠다더니, 이렇게 쉴 틈 없이 굴려 댈 생각이었나.
좆으로 길들여지는 건 통달한 지 오래인데도, 주청경의 집요함은 실로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까무룩 기절할 것 같을 때마다 행위를 멈추고 물을 먹인다. 그 덕에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시금 집착적으로 허릿짓을 해 댔다. 여러 차례 체위를 바꾸고 온몸을 주물러 와서, 내 몸이 오랜 교접과 동일한 자세에 저리거나 쥐가 나지 않게끔 유도하기도 했다. 본인의 욕구를 채우는 동시에 내가 최대한 버티도록 컨트롤을 하는 솜씨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주청경이 꺼려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 수완과 내게 주어지는 쾌락이 대단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발, 왜 이렇게 잘하는데.
이 새끼는 나한테 좆질 하려고 태어난 게 틀림없다.
“제, 아윽……. 제발…….”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간절히 빌었다. 그만 멈춰 달라고. 이제 좀 쉬게 해 달라고.
내가 지금 제대로 사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만큼 의식이 몽롱했다. 열을 발산하는 나체는 욱신거리지 않는 데가 없었고, 그 와중에도 복부에 채워진 정액이 발기한 좆으로 질컥질컥 쑤셔져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미쳤어. 몇 번이나 싸지른 거야. 이 정도면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분명 내 체중이 늘었을 거다. 지치지도 않고 좆을 세우는 주청경의 정력이 새삼 충격적으로 와닿았다.
S급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단정 짓기로 했다.
“흐, 큭……!”
내 결박된 발목을 한 손으로 쥐고 들어 올린 채, 하반신을 거세게 밀어붙이던 주청경이 짧게 신음했다. 최대한 깊은 곳을 노리고 쳐들어온 물건이 절정을 앞두고서 잠시간 진동했다.
이윽고 기세 좋게 정액을 분출했다. 진작 가득 차서 출렁이던 안쪽을 두드리는 감각에, 나는 흐윽 숨을 들이켰다. 터질 것 같은 배를 본능적으로 더듬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하으……!”
“……어쩌죠, 은수 씨.”
주청경이 헐떡거리며 내뱉었다. 상기된 뺨과 진득한 눈빛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관골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목선을 따라서 미끄러진다. 그 밑으로 보기 좋게 짜인 흉근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눈길을 앗아 갔다.
“빼면 홍수 나겠는데.”
……저 망할 음담패설.
좆같게 꼴리네.
“원한다면 이대로 있을 수도 있어요. 안 쏟아지게.”
인간 마개라도 되겠다는 뜻인지, 주청경은 빈틈없이 구멍을 틀어막은 거근을 은근하게 놀렸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는 목소리를 낼 힘도 없었다.
“농담입니다.”
눈썹을 쓱 올리며 웃은 주청경이 잠시 침묵했다. 사정 직후의 여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빠르게 호흡이 진정되어 가는 주청경과는 달리, 내 거친 숨과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은 도무지 가라앉을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를 계속 눈에 담고 있던 주청경이 천천히 허리를 물렸다.
질척한 내벽이 주청경의 좆대에 달라붙은 채 바깥으로 살짝 딸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발이 저절로 곱게 되는 야릇한 느낌이었다. 주청경 역시 제 것을 물고 놓지 않으려는 육체에 진한 쾌감이 기어오르는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끝내 즈으윽, 기둥을 전부 빼낸다.
곧바로 내 안쪽에서 점성을 띤 체액이 왈칵 흘러나왔다. 입구를 뒤덮고 있던 정액 거품이 속절없이 떠밀려 내려갔다. 엉덩이 아래로 뜨뜻한 액체가 고이는 감각에 소름이 돋았다.
다리를 내려 준 주청경이 상체를 숙여 왔다. 입술이 맞물리고 혀가 섞였다. 단순한 입맞춤은 아니었다. 숨을 불어 넣거나 빼앗으며 호흡을 조절해 준다. 가쁘게 들썩거리던 내 가슴팍이 점차 안정을 되찾으면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주청경은 닫힐락 말락 하는 내 눈꺼풀로 입술을 옮겼다.
“힘들어요?”
제 끔찍한 파장을 강제로 풀어 주느라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상대에게 잘도 이딴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의식이 끊긴다면 그건 자는 게 아니라 기절일 것이었다.
“네? 은수 씨.”
“……네.”
나는 극심한 피로감에,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밑구멍으로는 여전히 주청경의 좆물을 줄줄 내보내면서.
주청경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운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계 같긴 하네. 나는 아직인데.”
“…….”
“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이내 눈가를 나긋하게 문질러 오며 허락한다.
“일어나서 또 봐요, 우리.”
그 낯설지 않은 인사를 듣자마자, 눈이 감겼다.
***
두 번째 첫 가이딩…… 표현을 이렇게 하니까 이상하긴 한데, 어찌 되었건 간에 상태가 존나 엉망인 S급을 가이딩하고 나면 내 몸은 초주검이 된다. 그 과정인 섹스가 특별하게 난잡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건은 가이딩이 아닌 순수한 섹스였더라도 최소 하루 이상 실신해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받아들이면 나았을 텐데.
뻐근한 눈을 겨우 떴다. 나는 여전히 손과 발이 묶여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허……. 너무하네. 사지를 결박해 두는 것까지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무력하게 제 손아귀에 틀어 잡힌 상대에게 너무 자비가 없다.
형처럼 자기만족을 위한 것만은 아닐 테다.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겠지.
“…….”
그래도 몸은 깨끗하게 씻겨 있고, 복부나 뒤쪽의 불편감도 없었다. 옷도 입혀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알몸이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수치심을 느끼고도 남지 않겠냐고. 딱히 춥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잘 잤어요?”
태연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시선을 돌리자, 철창 밖의 소파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주청경이 보였다. 잘 조형된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태도였다.
“예쁘다.”
“…….”
“종일 지켜봐도 안 질릴 것 같아요.”
……미친 새끼. 등골이 오싹해졌다.
“근데 그럴 수가 없잖아. 그게 너무 화가 나네.”
못 본 사이 더 돌아 버린 게 확실한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질린 내색을 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포화 상태를 넘어서서 펑 터져 버린 것처럼, 무기력하게 허공을 쳐다보았다.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 아닌가. 장희강 밑에서 치욕과 굴종을 겪고, 어딘가 싸해진 형에게 조용히 구출되어 불완전한 안정이나마 얻었다.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주청경에게 납치 감금을 당했다고.
이쯤 되면 나도 현 상황이 어딘가 계획적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형 쪽에서 나를 넘겼다는 주청경의 말이 진실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면서도, 내심 설마설마하는 의구심이 싹을 틔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가 못나고 못되었다 여기며 자책의 수렁에 빠졌다. 나야말로 도망이라는 배신을 택했었던 주제에, 절대 그럴 리 없는 성정의 형을 의심하는 건 지독히 이기적인 짓이라고.
형에 대한 내 신뢰를 확인하고 언짢아했던 주청경이 이런 심정을 어렴풋하게라도 눈치챌 수 있도록, 나는 더 이상 형을 운운하며 울거나 하지 않았다.
고통과 회한 속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나를 주청경이 빤히 주시했다.
“배고프죠?”
“…….”
“은수 씨는 무슨 음식 좋아하는지 물었다가, 욕부터 들었지 뭡니까.”
형에게 연락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럼 나랑 있는 동안 배곯기라도 바라냐니까…… 그제야 제대로 대답해 주더군요.”
그가 몸을 일으켰다. 이후 탁상에 있던 접시와 물 잔을 들고 철창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곁으로 다가온 주청경은 바닥에 앉아 내 상체를 일으켰다.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그의 품에 등을 기대는데, 자연스럽게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
방금 일어나서 입맛이 없는데도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관자 요리였다. 공들여 플레이팅된 모양새가 꼭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보인다. 맛있어 보이는데, 문제는…….
“은수 씨?”
주청경이 내 턱을 잡아 돌렸다.
눈물이 일렁이는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갑자기 왜 울어요.”
왜긴 왜야. 진짜 형한테 말을 전해 들었구나 싶어서 그러는 거지.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는 가족들밖에 몰랐다. 이제는 형만이 알 테고.
나는 뒤섞인 혼란과 절망이 서서히 차오르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형이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니만큼, 이 상황이 더욱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대체 왜……?
성심성의껏 조성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주청경은 내가 불행을 자각해 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사실 이 자식도 처음부터 이걸 노린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