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분가했을 때 형이 임무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휴일마다 이런 생활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같이 일어나서 씻고,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대화를 나눈다. 형은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수면 시간을 계획해 내 체력을 도모했고, 나는 매일같이 형을 받아들였다.
섹스할 때의 형은 다정하지만은 않았다. 마사지를 빙자해 몸을 섞은 날은 정말……. 이곳에 온 첫날 치른 관계만큼이나 격렬했다. 결국 베드가 무너져서 형이 나를 들고 박았었지.
날마다 갖는 관계. 한곳에서만 머무는 비정상적인 생활.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장희강에게 감금되었을 때와 똑같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나 역시 이 상황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나는 기꺼이 형에게 휘둘렸다. 나를 수렁에서 구해 주고, 더는 가족이 아닌데도 형제로서 대해 주는 사람. 내가 기댈 존재는 그런 형뿐이고, 그러니 형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전부 받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진 것처럼 굴었다.
형이 내 몸을 결박했던 행동도, 간혹 선뜩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할 때도……. 모골이 송연해질지언정 이해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결코 건강한 정신 상태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면서도 외면하는 척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듯 평화롭지 않은 나날이 이어질 때였다.
“형.”
소파에서 형과 한 몸이 되어 누워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형이 제 품에 안겨 있던 나를 내려다보았다. 말하라는 듯한 시선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혹시 나 때문에…….”
나와 있는 동안 형은 외부와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마치 사회와 단절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형과 붙어 있고 싶어 하는 나라도, 그 마음과는 별개로 이 상황이 문득 신경 쓰일 법도 했다.
“나 때문에 집에서 안 나가는 거야?”
어두워진 낯빛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붙어 있어서, 계속 일 못 나가고 있는 거지?”
“…….”
내 쪽에서 매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본인 차례니까 시간을 빼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 때문이라는 사실은 맞아서인지 뭐라고 부정을 하진 못한다. 그 반응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나는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이내 자존감이 낮아진 얼굴로 말했다.
“민폐 끼치기 싫어.”
“은수야.”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형의 손을 붙잡았다.
“아직 형이랑 떨어질 엄두도 안 나지만……. 그래도 형 일상에 내가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해.”
“차은수.”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형이 내 손에 힘주어 깍지를 꼈다.
“내 일상은 네가 만드는 거야. 방해는 네가 곁에 없는 게 방해고.”
“…….”
“너는 그냥 이렇게 있어 주면 돼.”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나를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비어 있던 손으로는 내 뺨을 매만진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하지만…….”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가 걱정된다는 듯이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형 입장에서는 순진하기 짝이 없을 걱정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사는 줄 알고 있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사실 그건 누구보다도 형이 가장 바라는 일일 텐데.
심태성이 됐건 주청경이 됐건, 결국 다른 상대에게 나를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는지, 형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이 모습을 직면하니 역시 장희강이 날 보낸 게 놀라워졌다. 독점욕이 강하다 못해 광기에 찬 미친놈이 용케 상호 교류라는 걸 했다고.
서로 치를 떨어서 각자의 영역에 나를 데려가는 게 다행이지. 만약 같이 달려들었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
형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만약 ‘아직’ 형이랑 떨어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던 내 말도 곱씹는 중이라면, 그건 곧 내게 용기가 생기면 바깥으로 나가 보고 싶다는 의미가 아닐지 추측해 보고 있겠지.
검은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놀랄까 봐 말하지 않았는데.”
“어?”
“네가 떠나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형이 나를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리모컨을 조작해 우리 건너편에 있던 TV를 켰다.
지척에 있는 형의 얼굴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채널이 넘어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근 괴물의 출현 빈도가 높아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쉘터의 증축을 대안으로 발표했지만…….
***
현실성 없는 영화나 몇 편 보다가, 처음으로 틀어 본 뉴스였다. 차은혁은 가까이에서 동생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동떨어져 있던 세상과 갑작스럽게 끈이 닿은 차은수는 멍한 얼굴이었다.
괴물들이 수많은 건물을 부수는 영상, 공습 발생 건수를 지역별로 기록한 그래프, 인명 피해 사례.
방송은 심각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차은혁은 에스퍼 협회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TV를 껐다.
“방금……. 저게…….”
차은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차은혁을 돌아보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정보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품 안에서 떨리는 마른 몸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무얼 본 것인지 의문스러워하고 경악하는 것을 넘어서,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정확히 차은혁이 원하던 반응이었다.
“어디서, 왜 나타나는 건지 몰라.”
차은혁은 덤덤히 말했다.
“언제 어느 곳을 급습할지 예측도 불가능하고.”
“…….”
연갈색 눈동자가 혼돈 속에서 마구 흔들렸다.
조금 전 그들이 시청한 영상은 허위일 수가 없는 정규 뉴스였다. 또한 차은수는 차은혁이 이런 허황된 이야기를 꺼낼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거짓 정보는 아니리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차은혁은 차츰 공포에 물들어 가는 차은수의 얼굴을 감쌌다.
“바깥은 위험해. 그러니까…….”
“…….”
“넌 안전한 곳에만 있어.”
어차피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슬이 풀렸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을 리도 없고. 차은수 본인도 그런 착각에 빠져 있지는 않을 테다.
그런데도 차은혁이 구태여 괴물의 존재 여부까지 들먹인 이유는 단순했다. 충격을 받은 동생이 정서적으로는 더욱 나약해질지라도, 그만큼 자신에게 더 의존하기를 바랐으니까.
오늘처럼 앞으로의 일을 이성적으로 헤아려 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도록 말이다.
……가뜩이나 장희강이라는 위험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차은수에게, 이는 매우 가혹한 짓이었다. 차은혁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형.”
하지만 차은수는 가끔씩 그러했듯 예상을 빗겨 나갔다.
“그럼 설마 형도, 저 괴물들…… 잡으러 다니는 거야?”
분명 겁에 질렸는데, 그 포인트가 차은혁의 계산과는 달랐다. 차은수는 창백해진 얼굴로 차은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범죄자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잖아.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
사실 그 범죄자들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소스라칠 것이며, 얼마나 절망할 것인가.
차은혁은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찾을 차은수의 모습을 상상했다. 묘하게 기분 좋은 심장의 통증이 느껴졌다.
동시에, 타인의 걱정부터 하는 차은수가 여전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차게 식은 차은수의 뺨을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널 두고 잘못될 리가.”
제 목숨을 바쳐야지만 차은수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절대 먼저 죽을 수는 없다. 소중한 동생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가이드로 평생 살아가게 둘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기에.
아마 빌어먹을 협력자들 역시 동일한 생각을 품고 있을 터였다. 필요에 의해 손을 잡기는 했지만, 결국 서로의 죽음은 축제 날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든 생각에 불쾌해져서 표정이 약간 굳었다. 그런 그를 보고 어떤 오해를 했는지, 차은수가 제 얼굴을 감싼 형의 손을 꾹 잡았다. 가지런한 눈썹이 두려움과 근심에 휘어 있었다.
“그래도 위험한 건 위험하다고 말해 줘.”
입술 새로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쳤던 데는 없어?”
그는 차은혁의 손을 떼어 내 꼼꼼히 살피고, 얼굴과 어깨도 이리저리 돌려보며 확인했다. 이미 여러 차례 알몸을 보기는 했지만 혹여 발견하지 못한 상처라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었던 모양이었다.
차은혁은 제가 상의를 벗고 있는 참에 뒤쪽까지 확인하려 드는 차은수를 막지 않았다. 차은수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돌아앉아 등을 훤히 보여 주었다.
“……!”
별로 볼 일이 없었던 부위였기 때문일까. 차은수는 근육으로 꽉 찬 등에서 기이한 잿빛 자국을 찾아냈다. 그건 흡사 핏줄처럼 퍼져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흔적에 차은수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 부분에 손끝을 가져다 댔다.
“형, 여기…….”
“…….”
“……안 아파?”
차은혁은 잠깐 기억을 되짚었다.
장희강의 사저에 차은수가 갇혀 있던 시점. 그곳과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신경이 곤두선 채 전투를 벌이다가, 괴물의 독성 혈액이 신체에 튀기는 했었다. 주둥이 속으로 뛰어들었었으니 튄 정도가 아니라 범벅이 됐을 수도 있었으나, 운이 좋게도 등 쪽을 제외하고는 소량만 묻어 금세 회복되었었고. 군데군데 녹아 버린 옷들은 나중에 전부 폐기 처분 해야 했지만.
당시에는 파장 상태야 말할 것도 없었고, 차은수가 장희강의 영역에 있다는 사실이 피를 말려 반쯤 미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