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환자만이 존재하는 병실.
작은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전신이 붕대에 감긴 채 온갖 기계로 둘러싸여 있는 환자는 멀리서도 상태가 몹시 심각해 보였다.
문가에 서 있던 나는 양쪽 손을 들어 보았다. 질리게 보아 온, 차은수로서의 내 손이었다.
아마 전생의 몸은…….
고개를 들어 병상을 바라보았다.
멘털이 나간 탓에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삐. 삐. 환자에게 접근할수록 기계음이 크게 들려왔다. 붕대 사이로 드러난 얼굴 역시 점차 선명히 보였다.
침대 근처에 선 나는, 낯설지 않은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진짜다.
전생의 나였다.
죽은 게, 아니었어.
“어떻게…….”
떨리는 손을 뻗었다.
따뜻한 피부가 닿았다.
헛웃음이 나온다. 가슴을 찔리고 옥상에서 떨어지기까지 했는데, 목숨이 붙어 있다.
시스템의 권능이란 실로 경이로웠다.
난, 시발, 이제 더 놀랄 여력이 없었다.
“…….”
‘다시 시작한다면.’
문득, 나를 찌르고 내뱉었던 장희강의 중얼거림이 환청처럼 다시 들려온다.
‘그땐 정말 함께니까.’
그건 무슨 의미였던 거야?
띠링!
[당신의 영혼을 납치한 시스템은 그쪽 세계의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당시 핵들의 폭주가 머지않았었기 때문에, 훨씬 과거 시점에 차은수라는 존재를 출생시키기 위함이었지요.]
[아마 핵은 당신을 납치하기 전, 시스템으로부터 미리 그 계획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을 겁니다.]……그랬던 건가.
나는 지친 기분으로 정보를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차은수로 태어난 당신은 성년이 되기까지 가이드로 발현하지 못했습니다. 엄연히 제 세계의 소속이었던 영혼이니, 다른 세계, 다른 육체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였던 겁니다.]
[이에 그쪽 시스템은 당신을 강제로 발현시켰습니다.]
[이미 그 시스템은 제 세계에 침입하고, 당신의 영혼을 빼돌려 멋대로 자기 세계에 심었으며, 시간을 되돌리기까지 했죠.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여러 금기를 어겼던 상태에서 또 한 번 힘을 썼으니……. 그 부작용으로 시스템의 권능은 약해졌고, 그가 관장하는 세계에는 버그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데려간 시스템을 추적한 저는, 그 틈을 타 그쪽 세계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퀘스트 포기를 권하고, 과거의 기억들 또한 꿈으로 보여 주었지요. 오늘 보여 드린 기억들과 동일한 두 가지를 말입니다.]
[게임에 관한 기억과, 당신을 찌른 자에 관한 기억. 애초에 당신은 왜 그 두 가지 기억만 잃었을까요.]“……!”
[잊은 게 아니라, 잊게 된 겁니다.]
[그쪽 시스템이 해당 기억들을 지웠기 때문에.]시발.
소름이 쭉 끼쳤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내 기억을 삭제했던 시스템의 속셈이 바로 짐작이 갔다.
그 누구라도 자신이 새롭게 태어난 세상이 게임 속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기괴함과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정신이 붕괴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게임으로 접했던 세계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든 거고.
장희강의 얼굴을 잊게 한 건…….
그도 공략 대상이니까.
나를 죽인 게 분명한 인물을 어떻게 공략하겠어. 그러잖아도 아버질 죽였대서 찜찜한 상대를.
“…….”
근데 장희강을 떠올리다가 과호흡이 올 뻔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딱 한 번 잠깐 겪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머리로는 기억을 못 해도 몸으로 기억해 낸 오류였나 싶다. 버그가 판을 쳤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