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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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파견된 관계자들은 신고 대상의 신병부터 확보했다. 이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병원장과 의사로부터 진술을 듣고, 서준호의 진료 기록과 현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목격자들 전원으로부터 신고 대상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 낸 그들은 신속하게 신원 불명의 남자를 데리고 병원을 떠났다.
“……정말일까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가 뒷좌석을 흘끔거렸다. 의식 없이 늘어져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염료를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 같았던 남자의 옷은 이송 전에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진 상태였다.
“솔직히 능력 쓰는 모습을 직접 볼 때까지는 실감이 안 날 것 같아요. 치료 계열의 능력이라니…….”
상상 속의 존재나 다름없던 능력자가 아닌가. 눈앞에 실존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병원에서 다른 환자들한테도 적용되는지 확인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중독된 쪽에요.”
“언제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힘 쓰는 걸 보고 데려와. 그리고 서준호 씨 상태 봤잖아.”
남자의 옆을 지키고 앉아 있던 관계자가 응수했다.
“깨어나면 당연히 따로 검증 절차 밟을 테고.”
“그렇겠죠?”
“그래. 너, 멋대로 판단하려는 습관 고쳐라. 우린 윗선에서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면 돼.”
짧게 충고한 그는 차창 밖을 보았다. 정부 소속의 에스퍼들이 탑승해 있는 차량들이 일반 차량으로 위장해 그들을 엄호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근데 제 목숨이 달렸을 때는 장담 못 하겠습니다.”
시선이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뭐?”
“저는 죽기 싫거든요. 그 선배처럼.”
하달된 명령을 받고 떠난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면, 이는 곧 죽음으로 귀결된다. 생환하는 경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도 복귀하지 못하고 사망으로 처리된 요원이 있었다. 그를 거론하는 후배의 태도에 관계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임무 수행 중에 죽는 일이 간혹 있다는 거, 몰랐을 리 없을 텐데.”
“당연히 알고야 있었죠. 그래도 저라면 그런 위험한 임무는 바로 거부할 겁니다.”
“이미 ‘그런 위험한 임무’ 수행 중이면서 무슨 헛소리야.”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데, 저런 어이없는 소리를 잘도 한다. 협회든, 국외의 세력이든 낌새를 눈치챈 집단이 이쪽을 공격하고 남자를 갈취해 갈 위험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후배는 백미러로 바깥을 살펴보다가 별다른 부정 없이 입을 다물었다.
빠르게 도로를 달리던 차는 점차 목적지에 근접해 갔다. 이내 엄중한 경계가 이루어지는 건물 앞에서 멈추어 섰다. 함께 도착한 여러 대의 차량에서 내린 에스퍼 중, 호위 책임자가 다가와 차 문을 두드렸다. 달칵 열린 차내를 살핀 책임자가 남자를 눈짓했다.
“제가 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의료실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신체 이상 여부를 비롯해 파장 상태, 등급 측정, 신원 파악을 위한 각종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병원에서의 경위를 보고해야 하는 관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위 책임자에게 남자를 맡기고 차내에서 빠져나갔다.
책임자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헐렁거리는 환자복 밖으로 희게 드러난 손목은 가늘었고, 핏기 없는 입술과 눈은 굳게 닫혀 있다. 에스퍼가 맞는 것일까 의혹이 들 정도로 유약한 외형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감히 가치를 매길 수도 없을 만큼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에스퍼였다.
경건해지는 마음으로 허리를 숙이고 남자의 몸을 안아 들었다. 보이는 대로 몹시 가벼웠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찰나였다.
작은 머리가 툭, 목에 기대어졌다.
“…….”
아주 적은 면적이 닿았을 뿐이었다. 정말 아주 조금, 차가운 피부가 닿았다. 그 순간 책임자는 저도 모르게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뒤를 흘끗 돌아본 후배가 멈칫했다.
“선배.”
“왜.”
“저분 좀 이상한데.”
앞서 걷고 있던 관계자 또한 뒤를 돌아보았다. 호위 책임자인 에스퍼가 얼빠진 낯으로 제 품의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라움과 감격이 뒤죽박죽 섞인 이상스러운 눈빛이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엄호하기 위해 그를 둘러싸고 있던 에스퍼들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개중 몇몇은 책임자를 불렀지만 동상처럼 굳어 버린 상사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두 사람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책임자가 중얼거렸다.
“에스퍼가 아니야.”
“……예?”
“에스퍼가 아닙니다. 이 사람은……!”
돌연 말이 뚝 끊겼다.
일순 사위가 고요해졌다.
눈동자의 초점이 엇나간다. 묘하게 부자연스러워진 표정의 책임자가 품 안의 남자를 소중히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누가 보아도 과장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네.”
“…….”
“다 죽이고 적으로 돌리면 성가셔지니까.”
……뭐라고 하는 거지?
모두가 똑같은 의문을 지녔다. 갑작스럽게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평소와 다른 행실을 보인다.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것도 잠시였다.
책임자의 옆에 거구의 사내가 나타났다. 구릿빛 피부를 지닌 근육질의 상대를 알아본 에스퍼들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심태성이었다.
하지만 협회에서 눈치를 채고 나타나는 것은 충분히 예견했던 바였다. 정부 소속의 에스퍼들은 빠르게 전투태세를 취했고, 일반인인 관계자들은 거리를 벌렸다.
“협회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
심태성은 질문이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팔을 뻗었다. 기절해 있던 남자의 몸이 그에게 넘어갔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보호 대상을 넘겨주는 호위 책임자의 행위에 대다수가 기함했다.
남자를 굉장히 조심스레 품에 안은 심태성이 꽉 막혀 있던 숨통이라도 트인 사람처럼 크게 심호흡을 했다. 흉곽이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남자의 이마에 얼굴을 묻는 모습은 흡사 헤어진 연인을 만난 것만 같았다.
곧 그가 아닌 책임자에게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야말로 묻고 싶네요.”
“……!”
“지금 이쪽 에스퍼를 납치하다가 적발된 거 압니까?”
삐뚜름한 미소와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조가 누군가를 상기시킨다. 이 자리의 대다수는 호위 책임자가 주청경에게 육체를 빼앗겼음을 깨달았다. S급 에스퍼이자, 편치 않은 관계에 있는 에스퍼 협회의 주축인 존재가 삽시간에 둘이나 나타났음을 깨달은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잠깐.
“방금 하신 말씀은,”
“협회에 소속된 에스퍼라고 했습니다.”
주청경이 싸늘하게 단언했다.
“능력을…… 쓰는 대가가 커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엄연히 우리 겁니다. 당신들은 지금 우리 걸 빼앗으려 들었던 거고.”
망했군. 관계자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치를 떨었다.
주청경의 단어 선택이 어딘가 적절하지 않은 것도, 에스퍼가 아니라던 의문스러운 중얼거림도 전부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의 낭패였다.
저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협회장들이 남자를 그들의 소속이라고 못 박은 이상 그에 대한 증거 요구나 반박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공격한 쪽인 자신들이 더 뻔뻔하게 나가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뻔뻔한 것 자체로는 문제가 없었으나 그것을 명분 삼아 협회에서 정부를 대놓고 적대하게 된다면 곤란했다. 작은 불씨가 큰 불길로 번지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니까.
후배에게는 멋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했지만, 상급자로서 머리를 굴려야 하는 상황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해십니다. 자꾸 납치했다고 표현하시는데, 힘을 쓰신 직후에 각혈을 하면서 쓰러졌다고 하시니 급한 대로 저희 쪽 에스퍼 전담 병원으로 모시려던 것뿐이었습니다.”
“…….”
주청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지만, 심태성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가 축 늘어진 남자를 안아 든 채로 사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보였던 다급한 기색으로 미루어 보아, 치료 능력자는 실제로 저들의 소속이다 못해 각별한 사이 같았다.
관계자는 허탈함을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씀처럼 여태 활동한 적이 없으셔서 알려진 바가 없던 분 아닙니까. 저흰 그분이 협회 소속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얌전히 놔뒀을 거고.”
“예.”
당연히 아니었다. 리스크가 커 보이기는 하지만 공표 즉시 전 세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능력이다. 수많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하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타국의 중역을 살려 자국에 빚을 지게 할 수 있다. 적어도 일개 공직자인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가장 엄청난 이점이었다.
그러니, 협회 소속임을 알고 있었더라도 결코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때는 다른 방식으로 능력자를 손에 넣으려 들었겠지. 협회를 원하는 정부의 야망이 오롯이 한 능력자에게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미래형이기도 했다. 주청경은 고개를 들어 잠깐 허공을 응시하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멸살한다면…….
아니, 비효율적이다. 이것들을 죽인다 한들 그게 끝이 아니니까.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지금 의원님들께서 오고 계시는데, 안쪽에서 만나 뵙고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청경의 살기를 눈치채고 긴장한 에스퍼들이 상급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마른침을 삼킨 상대가 애써 태연하게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
호위 책임자의 흐리멍덩한 눈이 감기며 몸이 푹 고꾸라졌다. 바닥을 뒹구는 그의 모습에, 다들 주청경이 떠났음을 알아차렸다. 예고 없던 등장과 다를 바 없는 방식이었다.
안심한 에스퍼들이 그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선배…….”
조금 소란스러워진 상황 속에서, 질린 얼굴의 후배가 가까이 다가왔다. 상급자는 에스퍼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검증은 필요 없겠어.”

জীয়াই থাকি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