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깜빡이며 꽃다발을 멍하니 응시했다.
데려온 이래로 미친 듯이 따먹기만 하더니,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다고.
하여간 변덕스러운 새끼였다.
“…….”
일단 순순해지고 있는 척한 만큼 꽃을 얌전히 받아 들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나나 장희강뿐이었던 공간에 둘 식물이 생기니 조금은 반가웠다.
곧 시들겠지만.
“마침 잠도 안 온다니…….”
장희강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려가서 시간 좀 보낼까.”
장희강이 나를 한 손으로 안아 들더니, 다른 손으로는 케이크 상자를 집어 들었다.
“……!”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여기서 데리고 나간다고?
……웬일이지?
손발이 묶여 있지 않다 뿐이지, 안쪽에서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는 구조인 이 공간에서 나는 영락없이 감금된 신세였다.
아무래도 답답하다 보니 행동반경을 넓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진작 하고 있었다.
무슨 나르시시즘이라도 걸리라는 것처럼 사면이 거울로 된 장소에만 처박혀 있게 하냐고. 솔직히 여긴 정신이 멀쩡하던 사람도 망가질 곳이었다.
나라서 괜찮았지.
물론 섹스할 때 이만큼 자극적인 공간이 없을 것 같긴 했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어떤 식으로 몸을 섞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정도는 아니지만, 형이랑 주청경도 욕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모습을 즐기지 않았나.
뭐 이렇게 다 변태스럽냐.
아무래도 심태성이 제일 정상인 건가.
……라기에는 나를 변기에 앉히고 자기 정액 싸는 모습을 지켜봤었지.
아, 그래. 시발……. 뭐 어때.
결과적으로 내 쪽에서도 다 꼴렸으니 된 거지.
장희강에게 애처럼 안긴 채로 문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자 넓은 거실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휑하고 밝지 않은 분위기였으나, 창문들이 열려 있어 내부로 들어오는 공기가 실로 상쾌했다.
나는 거울 방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생기가 도는 얼굴로, 품 안의 꽃을 꽉 쥐었다. 컴컴한 창밖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내 몸을 장희강이 식탁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개수대로 걸어가 나를 등진 채 손을 씻었다.
“표정이 꽤 괜찮아 보여.”
들을 때마다 오싹한 저음이 울려 퍼졌다.
움찔한 내가 장희강의 뒷모습을 돌아보았다. 딱히 대답을 바란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장희강은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덜었다. 와인병도 꺼내 잔 두 개를 채웠다. 그 움직임에 따라 등 근육이 와이셔츠 위로 윤곽을 드러냈다.
이내 테이블로 다가온 장희강이 접시와 잔들을 내려 두었다. 과일이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방에서 나온 게 기쁜가 보구나.”
장희강은 내 맞은편이 아닌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케이크만 내려다보았다.
본인도 당연한 사실을 묻는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저기선…… 어딜 봐도 온통 제 모습뿐이에요.”
나는 망설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글라스를 든 장희강이 시선을 맞추어 왔다.
“가끔 눈을 떴을 때 혼자 있으면…….”
“…….”
“무섭고 숨이 막혀요.”
간절하게 장희강을 쳐다보았다.
“밖에 나가는 건 바라지도 않을게요. 도망치려고 하지도 않을 테니까…….”
인간적으로 집 안은 허용해라.
“더는, 저 방에 가두지 마세요.”
말끝이 떨렸다. 눈이 촉촉하게 젖어 갔다. 힘주어 안은 꽃이 끝내 품 안에서 바스러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내가 왜 지금 같은 꼴을 당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그 게임을 플레이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상황이 안 오지 않았을는지.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와 두려움에 억눌려 순종하고 있지만……. 아직 그러한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속마음을 꾸역꾸역 뱉어 낸 피식자의 모습에, 무표정하던 장희강의 낯에 희열이 스쳤다.
그가 들고 있던 글라스를 내려놓았다. 이윽고 엄지로 내 눈가를 훔쳐 준다.
“좋은 날인데 울면 안 되지.”
싸이코답게 기분 좋아 보이는 기색이다.
“그렇게 원한다면 못 들어줄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
“……!”
기대했던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는 양, 놀랍고도 기쁜 눈으로 장희강을 쳐다보았다.
정말로 약간은 의외였다.
대가를 요구할 줄 알았는데.
마냥 옥죄기만 하다 살짝 풀어 주어 숨통이 트이게 해 준다면, 제게 긍정적인 감정을 품을지 모른다고 계산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장희강은 계산적이기보다는……. 거의 지 좆대로 행동하는 성향이었다.
“술은 마셔 봤고?”
장희강이 대뜸 와인을 가리키며 질문했다.
……평범한 사회인이었을 때야 질리게 마셨다. 그러나 방금 그는, 차은수로서 술을 배웠는지를 물은 것 같았다.
나는 장희강이 이제 거울 방에 가두지 않겠다고 한 말을 철회할까 두렵다는 듯, 서둘러 남은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잔이 건네졌다. 색이 고운 액체가 찰랑거린다.
“그럼 같이 마셔도 되겠어.”
은은한 조명에 물든 얼굴이 입꼬리를 올렸다.
***
처음에는 마시지 않으면 마시지 않는 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 감정을 애처로이 호소하는 가이드의 모습은, 매번 느꼈지만 무척 자극적이었다.
원래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말만 내뱉은 입이 아니던가.
가두지 말아 달라며 매달려 오는 얼굴이란…….
술을 마시고 자제력이 약해졌을 때는 과연 어떤 속내를 털어놓을지, 장희강으로서는 궁금해질 법도 했다.
“…….”
머뭇거리며 한 모금을 마셔 보더니, 꽤 쓴지 눈썹을 찌푸린다. 실제로 도수가 상당히 높은 와인이었다.
하지만 차은수는 계속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술을 홀짝였다. 감금되어 있던 곳을 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만큼 강한 듯했다.
장희강은 안쓰러움이 들기는커녕, 끝을 모르는 정복욕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입이 쓰면 곁들여 먹어야지.”
장희강이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한입 크기로 찍어 내밀었다.
그새 뺨에 홍조가 어린 차은수가 유순하게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하얀 볼이 동그랗게 올라오며 케이크를 씹는다. 그 행동이 뭐라고, 귀엽고 예뻤다. 장희강은 차은수를 통해서만 느끼게 되는 생소한 감정들이 새삼 재미있어졌다.
“단 걸 좋아하나 봐.”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 모습에 물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달콤한 디저트들을 잔뜩 먹여 살을 찌울 걸 그랬다.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차은수는 너무 말랐다.
아무리 살이 붙어도 금방 빠질 환경이기는 하지만.
“……아뇨.”
차은수가 조금 느리게 케이크를 삼키고 대답했다.
“가끔, 생기면 먹었는데.”
눈동자가 벌써 조금 풀린 것도 같았다. 전체적으로 행동이 둔해 보였다.
장희강은 차은수의 입술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 주고, 비워진 잔에 와인을 또 따라 주었다.
차은수는 두 번째 잔을 아까보다 조금 더 빨리 비웠다.
확실히 취해 가고 있다는 징조였다.
“많이 약하군.”
장희강이 중얼거리며 제 몫의 와인을 머금었다.
멈칫한 차은수가 그를 응시했다.
“저 아직 더 마실 수 있어요.”
옅은 갈색 눈동자가 허공을 쳐다보았다.
“가족들이랑 마실 때는……. 얼마나 마셨었지…….”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짚는다.
그런데 한참 몰두하던 얼굴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서서히 흐려졌다.
과거를 회상하다가 당시의 감정들도 떠오른 것이다.
울컥한 탓인지 입술이 눈에 띄게 파르르 떨린다.
“…….”
“…….”
물속에 떨어진 물감처럼, 미려한 얼굴 위로 풍부한 감정이 퍼져 나갔다. 장희강은 입을 다문 채 그 장면에 집중했다.
눈물을 수습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금 습하게 젖기 시작한 차은수의 두 눈이 아롱거렸다.
“저는…….”
그에게서 목멘 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국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손에 안면을 묻는다.
장희강은 작은 얼굴을 가린, 희고 곧은 손가락들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차은수로서 맺었던 인연들을 생각하는 듯했다.
그들 역시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것이건만.
어째서 저리 슬프게 울까.
스스로도 찾아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 가족이 보고 싶다는 한마디조차 꺼내지 않는 게 아닌가.
“다시 태어났을 때.”
“…….”
“모든 게 허구인 줄 알았나?”
그래서 장희강은 처음부터 그래 왔듯 가이드에게 티끌만큼의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채찍질을 하듯,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을 물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차은수를 보듬고 싶어 했으나, 그 충동이 낄 대목이 아니었다.
버림받은 자가 버린 자를 위로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일방적으로 자신이 차은수를 원하는 관계이지만, 얽힘의 시작은 차은수였다.
애초에 그가 자신을 구원했으니까.
그저 그래픽에 불과한 상대인 줄 알았었을지라도.
……하지만.
자신이 플레이했던 게임 속에서 태어났다고, 가상의 세계라고 착각했기에 쉽게 떠난 것이라면.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
그러나 차은수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확한 부정이었다.
넓은 거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그래.”
원치 않던 대답임에도, 장희강의 기분은 불유쾌한 수준에서 멎었다.
도망친 가이드에 대한 분노는,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몸을 섞으며 얻어 낸 가이딩과 정서적 안정감으로 가라앉은 지 오래인 데다가…….
사실 이미 반쯤은 정답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제게 범해지면서 배덕감에 몸부림을 치지 않았던가.
그건 현실을 게임이라고 여겼다면 나올 리 없는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