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번쩍 뜨였다.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 기억대로라면 마주친 상대는……. 나를 칼로 찌른 사람이었다. 생김새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장소도 타이밍도 분명했다.
조금만 더 늦게 깼더라면…….
“은수 씨?”
나를 끌어안고 있던 주청경의 목소리가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이윽고 커다란 손이 내 얼굴을 붙잡고 들어 올린다.
“안 좋은 꿈이라도 꿨습니까.”
“…….”
눈물이 그득 고인 채 주청경을 쳐다보았다. 시야가 희뿌연 탓에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묘했던 것 같다.
주청경은 곧 엄지로 내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뒤통수를 잡아 자기 품 안으로 얼굴을 파묻게 만든다. 제 옷이 젖어 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서.
얄팍한 셔츠 너머로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왔다. 나도 모르게 조금 매달리듯 파고들었다.
“…….”
“…….”
주청경은 무슨 꿈이기에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냐고, 내용을 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꽉 안아 주며 내가 완전히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왜 하필 나였을까.
그 새끼는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나를 죽인 걸까.
지나간 일일 뿐이라고, 이제는 고작 꿈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덜덜 떨리는 몸은 쉽게 진정되지 못했다.
……시발.
좆같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좀 더 강렬한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다.
***
주청경은 의문이 들었다.
지금 차은수는 거의 공황에 빠진 상태였다.
아무리 무서운 꿈을 꾸었더라도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이만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부정적인 기억을 기반으로 나타난 꿈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차은수를 조사해 보았던 결과 그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 만한 사건은 없었다. 부친이 장희강에게 피살된 일이야, 기억하지도 못할 갓난아기 적에 벌어졌던 것이었고.
물론 이런 상태에서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캐묻는 것은 독이다. 묵묵히 감싸 주는 편이 호감을 사기 수월했다.
그는 자신에게 매달려 안정을 찾으려는 차은수의 모습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힘껏 얼굴을 파묻어 오는 행동이 퍽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기꺼이 힘을 주어 감싸 안자, 두 육체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했다.
“……무서워.”
고개를 숙여 가슴에 이마만 붙여 온 차은수가 목멘 소리를 뱉었다.
“죽는 건, 싫어…….”
‘누군가 죽는 건, 피 흘리는 건 싫어요.’
……또 그 얘기인가.
멈칫한 주청경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어떤 종류의 악몽을 꾸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호텔 테러나 차 안에서 죽은 에스퍼를 떠올린 게 아닐까. 둘 다일 수도 있고 말이다.
곱게 자라 온 도련님으로서는 충격적일 만한 일을 겪기는 했다.
모두 자신에 의해서.
“…….”
주청경은 상당히 생소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믿기지 않게도, 그건 죄책감이었다.
남들을 해치지 말라던 일차원적 애원은 다소 유감스러울 뿐이었으나……. 지금 이렇듯 가이드가 다름 아닌 저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다지 느껴 본 적 없던 감정이 찾아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새삼 인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항상 확신과 결단으로 이루어져 있던 길에 균열이 간다.
무표정하게 차은수를 내려다보았다.
당장 스스로가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상대에게 안겨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기나 한 걸까.
“형…….”
……역시 그렇지 않았다.
차은혁을 찾는 모습에, 달갑지 않은 답을 얻은 주청경이 손을 올렸다.
“아!”
거친 손길에 머리채를 잡혀 얼굴이 뒤로 꺾인 차은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후드득 눈물이 떨어지며 선명해진 눈동자가 주청경을 담아내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차은수의 정신적 지주를 새삼 인식하게 된 데에서 비롯된 불쾌함.
길들이고자 다짐했건만, 오히려 길들여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해 밀려드는 당혹감.
엉긴 감정들은 분노에 가까워져 몸을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기껏 얻어 낸 연민은 고려할 새도 없었다.
“으, 흐으…….”
악몽만큼이나 벗어나고 싶은 현실을 깨달은 가이드의 미안이 애처롭게 일그러진다.
주청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차은수 씨.”
“…….”
“똑똑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차은수의 어깨가 흠칫했다.
“분명 당신은 내 가이드라고 했어요. 그럼 당신 에스퍼는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어째서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냐는 어조였다.
이어 그렇다면 몇 번이고 몸으로 확인시켜 주겠다는 듯, 주청경은 사납게 차은수를 돌려 눕히고 그 위를 점했다.
“아읏……!”
단번에 엎드리게 된 차은수의 허리를 우악스러운 손길로 쥐어 당겼다. 강제로 무릎을 꿇은 그의 하의마저 거침없이 내리자, 탐스럽게 영근 엉덩이가 드러났다.
자신의 브리프 또한 내린 주청경이 흉악한 좆대를 엉덩이 사이에 문질렀다. 노골적으로 뒷일을 예고하는 행동이었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을 테지만 익숙할 감각에, 차은수는 푹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나약해진 정신을 반증하듯 일말의 반항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워진 채 마찰하던 좆이 머리를 숙이고 구멍을 찾아 조준했다. 언제 양물을 받았었냐는 듯 꼭 다물려 있던 입구는, 힘을 주어 파고드는 두꺼운 귀두를 머금으면서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금도 풀어 주지 않고 밀려 들어오는 느낌에 차은수가 가늘게 신음했다.
“하으, 아.”
통증 탓에 한껏 수축된 아랫구멍이 좆대를 끊어 버릴 기세로 우물거렸다. 그에 주청경은 아프기는커녕 강렬한 성감을 느꼈다.
그는 흥분이 서린 숨을 느리게 내쉬며, 옷깃이 내려가 드러난 가이드의 목선과 어깨를 코끝으로 훑었다. 그러다가 상의 위로 어깻죽지를 강하게 물었다. 피가 비칠 정도의 힘이었다. 파득 몸을 떤 차은수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흘렸다.
그러한 와중에도 굵고 울퉁불퉁한 남근은 끝도 없이 안으로 진입하다가, 자신을 허용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흐…….”
“아흐윽…….”
베갯잇을 말아 쥔 차은수가 서럽게 흐느꼈다. 눈물샘이 쉴 틈 없이 퐁퐁 눈물을 내보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말간 눈물방울은 턱 끝에 고였다가 무기력하게 떨어졌다.
주청경이 잔뜩 젖은 얼굴을 우악스럽게 돌렸다. 눈 밑의 도톰한 살이 발개진 채 입술을 잘게 떨며 우는 낯은……. 분명 가련하여 애잔했으나, 그보다 더 음심을 건드렸다.
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채로, 주청경이 허리를 물렸다가 거세게 쳐올렸다.
“……우윽!”
차은수의 전신이 크게 들썩였다. 그러나 주청경에게 덮쳐진 상태로 허리와 얼굴까지 굳게 잡혀, 침대 헤드 쪽으로 밀려 올라가지는 않았다.
“큿! 후, 큭!”
주청경은 분풀이라도 하듯 초장부터 폭력적으로 동작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딱딱한 허벅지 근육이 불끈거릴 때마다 그의 대물이 맹렬하게 장기를 밀어내며 들어섰고, 빠져나간 직후에도 곧장 조금의 여유조차 주지 않고서 다시금 침입해 왔다.
퍽, 퍽. 고환이 들이받는 엉덩이가 삽시간에 발긋해졌다.
“흐윽, 욱.”
마치 안쪽이 원래 본인 자리라는 듯 거침없이 범해 오는 행위인데도, 차은수는 벌써부터 극통이 둔통으로 변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그란 이마에 맺힌 땀이 흘러내리고 선이 고운 눈썹이 찡그려졌다. 열 오른 도톰한 입술은 가지런한 앞니로 깨물었다. 지척에서 그 모든 미세한 표정 변화를 살펴보던 주청경은, 차은수가 점점 들뜨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탐욕스레 몸집을 부풀리는 제 성기를 느꼈다.
“읍……!”
한쪽의 강압적인 입맞춤이 이어졌다. 차은수는 입술을 물어뜯는 주청경의 행동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돌려진 고개가 저린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몰아치는 키스였다.
“으음, 응, 음!”
차은수의 입 안과 배 속을 드나드는 살기둥의 움직임은 나란히 포악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주청경은 두 눈을 깜빡이는 법 없이 차은수의 연갈색 눈동자를 직시했다.
눈물은 멎었지만 여전히 촉촉한 눈에서는 쾌락과 동시에 깊은 비애가 느껴졌다. 주청경은 어쩐지 그 모습이 거슬려, 혀를 놀려 차은수의 입천장을 희롱했다. 진득한 자극에 차은수가 비음을 울렸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주청경의 뇌리를 스쳤다.
말도 안 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잘 느끼는 데다가 속궁합까지 훌륭한 가이드라니.
신이 있다면 저를 위해 내려준 것만 같았다.
……문제는, 그런 그가 지나치게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주청경은 차은수의 정신 역시 육체처럼 연약한 틈새를 벌리고 들어가 장악하고 싶었지, 가냘픈 상처를 보고 동요하는 스스로를 원하지는 않았다.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다.
“……!”
퍽퍽퍽! 주청경은 상념을 멈추기 위하여 허릿짓에 미친 듯이 집중했다. 차은수의 몸이 속절없이 흔들리며 학대에 가까운 좆질을 버겁게 받아 내었다.
“흡, 우으응!”
차은수가 먼저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성기에서 흘러나온 음액이 침대를 축축하게 적셨다.
주청경은 끈적하게 얽고 있던 차은수의 혀가 바르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제 좆을 삼켜 대던 내부도 순간적으로 긴장했다가 풀리며 확연히 녹진녹진해졌다.
육욕이 고조된 그가 욕설을 삼키며, 유혹하듯 우물거리는 안쪽을 양물로 난폭하게 들이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