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가족들이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마치고 달려왔다.
누나가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나를 껴안았다.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미안, 누나.”
주삿바늘이 꽂히지 않은 팔을 들어 누나를 감쌌다.
“얼굴 반쪽 된 거 봐. 빠질 살이 어디 있다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요즘 또 안 좋아지는 것 같구나.”
어머니도 걱정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눈썹을 축 늘어뜨려 보였다.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혹시 은수 너,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도 있었니?”
조심스러운 질문이 날아왔다.
곁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는 형에게 돌아가려던 시선을 붙들었다.
으음. 과하게 즐겨서 죽을 뻔한 것도 스트레스긴 하지.
“그럴 리가요. 그냥……. 바다에 너무 오래 있었나 봐요. 오랜만에 갔더니, 콜록. 좋더라고요.”
“…….”
형의 얼굴이 잠시 차갑게 굳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어머니와 누나는 내가 심태성과 바람을 쐬고 있다며 연락했던 것을 떠올렸는지, 어느 정도 납득한 기색이었다.
“그래도.”
누나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아플 것 같으면 바로 알리라고. 때마침 오빠가 빨리 와서 널 발견했다니 그나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계속 혼자 쓰러져 있었을 거 아니야?”
“알겠어. 앞으론 꼭 얘기할게.”
“대답만 잘해.”
“진짜로.”
누나의 어깨에 뺨을 비볐다. 그러자 살살 풀리는 딸의 얼굴에, 어머니가 고개를 작게 저으면서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 눈길이 방문으로 향했다.
“들어오세요.”
조용히 문이 열리고 전담의가 들어왔다. 모두에게 고갯짓으로 인사한 그가 내게 다가와 체온부터 쟀다.
“좀 어떠신지요, 은수 도련님.”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직 목 상태가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만……. 미열도 남으셨군요.”
체온계를 확인하는 전담의의 얼굴을 주시했다.
뭐지.
형에게 협박성 멘트를 듣고 도망치듯 사라졌던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형을 별로 의식하지도 않고……. 마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잊은 듯 평온해 보였다.
“수액은 내일까진 계속 맞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증상이 완화되셔도 처방해 드린 약은 전부 챙겨 드셔야 합니다.”
“네, 박사님.”
그가 건네 온 저녁 알약을 물과 함께 삼켰다.
……분명 많이 겁먹었던 것 같은데.
그새 마음을 다 추슬렀나.
묘하게 뭔가 신경에 거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흐린 하늘에서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심태성은 저택을 빠져나가는 전담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날씨가 별로죠.”
약간 갈라져 허스키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기척을 느꼈던 심태성은 놀라지 않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우산을 쓴 차은수였다. 두꺼운 외투를 입었는데도 몸이 야위어 보였다.
“……도련님.”
심태성은 차은수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러고는 우산의 손잡이를 부드럽게 빼앗아 쥐었다.
“이렇게 움직이셔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잠깐 앓고 지나간 것뿐이라…….”
말꼬리가 흐려졌다. 가까워진 심태성의 낯을 자세히 살핀 차은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경호원님, 얼굴에 상처가.”
“……괜찮습니다.”
에스퍼 특유의 뛰어난 재생력으로 거의 다 나은 상처였다. 그러나 차은수는 옅게 남은 그것을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가는 손가락이 올라왔다. 뺨을 더듬는 손길에 심태성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어쩌다가 이러셨어요.”
순수한 걱정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심태성이 차은수의 손을 붙잡고 그 하얀 손끝에 입을 맞추었다.
“방심하다 조금 긁혔을 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방심했다기보다는, 육안으로 직접 차은수의 상태를 확인하려다가 생긴 상처였지만.
하지만 굳이 차은수가 그 내막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형과 경호원이……. 저가 구원한 에스퍼들이 서로 살의를 주고받으면서 제 선한 의도를 욕보였다는 진실 따위는.
“…….”
차은수는 눈앞의 에스퍼가 다친 원인이 또 다른, 그것도 자신이 잘 아는 에스퍼임을 알아챈 눈치는 아니었다.
다만 불현듯 어떤 생각이 치민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눈동자가 땅을 향했다.
심태성은 문득, 차은수의 정신이 불안정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발현이 늦어 일반인으로 오랫동안 지내 왔던 차은수였다. 형제를 가이딩하는 일에 과연 거리낌이 없었을까?
……여태 자신은 당연하게 에스퍼의 입장에서 생각해 왔다. 나날이 파장이 썩어 문드러져 가던 에스퍼에게는 가이드가 가족이라고 해서 문제 되지 않는다. 자신이 차은혁이었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차은수라면…….
“도련님은…….”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도 그의 선의를 양껏 탐하지 않았던가.
가이딩에 거부감이 느껴지면 그만두라는 위선적인 소리 같은 건, 감히 꺼낼 수가 없었다.
“……경호원님?”
말을 하려다 말고 침묵하는 그를 차은수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부르튼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여린 입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간다면 어떨까.
추적당하는 삶일지라도, 차은수가 저가 가진 힘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다면.
오직 단둘이서만 지낼 수 있다면…….
“지금 뭐 하는 거지.”
낮게 깔린 음성이 그들 사이로 날아왔다.
흠칫한 차은수가 고개를 돌렸다.
“들어가십시오. 또 찬 공기에 오래 계셨습니다.”
심태성은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아 주며 덤덤히 말했다.
차은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이쪽으로 걸어온 차은혁이 동생의 상체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차은혁의 우산 아래 형제가 함께 서고, 차은수의 우산에는 심태성이 홀로 남겨졌다.
심기가 불편한 눈빛이 심태성의 어둑한 시선과 부딪혔다.
며칠 전 어쩔 수 없이 동맹을 맺었으나, 그 이유인 심태성의 능력을 차은혁은 굉장히 경계하기도 했다. 심태성이 언제든 그것을 악용할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 방금 찰나지만 본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으니……. 의미 없는 경계는 결코 아니었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차은수의 만면에 재미있다는 기색이 스쳤지만, 그들은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짓누르며 대치하느라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당분간 가이딩은 쉬어야 한다는 거 모르나?”
차은혁이 냉담한 어조로 내뱉었다. 신체 접촉을 두고 던진 지적이었다.
그에 곧장 반응한 존재는 차은수였다.
“형.”
놀란 표정으로 차은혁을 부른다. 바로 눈이 마주쳤다.
“……경호원님이 에스퍼란 거, 알고 있었어?”
“이번에.”
네가 가이딩을 해 주었다는, 내게 있어 최악인 형태로 알게 되었다.
차은혁의 가라앉은 눈빛을 차은수가 직면했다.
“……!”
차은수는 입을 달싹였다. 동공이 혼란스럽게 일렁거렸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끝내.
“미안해.”
탄식 같은 사과가 흘러나왔다.
에스퍼 둘의 시선이 차은수에게 꽂혔다.
“우연히 경호원님이랑 닿았는데……. 형만큼이나 상태가 안 좋은 게 느껴졌어.”
“…….”
“그래서 내가 먼저 돕겠다고 나섰고.”
비바람이 불어왔다. 모두의 옷자락이 휘날렸다.
“근데 다른 사람을 가이딩하는 행동이 형한테 배신감을 안겼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러니 그날 새벽에, 그렇게 화가 나 있었던 거였구나.
차은수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차은혁을 올려다보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이 죄책감에 떨렸다.
“그렇지만…….”
제 허리를 두른 차은혁의 팔에 손을 얹으며 조곤조곤 말한다.
“앞으로도 도와드리고 싶어, 형.”
“차은수.”
“가이드가 없는 에스퍼는 괴롭잖아.”
형으로 인해서 내가 그걸 잘 알게 됐으니까.
“…….”
차은혁은 이를 악다물었다.
심태성을 향해 힐난하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에게 계속 가이딩을 제공하겠다고 양해를 구해 오다니.
그런데 그 이유가……. 형인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기 때문이란다.
이리 말하는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가혹하게 범한 형에게, 오히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는데.
“콜록.”
설상가상으로 차은수에게서 작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차은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피부가 차게 식은 동생의 얼굴이 해쓱했다.
당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서둘러 데려가지 않고 무얼 하고 있냐는 듯, 심태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차은혁을 보았다. 그를 무시한 채 동생을 감싼 팔뚝에 힘을 주면서 이끌었다.
“가자.”
형제는 심태성을 뒤로하고서 축축한 타일 위를 걸었다.
현관을 통과해 집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가 주는 훈기에 머지않아 차은수의 뺨이 붉어졌다.
“형…….”
“가만히.”
차은수를 소파에 앉힌 그가 뜨거운 레몬 티를 우려 왔다.
차은혁은 잔을 쥐는 동생을 직시했다.
따지고 보면 심태성이 가이딩을 받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었다. 에스퍼의 능력은 안정적인 파장에서 비롯되고, 파장은 가이딩을 통해 안정되니까.
언제고 문제없이 힘을 발휘하려면 주기적인 가이딩을 받는 편이 옳기는 했다.
하지만…….
본인도 비합리적일 만큼 유치하다는 것을 알지만,
싫었다.
기분이 미치게 더러웠다.
“…….”
차은수가 양쪽 손을 뜨뜻하게 데워 준 컵을 내려놓고 차은혁을 바라보았다.
불길이 일렁이는 듯한 분위기에 조금 긴장한 듯하면서도, 기어코 입을 연다.
“형.”
“…….”
“형이 그랬지. 형한테 제일 중요한 건 나라고.”
감정을 삭이느라 말아 쥔 주먹을 조심스럽게 잡아 오기까지 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스르르 풀리는 마디 굵은 손에, 그에 비하면 얇지만 곧은 손가락이 얽혀 왔다. 탄탄한 허벅지 위로 깍지 낀 손이 내려앉는다.
“내가 누굴 돕더라도……. 늘 나한텐 형이 우선이야.”
밑바닥을 들여다본 것처럼 가장 원하는 말을 속삭인다.
분명 상대를 달래려는 듯 다감하지만, 동시에 아찔하게 현혹시키는 눈빛이었다.
주어진 것이 지나치게 달아 온 근육의 긴장이 풀렸다. 맞닿은 부위에서부터 기분 좋은 열기가 피었다.
차은혁은 순식간에 기세가 꺾인 채, 홀린 듯 동생의 얼굴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