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괴물.
이제는 또 괴물이라고.
[그것들은 기원을 알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존재들이에요.]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원통하게 여기고, 늘 분노와 파괴욕에 휩싸여 있죠.]시스템의 목소리가 울적해졌다.
[원래는 세계의 관리자, 그러니까 저 같은 시스템들을 무서워해서 감히 세계를 공격해 오지 못했어요.]
[하지만 두 세계의 융합 과정에서, 차은수 님 세계의 근원이었던 시스템이 사라지고…….]“…….”
사라졌다?
그 시스템도 눈앞의 시스템과 같이 전능했던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허무히 사라졌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심지어 여러 번 금기를 어겼다는 이 시스템보다야 온전한 상태였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아.
문득 그쪽 시스템이 언급했던 것이 기억났다.
‘강제로 데려가게 되면 이쪽에도 리스크가 생깁니다만……. 어쩔 수 없겠네요.’
그 리스크란 게 무엇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어쩌면 그것이 소멸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스쳤다.
분명 융합 같은 걸 바라지 않았을 테니……. 이 시스템과 싸웠건, 미처 대응할 틈 없이 기습적으로 당했건.
결과적으로 패배한 것이겠지.
기괴하게 느껴졌던 배경의 얼룩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검은 부분들이 흡사 혈흔처럼 보였다.
[……남아 있는 제 나약해진 상태를 눈치채고, 괴물들이 때때로 달려들고 있어요.]
내 생각을 읽고 있을 텐데도 시스템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눈치만 슬슬 보며 설명을 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러잖아도 시공간이 불안정해지면서 세계 곳곳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에……. 아주 좋은 먹잇감으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죠.]
[그들을 전 세계 에스퍼들이 처치하고 있는 상황이고요.]삐빅. 허공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에스퍼들이 괴물들을 상대하는 영상 기록들이었다.
나는 멈칫하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공중의 균열을 파고든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상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럽고 비현실적인 형상.
마치 섬세하게 구현된 게임 그래픽 같았다.
에스퍼들은 괴물에게 덤벼들었다. 많은 인원이 괴물 하나와 싸웠고, 높은 확률로 죽어 나갔다.
지나치게 힘을 써서 폭주하는 경우에는 전투에 방해가 되어, 동료에게 죽임당하는 비극도 존재했다.
휙휙 장면을 바꾸어 가며 여러 경우를 띄우던 화면은…….
이내 괴물을 혼자 상대하는 네 명을 각각 보여 주었다.
익숙한 이들이었다.
“……!”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만감이 교차한다.
장희강과 주청경도 나서서 괴물을 죽이는 모습이 가장 놀라웠다.
각자의 조직이 있던 테러범들이, 융합된 이 세계에서는 영웅이 되어 있다니.
에스퍼들끼리 싸우던 세계가 공통된 적을 죽이는 세계로 변화한 것이다.
저렇게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같이 영혼 없는 얼굴들로 괴물과 교전하는 모습이, 꼭 저렇게 싸우다 뒈져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보여 드린 영상은 융합된 세계 기준의 과거예요.]
[최근 시점으로 와서, 장희강이 차은수 님을 찾아온 날이 바로 융합이 이루어진 날이고요.]
[핵들의 기억은 융합이 되는 즉시 돌아왔어요.]
[제가 만들었던 통로……. 그러니까 게임을 통해 차은수 님을 만났던 그 순간부터 시작한, 모든 기억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