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더 풀어 줘야 할 것 같긴 한데……. 차은수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빼냈다. 축축하고 따뜻한 안쪽에서 빠져나온 손가락들이 공기와 맞닿아 차게 식었다.
강제로 일으켜지듯 머뭇머뭇 일어선 그는, 근처에 고요히 누워 있던 주청경의 육체에 다가갔다. 다리를 벌리고 그의 위로 주저앉자 철창 밖에서부터 짤막한 명령이 흘러 들어왔다.
“세워 봐요.”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 같은 어조는 듣는 상대를 위축시키고도 남았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를 수도 없었다. 차은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이제는 체념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솟구치는 모욕감만은 어찌할 수 없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주청경은 집요한 눈길로 그의 모든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이윽고 차은수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복근 밑으로 위치한 사타구니가 근접해지며 시야를 꽉 채웠다. 늘어져 있는 상태인데도 두둑하고 울룩불룩한 주청경의 좆은 가까이서 보니 더 놀라웠다. 마른침을 삼킨 차은수가 두 손으로 기둥을 잡았다. 제 배 속을 쑤실 때와는 다르게 약간 물컹했다.
근데 지금은 영혼이 비어 있는 상태잖아. 숨도 쉬고 생체 활동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진짜 설까? 차은수는 발기시키기에 실패한 상황을 그려 보며 잠깐 걱정에 잠겼다. 하지만 주청경에게 옮기라도 한 것처럼 호기심 역시 고개를 들어, 우선 엄지 끝으로 음경을 훑어보았다. 이내 곧지 않은 윤곽을 따라 꾹꾹 누르듯 주물렀다.
“…….”
입술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선단을 핥았다. 소심하고 미온적인 행동이었지만, 지켜보는 이의 육욕을 부추기기에는 충분했다. 타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에스퍼의 시선이 뜨겁게 타올랐다.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듯 좆대가리를 할짝거리던 발간 살덩이가 점점 반경을 넓힌다. 끝내는 음모가 있는 뿌리에서부터 귀두까지를 길게 쓸어 올렸다. 입 안에 넣을 엄두가 안 나는 건지 그 동작만 몇 번을 반복하면서, 음낭을 살살 주물러 자극을 주었다.
츠읏, 츱. 물건과 혀가 진득하게 마찰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퍼졌다. 타액에 젖어 가는 성기가 조금씩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차은수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행동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본 얼굴은 변함없이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의식 없는 육신의 성감을 끌어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다. 하긴, 자는 중에도 자극을 받으면 일어서는 게 좆인데. 의지와는 관계없이 생리적인 현상으로 발기하기도 하고. 애당초 불가능할 이유가 없었나.
좆을 쥔 채 가만히 있는 차은수를 향해 주청경이 물었다.
“계속 그렇게 있을 겁니까.”
주청경은 사실상 별로 놀랍지 않았다. 제 궁금증 하나를 해결했다는 점보다, 앞으로의 과정이 더욱 중요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지금의 그는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육체 위에 올라타 발정이 나게 만드는 차은수라니. 아무리 강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지만…… 아니, 그래서 더 황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더 멋대로 휘두르고 싶기도 하고, 연약한 몸을 다정히 안아 주고 싶기도 했다.
“은수 씨 때문에 선 자지잖아요. 달래 줘야죠.”
“……!”
올 게 왔다고 생각한 차은수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갈색 눈동자가 두려움과 망설임에 물들어 갔다.
“불쌍한 표정 짓지 말고. 더 꼴리니까.”
저런 변태 새끼……. 당사자는 모를 칭찬을 속으로 중얼거린 차은수가 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마음의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손가락을 넣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느낌일 거다. ……적응만 하면 돼. 그래, 적응만.
허리를 일으킨 그는 주청경의 샅 위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 번 가열이 되자 알아서 부피를 키우고 있던 거근을 더듬더듬 쥐고서, 제 회음부의 위치와 맞추었다. 어느 정도 풀어 주었지만 여전히 작고 좁은 구멍에 무딘 선단이 닿았다. 입구만이 아닌 주변까지 덮는 감촉에 차은수는 목덜미가 선뜩해졌다.
새하얀 등이 바르르 떨리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주청경은 차은수가 쉬이 내려앉지 못하고 시간을 끄는 광경에 말없이 집중했다.
그것이 조용한 압박으로 느껴진 듯, 머지않아 차은수가 지그시 아래로 무게를 가했다. 구멍이 힘겹게 벌어지며 귀두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흑……!”
청초한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땀방울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고, 입술이 파리해졌다. 반대로 그의 좁다란 밀부가 주는 감각에 주청경의 물건은 한껏 흥분했다.
이제 완연히 팽창한 성기를 머금은 차은수가 숨을 멈추었다. 겨우 끄트머리만 넣었는데도 괴로웠다. 시발, 차라리 단번에 넣어 버리는 게 나을까? 근육이 섬세하게 짜인 복부를 짚은 채 바들거리던 그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 흐으읍!”
젖은 좆대가 엉덩이 사이로 모습을 전부 감추었다. 차은수는 허리를 휘며 입을 벙긋거렸다. 홉뜬 눈에서는 애처롭게 눈물이 쏟아졌다. 남근의 모양대로 우악스레 벌어진 구멍이 바깥에서 그대로 보였다. 주청경은 마치 본인의 육체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달구어진 한숨을 내뱉었다.
“하으, 욱.”
차은수는 본인이 울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통증을 넘어서서 아래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배 속을 채운 성기의 감각 역시 과했다. 직접 품어 보니 더욱 생경하게 느껴져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꼼짝도 하지 못하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
엉망이 된 차은수의 얼굴이 창살 사이를 돌아보았다. 낯선 외형의 남자는 정염에 가라앉은 얼굴로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 당장 이성이 끊길 것 같은 기색이 역력한데도 용케 참아 낸다.
별다른 지시가 없었으나 차은수는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를 떠올렸다. 넣었으면 움직여야지. ……아니면, 이대로 조금 더 버티면서 애를 태워 볼까. 저 새끼 너무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왠지 열받는데.
고민은 짧았다. 힘들게 넣기까지 했는데 마음대로 움직이는 시간도 가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는 하얗게 질린 손을 뒤로 뻗었다. 주청경의 탄탄한 허벅지가 손바닥에 가득 찼다. 허리를 느리게 펴며 엉덩이를 살짝 쳐들자 좆이 딸려 올라왔다. 그 선정적인 느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으읏…….”
차은수는 겁이 스친 표정으로 다시 몸을 내렸다. 음경이 도로 안쪽으로 삼켜졌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척 내숭을 떨며 허벅지 근육을 움켜쥐는데, 가슴을 들썩이며 호흡할 때마다 체내에 들어찬 좆이 미세하게 유영했다. 묘한 느낌에 몸을 뒤틀자 좆이 내부의 어느 한 지점을 스쳤다. 일순 강렬한 쾌감이 올라왔다.
“아……!”
그가 명백하게 느낀 낯으로 흠칫했다. 찢어질 것처럼 벌어진 밑구멍의 둔통을 잠깐이나마 잊게 만드는 감각이었다. 같은 부분을 계속 건드려야겠다는 본능이 솟구쳤다.
“흣, 으응.”
뒤로 약간 휜 허리가 슬몃슬몃 움직였다. 어떻게든 쾌락을 얻어 살길을 모색해 보겠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파리했던 입술에 혈기가 돌며 눈물이 식은 볼에도 홍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동작이 커지면서 마른 허리가 낭창거리고, 느릿하게 주청경의 사타구니 위를 치대는 엉덩잇살은 착착 부딪는 소리를 퍼뜨렸다.
차은수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상대가 움직일 때와는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약한 강도였지만, 지금의 감질나는 행위도 썩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심리적인 만족감이 크기 때문인 듯싶었다. 저를 범했던 포악한 에스퍼가 무방비하게 늘어져 있고, 그의 좆을 자신이 멋대로 쓰는 것은…… 상당히 야릇한 정복감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비록 그 에스퍼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상황일지라도.
촉촉하게 땀이 배어난 상태로 허리를 달싹거리던 차은수가, 누구인지 모를 타인에게 빙의한 주청경 쪽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
흐릿했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까까지 꼿꼿이 서 있던 상대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왜 멈춰요. 좋았는데.”
욕망이 들끓는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창백한 두 손이 허리를 틀어쥐었다.
짧게 숨을 들이켠 차은수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그가 품고 있던 성기의 주인이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럼 내 차롄가, 이제?”
붉은 색채가 번뜩이는 눈빛이 바짝 다가왔다. 지독한 갈망과 집착이 느껴지는 안광에 차은수는 소름이 쭉 돋았다. 그는 얼어붙은 채로 아랫입술을 잘게 떨면서도, 반사적으로 거리를 확보하고자 주청경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입술이 거칠게 집어삼켜졌다.
“음……!”
아픔이 느껴질 만큼 잘근잘근 깨물더니, 입 안을 오로지 혀의 힘으로 가르고 들어서는 폭력적인 입맞춤이었다. 습한 점막이 모조리 탐해지고 혀가 난잡하게 뒤섞인다. 삼킨다고 삼켜도 타액이 새어 나와 턱을 타고 흘렀다.
주청경은 힘겹게 입맞춤을 받아 내는 차은수를 구속하듯 둘러 안았다. 그러고는 퍼억, 하반신을 격렬히 쳐올렸다. 차은수가 엉거주춤하게 무릎을 세운 탓에 조금 빠져 있던 성기가 남김없이 구멍 안으로 들이박혔다.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 터졌다. 차은수는 자신을 쓰러뜨릴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한 주청경의 어깨에 손톱을 세웠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 정도의 자극이 무자비하게 들이닥친다. 역시 힘부터가 달랐다. 좆을 넣고 빼는 타이밍에 맞춰 저를 가뿐히 들었다 놓는데…… 더할 수 없이 깊은 교접에 숨이 꽉꽉 막혔다.
차은수는 쌓일 대로 쌓인 주청경의 욕망이 풀릴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