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경은 스스로를 제법 잘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는 오랜 시간 장희강 앞에서 반감을 숨겼고, 타인의 몸에 들어가 원래 주인인 척 거짓된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도 능란했다. 해묵은 고통 또한 미치지 않고 참아 내었다.
하지만 눈앞의 가이드에게 이는 욕구란.
표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태어난 이래 이보다 더 안정적인 적은 없었다. 그것을 선사해 준 이에 대한 갈망은 당연하게 피어났다.
또한, 몸을 취하면 취할수록 깨달았다. 실은 차은수의 몸뿐 아니라 감정 역시 저에게 귀속되길 원함을.
거칠었던 호흡이 진정되어 가는 차은수를 내려다보았다. 아까부터 서서히 돌아오는 듯했던 이성을 완전히 되찾았는지, 풀려 있던 눈동자가 또렷해진다.
붉게 달아오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
“…….”
“왜 이렇게까지…….”
눈물이 고이며 연갈색 눈동자가 다시 흐려졌다. 갈라진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거, 싫어요. 제발……. 하지 마세요…….”
차은수는 제 얼굴을 가렸다. 가슴팍이 서럽게 들썩였다.
살아오면서 입에 대 본 적도 없던 종류의 약을 강제로 먹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타인과 몸을 섞었다. 오직 쾌감에 눈이 멀어 보채기까지 하면서.
그런 스스로에 대한 수치와 충격, 그리고 자기를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주청경을 향한 공포. 절망에 가까운 감정들로 인해 깊고 진득한 늪 속으로 끌려 내려간 모습이었다.
그를 내려다보던 주청경이 차은수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잔뜩 붉어진 눈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홍수라도 난 것처럼 흘러넘친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다.
“싫다고.”
애처롭게 젖은 시선을 마주한 채, 주청경은 낮게 뇌까렸다.
“내 심정은 어떨 것 같습니까.”
주청경의 눈썹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전혀 예상 밖의 반응에 차은수가 흠칫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겨우 찾은 가이드가 나를 피해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도운 자는 내 수하였죠.”
“……!”
“아꼈던 이를 잃었어요.”
“……그 사람은 당신이 죽였잖아요.”
차은수가 창백해진 얼굴로 받아쳤다.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 놓고…….”
어떻게 이토록 뻔뻔히 말할 수 있냐고.
차은수는 주청경의 태도에 괴리감을 느낀 표정이었다. 동시에, 다시 한번 당시를 떠올렸는지 만면이 두려움에 젖어 갔다.
……하지만 죄책감 역시 공존했다.
조직원이 죽게 된 원인을 자신이 제공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주청경은 눈물 젖은 낯에서 그것을 읽어 냈다.
놀랍도록 유약하지 않은가.
그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어, 짐짓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선 어떤 식의 배신이든, 결과는 죽음뿐이니까요.”
집단의 규율을 지킬 수밖에 없었노라고.
차은수는 끔찍하다는 듯 얼굴을 저었다.
“당신은 무고한 제 친구들도 죽였어요.”
“죽일 의도는 없었습니다. 약간의 혼란만 주려고 했지.”
“말도 안 되는,”
“그들이 죽은 건, 대부분 차은혁 씨의 손에 의해서였습니다.”
주청경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을 고했다.
“차은혁 씨……. 분노에 눈이 멀어 날뛰더군요. 공격 대상들의 몸이 은수 씨 친구들이라는 점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진실을 간교히 섞은 이야기였다.
충격을 받았는지 차은수가 숨을 멈추었다. 크게 벌어진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만연했다.
“이해는 갑니다.”
주청경은 유감스럽다는 듯 차은수의 눈 밑을 엄지 끝으로 쓸었다. 물기가 묻어났다.
“우리 같은 에스퍼에게, 당신 같은 가이드가 어떤 존재인데.”
지독한 소유욕 위로 답지 않은 순애를 쌓아 올렸다. 사뭇 애절함마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가까스로 충격 속에서 헤어난 차은수는, 그것을 직면한 뒤 당혹감에 침묵했다.
“은수 씨.”
“…….”
“내가 어떻게 보일지 압니다. 무섭고 원망스럽겠죠.”
상대를 납치해 약까지 먹이고 범한 에스퍼가 제 행적을, 당연한 사실을 명시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을 만큼 당신을 바랐습니다. 은수 씨를 이곳에 데려오기 전까지,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동정심이란 이용하기에 썩 훌륭한 감정이었다. 그 싹이라도 틔운다면, 다른 방향의 감정으로 키워 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차은수처럼 터무니없이 무른 존재가 상대라면, 더더욱.
애당초 자신을 제멋대로 다룬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한 일 아닌가.
“…….”
당장 차은수의 표정은 일차원적인 증오나 공포가 아니었다. 저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도 진심을 내보이는 모습에, 마음에 혼선이 일어난 것 같았다.
“……! 흐읏!”
깜짝 놀란 차은수가 경직됐다. 여태 안을 채우고 있던 거근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속도가 매우 느려, 빠르게 박히는 데에 익숙해졌던 몸이 느끼기엔 한참이 걸리는 듯했다.
“후…….”
완전히 몸을 물린 주청경이 정든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한계치까지 벌어지며 받아들였던 물건이 사라진 구멍은 한동안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내 원래의 상태를 되찾기 위해 조금씩 수축했다. 그 틈으로 백탁액이 하얗게 모습을 보이더니,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
얼굴이 달아오른 차은수가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모으려 들었다. 하지만 다리 사이에 주청경이 들어와 있었기에 애당초 불가능했다.
주청경은 차은수의 밑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기분 좋게 축축한 내벽이 피부를 감싸 왔다.
“잠, 그만……!”
반항하는 차은수의 뺨에 주청경이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빼 주지 않으면 배가 아플 겁니다.”
열기 어린 음성에 차은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은수도 후처리가 중요하다는 사실 정도야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다만 맨정신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교접한 증거를 정리하는 과정이 달갑지 않은 기색이었다.
“…….”
충분히 혹사한 만큼 빠르게 끝내고 휴식을 취하게 해 주려고 했던 주청경은 가만히 그 모습을 응시했다. 그의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렸다.
기다란 중지가 내부를 느릿하게 긁어내렸다. 안에 차 있던 씨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엉덩이를 타고 흘러 꼬리뼈 근처에 고이는 액체가 뜨뜻했다. 차은수가 속눈썹을 부들거리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흐윽……! 앗!”
찔꺽찔꺽. 안쪽에서 일어나는 접촉으로 발생한 하얀 거품이, 주청경의 손가락을 흠뻑 적시며 계속해서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얼마나 많이 쌌는지 끝도 없었다. 주청경은 정사 내내 사정 횟수를 구태여 세지 않았다. 어차피 무의미했다. 그저 제 좆과 좆물로, 가이드의 말랐던 배가 부를 수준이면 되니까.
그는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구대로라면 자신의 정액을 평생 품은 채로 살아가게 하고 싶은데.
“아흐읏!”
일부러 극점을 자극하는 손길에 예민한 육체가 함락당했다. 차은수의 성기가 불가항력으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을 것 같았던 좆에서 말간 액체가 방울져 천천히 떨어졌다.
주청경은 자신의 것과는 다르게 색이 옅고 곧은 물건을 뚫어지게 보면서 한숨을 삼켰다. 진작 느꼈지만…… 자지도 이렇게 예쁜 건 반칙이다. 지켜보기만 하는데 제 좆도 저절로 발기하지 않나.
“으응, 읏! 아읍.”
쾌감에 상체를 비틀던 차은수가 양손으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으며 신음을 죽였다. 그런 행위를 선호하지 않는 주청경이었으나, 지금은 딱히 제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제 아래에서 애쓰는 차은수의 음란한 모습이 몹시 꼴렸기 때문이었다.
양물이 아닌 손가락으로 들쑤시는데도 늘씬한 몸은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차은수는 막힌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흉기와 다름없어 보이는 대물에 난폭하게 쑤셔졌던 육체였다. 치솟는 성감은 손가락 따위가 아닌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아주 깊고 연약한 부위까지, 있는 힘껏 범해 주기를.
차은수는 그러한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차은수의 모든 반응을 세세하게 지켜보던 주청경은, 그 사실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
가이드가 그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하체가 걷잡을 수 없이 묵직해졌다. 주청경은 차은수가 스스로의 입을 막은 손에 짧게 키스를 남기며, 점잖은 척 부드럽게 손가락을 돌렸다.
“흐읍……. 음…….”
차은수의 허리가 살짝 들렸다가 내려갔다. 그는 손을 내리며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눈을 떴다. 촉촉하게 적셔진 눈동자와 열 오른 입술이 노출되었다.
주청경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온 신경이 아래에 쏠린 차은수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물기 어린 소리가 위아래 교접 부위에서 동시에 퍼져 나왔다.
애가 타게 만드는 손길로 차은수를 한껏 농락하며 자신의 흔적을 빼낸 주청경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손을 거두었다.
“흐윽, 하으.”
강제적인 절정에 거듭 올랐던 차은수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양껏 탐해져 부푼 입술이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은수 씨.”
힘없이 녹아내린 그의 귀에 주청경이 뜨거운 숨결을 흘렸다.
“기억하세요.”
“…….”
“당신은, 내 가이드입니다.”
차은수는 주청경의 품에 갇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