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가이드이고 싶지 않았다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그렇게 속삭인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릎이 눈물로 젖어 갔다.
“근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책임질 게 있는데.
“그래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
심태성이 당황한 듯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알고 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말일 테니까.
그래, 시발. 내가 원해서 간 거 아냐. 억지로 끌려갔던 거야.
“그 말씀은…….”
“분명 그렇게 대답했는데, 어느새 또다시 모든 기억을 빼앗기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살고 있었죠.”
나는 축축해진 얼굴을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형도, 경호원님도, 벌여 놓은 일도 책임지지 못하고 사라진 게 맞아요.”
“…….”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여기는 건 핑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핑계를 대기에는 다들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도련님.”
“미안하고 죄송해서, 나중에는 그 생각으로 버티려고 했어요.”
설움과 자괴감이 눈물로 새어 나와 후드득 떨어졌다.
“그런데 경호원님. 저 실은 너무 아파요.”
곯던 속을 토로하고 만다. 괜찮다는 생각도, 끝없는 자책도 전부 자기 세뇌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만든 심태성에게 억눌린 억울함을 활짝 드러냈다.
“무섭고, 힘들었어요.”
이렇게까지 견뎌 내야 할 일이냐는 듯이.
심태성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
버림받은 것이 아니었다.
심태성은 섣불리 오해했던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쿵, 쿵 아프게 떨어지는 심장을 느꼈다. 버림받았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때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던 존재다. 그런 차은수가, 본인의 의지로 자신을 등진 것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밝히자마자…… 심태성은 하마터면 욕조를 부숴 버릴 뻔했다. 격렬하게 솟구치는 환희에 당장에라도 차은수를 품에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쩍쩍 갈라진 상처를 내보인 채 울고 있는 상대 앞에서 지니기에는 부적절한 감정이었다.
“윽, 흐으.”
얼굴과 목이 불긋해질 정도로 서럽게 우는 차은수를 보며 심태성이 말문을 열었다. 기쁨을 한껏 내리누르느라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도련님께서 미안해하실 이유는 절대 없습니다.”
그저 죽어 가는 이들을 살렸을 뿐인 차은수를 죄인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죄는 오로지 그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있었다. 한 번, 두 번, 그 이상 더 놓치고 싶지 않아 기어코 망가뜨리면서까지 차은수를 탐하는 자신들에게.
심태성은 저와 같은 죄인들을, 특히 이름만으로도 살기가 치솟는 주청경을 떠올렸다. 차은수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날의 내막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타의적 도주였음을 깨닫는다면 아무리 주청경이라도 주제넘게 구는 것을 멈출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유해진 이들을, 차은수가 달리 보게 될 가능성 또한 생길지 모르지.
심태성은 쏟아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내는 차은수를 묵묵히 응시했다. 끔찍하게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싹을 틔웠다. 단순한 독점욕을 넘어선, 도무지 형언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이.
“잘못은 도련님을 바라는 저희에게 있습니다.”
“…….”
“괴롭게 해 드려서…… 놓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구태여 정직하게 덧붙인 심태성이 고개를 숙였다. 너른 어깨 역시 감당하기 힘든 깊이의 죄악감에 짓눌린 탓에 처져 있었다. 자신을 구원해 준 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아, 처음 느꼈던 기쁜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차은수는 눈물을 닦던 것을 멈추고 그 모습을 주시했다.
“……그렇게 솔직하시니까.”
젖은 목소리가 숙여진 머리 위로 떨어졌다.
“저도 자꾸 경호원님한테 솔직해지는 거잖아요.”
차은수가 욕조 안에서 심태성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습기 어린 손끝이 심태성의 목덜미에 닿아 왔다. 마치 위로라도 하듯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은 언젠가 심태성이 환각으로 느꼈을 만큼 눈물 나게 익숙했다.
“가둔 건 경호원님이면서…… 왜 갇힌 것처럼 구세요.”
심태성이 고개를 들었다. 고운 얼굴이 가까웠다. 그림으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인 수려함이 시선을 붙들었다. 차은수에게 면역이 되는 일은, 적어도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없을 것 같았다.
떨어지지 않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애틋하다. 심태성의 몸이 홀린 듯이 서서히 차은수에게 기울었다. 차은수는 허락하듯 눈을 감았다. 입술이 부드럽게 포개어졌다.
촉촉한 표피가 서로를 느끼기 위해 비비적거렸다. 열이 올라 조금 더 발개진 입술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며, 안쪽에 숨어 있던 살덩이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두 혀가 바깥에서 얽히며 물기 어린 소리를 퍼뜨렸다.
“음, 으응.”
심태성의 혀에 감겨 힘 있게 당겨지거나 마찰하던 혀가 차츰 뒤로 밀리며 제 입 안으로 돌아갔다. 그를 따라 함께 들어온 두툼한 혀가 좁은 구강을 빠듯이 채웠다. 심태성의 혀가 습한 접막을 진득하게 맛보았다.
시야를 차단한 차은수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을 눈에 새기듯 바라보던 심태성이 고개를 조금 틀었다. 깊어지는 교접에 차은수가 눈꺼풀을 떨며 뒤쪽으로 밀려났다.
첨벙!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욕조에 들어온 심태성이 자신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앉아 있었다. 그 과정에서도 자석처럼 달라붙어 있던 입술이 츕, 낯부끄러운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행위에 집중하느라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있던 차은수가 바삐 호흡했다. 심태성은 따끈한 뺨에 입을 묻으며, 차은수의 아래로 손을 내렸다.
“……아.”
굵은 손가락이 물속에서 헤매지도 않고 엉덩이 사이를 더듬었다. 움칠한 차은수가 심태성의 어깨를 짚었다. 태도가 부드럽고 침착하기는 한데, 실은 꽤 급한 모양이었다.
중지가 조심스럽게 입구를 파고들었다. 수중이라 그런지 이물감이 다소 둔하게 느껴졌다. 끝마디를 좌우로 돌리며 초입부터 풀어 주더니, 조금씩 진입해 온다.
이윽고 검지까지 들어와 내벽을 문지르는 느낌에 차은수가 신음을 삼켰다. 심태성이 얼굴을 내려 갸름한 턱 끝에도 입을 맞추었다.
“흐응, 읏.”
“……아프진 않으십니까.”
그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물속에서 풀어 주는 것은 처음이라 신경이 쓰였다.
“네.”
다행히도 차은수는 발그레한 얼굴을 끄덕거렸다. 그 모습에 불쑥 차은수가 참기 힘들 만큼 애틋해졌다. 심태성은 입을 맞출 때부터 발기하기 시작했던 좆이 흥분에 날뛰는 것을 느꼈다. 인내하기 위한 기나긴 숨이 흘러나왔다.
점차 역동적으로 손가락을 놀리자 찰박거리며 수면이 요동쳤다. 물에 들어간 하체와는 달리 젖지 않았던 상체에 물이 튀었다. 심태성은 어차피 벗을 옷들은 개의치 않고 차은수의 반응에만 몰두했다.
“아, 하으, 흣.”
미약하게 흔들리는 나신에 맺힌 물방울이 반짝였다. 성감이 배어난 눈동자는 심태성을 향한 채로 이탈하지 않았다. 차은수 역시 오롯이 자신에게, 자신이 주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농도 높은 만족감이 심태성의 뇌를 가열시켰다.
최대한 풀어 주었다는 확신이 설 때쯤, 심태성은 차은수의 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그리고 얕게 숨을 몰아쉬는 차은수의 입술을 질척하게 빨면서 제 하의의 앞섶을 풀었다. 수중에 노출된 물건의 선단이 밑구멍을 쿡쿡 찔러 왔다.
“아흐읍…….”
입구를 느릿하게 통과해 들어서는 좆에 차은수가 이마를 찡그렸다. 탄탄한 등 뒤로 다리를 힘껏 감으며 부들거리자, 진정하라는 듯 심태성의 혀끝이 예민한 연구개를 살살 문질러 왔다. 딱딱한 손바닥은 허리와 등줄기를 오가며 바깥의 성감대 또한 자극했다.
심태성은 차은수를 능숙하게 달래면서 뜨거운 체내에 거근을 전부 집어넣었다. 빈틈없이 심태성의 샅에 안착한 차은수가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가쁜 숨을 쉬었다. 내벽이 움찔움찔 수축하며 좆대를 조였다.
“큿……. 도련님.”
뽀얀 목을 아프지 않게 깨물던 심태성이 전신을 경직시켰다. 넣자마자 싸지르고 싶어지는 조임이었다.
생각 없이 흔들고 꿰뚫어 대고 싶은 본능을 제어하며, 그를 든 채로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색다른 삽입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좋지도 않았다. 감각이 약간 무뎌지는 수중에서의 행위는 취향이 아니었다. 그는 온전히 차은수를 느끼고 싶었다.
“흐앗!”
갑작스레 일어선 심태성의 행동에 두 사람의 몸에서 물줄기가 떨어졌다. 깜짝 놀란 차은수는 팔다리로 심태성을 칭칭 감고 매달렸다. 커다란 두 손이 양쪽 엉덩잇살을 꽉 붙잡고 있었으나, 체중이 완전히 무시된 것은 아니었기에 결합이 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 잠깐만. 왜 그대로 안 하고……. 나 서서 박히는 거 좀 약한데. 차은수가 바르르 경련하며 신음했다.
“겨, 경호원님……!”
“침대로 모시겠습니다.”
“……!”
심태성이 욕조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차은수가 자지러지며 심태성의 목을 끌어안았다.
“흐아아! 잠, 으흑! 아앗!”
보폭이 큰 걸음에 맞추어 몸이 들썩일 때마다 차은수가 날 것의 신음을 터뜨렸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하얗게 터지는 느낌이었다. 무방비하게 풀린 얼굴을 다잡을 틈도 없이 지독한 쾌감이 배 속을 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