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집에 돌아갔다.
나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지친 상태였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기절하지 않은 스스로가 용했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몸을 섞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게다가 심태성의 섹스 성향이 부드럽다고만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심태성은 차를 세운 뒤, 조수석에 늘어져 있던 내 몸을 외투로 덮고 안아 든 채 걸음을 옮겼다.
집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그런 내 모습을 맞닥뜨리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심태성은 아무 질문도 받지 않겠다는 듯한 분위기로 그들을 지나쳤다. 무서운 신참이었다.
오늘도 누나와 어머니는 회사에서 날을 샌다고 들어오지 않아 집 안이 고요했다. 애당초 어머니와 통화했을 때 해당 사실을 통보받았기에 오늘 심태성을 가이딩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마침 내 계획대로 심태성이 떡 치기에 최적인 장소로 나를 데려간 상황이었고.
……정말 미친 것처럼 했다.
너무 좋아서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제가 샤워를 도와드리는 편이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를 침대에 앉힌 심태성이 권해 온다. 순해 보이는 저 눈이 내 모든 몸짓에 욕정을 품고 뜨거워지는 걸 경험한 나로서는, 그 말이 한 발 더 빼자고 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안 돼. 여기서 더 하면 무조건 실신한다.
“아……. 아니에요. 경호원님도 쉬셔야죠.”
“저는 괜찮습니다.”
이보다 최상의 컨디션일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가이딩 받아서 살 만해졌다는 건 알겠어. 그래도 몇 번이나 쌌는데 저렇게 티끌만큼도 안 피곤해 보인다고?
혹시 그게 봐준 건가……?
섬뜩한 예측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 심태성의 모습을 보면 가능성은 컸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신 걸로도 충분해요. 조금 쉬다가 움직이면 되니까, 어서 들어가 보세요. 시간이 많이 늦었는걸요.”
설마 하는 추측을 묻어 두고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양 끝이 살짝 올라가는 입술에 심태성의 시선이 꽂혔다. 본인이 혹사한 탓에 눈에 띄게 부르튼 모습일 터다.
“참. 그리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약간 숙였다.
짐승이 이를 박은 듯한 자국이 남아 있을 목덜미가 노출된다.
“앞으로도 가이딩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꼴렸다면 미안하지만, 지금은 진짜 안 된다.
마음 같아서는 씻지도 않고 자고 싶다고.
“……예. 감사합니다.”
느지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주무십시오, 도련님.”
“좋은 밤 되세요.”
내 응수에 짧게 묵례한 그가 뒤를 돌아섰다.
아마 별채에 마련된 숙소에서 밤을 보낼 터였다.
심태성을 내보낸 후,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허공을 쳐다보았다.
띠링![부가 퀘스트 진행 현황...심태성: 야외(완료), 구강(완료), 반라(완료)→보상 적용]
공통 키워드인 다섯 시간 이상은……. 다섯 시간이 뭐야. 훨씬 오래 달렸으니 당연히 완료고.
보상, 이게 참 진국이었다.
사실상 이토록 늦은 귀가의 원인이기도 하다.
신체 접촉 시 가이딩과 쾌감 증폭 효과를 준다더니, 관계 중간에 그것이 적용되면서 서로 발정기라도 온 것처럼 정신 줄을 놓아 버리고 2차전을 시작했던 것이다.
죽여줬지.
닿는 곳마다 성감이 되는 느낌이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로의 목소리나 숨소리만 들어도 흥분에 먹혀드는 기분이었다. 심태성이 뒤처리를 해 줄 때마저 과하게 느껴 곤란할 지경이었었고……. 결국 뒤처리가 끝나고 체외 사정으로 한 번 더 뛰고 마무리했다.
“음…….”
게다가 따지고 보면 쓰레기 같은 체력의 내가 여태 쓰러지지 않고 버틴 것 또한 보상 덕이다. 농도 깊은 가이딩이 안기는 혼미함, 피로감, 현기증 같은 부작용이 몇 배는 줄어든 느낌이었으니까.
가이딩을 하다가 기력이 다 빨린 내가, 섹스 도중 기절해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돕는 장치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아무래도 부가 퀘스트는 반드시 수행해야겠다.
……우리 형은 언제쯤 나타나 줄까.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내일?
모레?
언제가 됐건 내 몸의 흔적들이 사라지기 전에는 와야 할 텐데.
그래야 분노에 눈이 멀어서, 주저 없이 제 키워드들을 실현하지 않겠어?
과장 좀 보태 내가 바람만 불어도 넘어져 다칠까 늘 전전긍긍하던 형이다. 형에게 난 항상 보호해야 할 어린 동생으로 보였을 테니까. 그 존재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말이었다.
물론 가이드로 발현하고 나서는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지만, 오랫동안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소중히 대해 온 태도가 한순간에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돌아와서 나를 따먹을 계획이기는 해도 아주 거칠게 대할 생각은 없겠지.
자신의 성향도 모르고서.
이젠 그 태도를 바꾸어, 내게 비상식적이기까지 한 성적 욕구를 풀 순간이 머지않았다.
머릿속으로 즐거운 상상을 하며 무거운 몸을 겨우겨우 일으키고 욕실로 향했다.
……근데 설마 오늘은 아니겠지?
***
떠나기 전 차은혁이 한 고민은 여러 가지였다. 파장을 망가뜨리기 위해 능력을 남발할 수 있는 지역. 검사 후 나갈 장기 임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인, 자신이 없을 때 차은수를 지킬 인재.
세상을 뒤흔들고도 남을 존재가 된 막냇동생이다. 진실을 감춘다고 해도, 보호 레벨을 올려야 그나마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따라서 전담 경호원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조건은 두 가지.
강한 무력을 갖추되, 에스퍼가 아닌 존재일 것.
에스퍼라면 피부만 스쳐도 차은수가 가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에스퍼도 아닌데 강자라 불릴 이가 있겠냐며 혀를 차겠지만, 강함의 척도가 무조건 에스퍼들만 갖는 능력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에스퍼가 아니어도 인재는 있었다. 무력, 판단력, 우월하게 타고난 신체 조건과 그것을 넘어서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단련한 존재.
차은혁은 그런 사람을 알았다.
심태성.
자신처럼 에스퍼 테러리스트에게 가족을 잃은 아픔이 있는 전 팀원이었다. 하나 있다던 동생마저 떠나보내고 실의에 잠겨 팀에서 나간 인물.
과거 팀원이었던 시절의 심태성은, 맡은 일에 있어서 위험도를 따지지 않고 여느 에스퍼 팀원보다도 뛰어난 담력과 책임감을 자랑하며 매사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었다. 말수가 적고 신중한 성격이라 차은혁은 그 모든 점을 높이 샀다.
팀을 떠난 이후로는 경호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소식을 들어서, 그만큼 차은수의 안위를 맡기기에 적합한 이가 없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렇게 신뢰했던 그일까?
차은수의 몸이 얼룩진 원인은.
“…….”
새벽이 장막을 드리운 침실.
저가 온 줄도 모르고 숙면을 취하고 있는 동생을, 어둠 속에 파묻힌 상태의 차은혁이 내려다보았다.
수면 보조등에 드러난 하얗고 가는 목부터 벌어진 옷 안의 살결까지.
누가 보아도 성적인 의도로 남겨진 자국이 군데군데 존재하고 있었다.
차은혁은 무표정한 낯으로 한참 동안 그것을 응시했다. 한껏 차가워진 채 상황을 파악하는 두뇌와, 보이는 그대로에 반응하여 분노를 끌어올리는 심장이 한 몸에서 각자 작용했다.
그는 천천히 팔을 뻗었다.
지이이익.
가차 없는 손길이 차은수의 상의를 손쉽게 찢어 낸다.
그런데도 차은수는 뒤척이지조차 않았다.
미동도 없이 감겨 있는 눈과 흐트러짐 없이 고른 숨소리. 애초에 머리도 말리지 않고 물기에 젖은 상태로 잠들어 있는 것으로, 얼마나 피곤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차은혁은 까드득 살벌한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내 동생의 바지마저 단번에 갈가리 찢어 버렸다.
우악스러운 손놀림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신이 완전히 드러났다. 눈처럼 흰 피부는 누군가가 욕심껏 남긴 손자국과 잇자국으로 울긋불긋해진 상태였다.
차은혁은 눈을 꾹 내리감고 숨을 골랐다.
“크윽……!”
차은수에게 가이딩을 받기 전보다도 훨씬 더 엉망이 된 파장이, 화기에 휩싸인 마이너스적 감정을 두 팔 벌려 반겼다. 머리가 조여드는 고문 같은 감각에 의해 끔찍한 두통이 치솟았다. 병적으로 뛰는 심장이 고통 탓인지 격분 탓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어쩌면 둘 다여서 이토록 괴로운 것일지도 몰랐다.
뜨거워진 머리를 느끼며 억지로 생각을 이어 나갔다.
내 가이드……. 내 동생과 몸을 섞은 게 누구지?
심태성이 맞나.
……하지만 누구인 게 중요한가?
그야 당연히 찾아내서…….
찾아내서 뭘 어쩔까.
동생은 법적으로 성인이었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자유였다. 다른 에스퍼를 가이딩한 것도 아니고……. 아니. 설령 가이딩했다 하더라도 자신은 함부로 간섭할 주제가 못 된다.
독점욕이 늪처럼 깔린 밑바닥을 보여 준다면, 그때에는 실망을 금치 못하고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차은혁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차은수의 몸에 선명하게 잔재하는 흔적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싶은 욕구. 가이딩을 향한 긴박한 갈증. 신경을 불태우는 분노.
흥분이라는 하나의 틀에 묶인 감정들은 당장 해소되기를 바라며 이리저리 날뛰어 댔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곤히 잠든 동생을 눈앞에 둔 형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