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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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경호원님.”
나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다급히 들고서 심태성을 붙잡았다.
“형이, 저희 형이 위험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사람이 그랬어요. 형이 곧 사지로 들어갈 거라고. 위험한 상대와 싸우게 될 거라고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이나 다름없는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어쩔 수 없다.
원래라면 주청경과 정신적으로 서로를 다루려던 기 싸움 아닌 기 싸움 끝에 내가 우위에 서게 될 경우, 그에게 형을 도와 장희강을 생포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제3의 눈으로 타이밍을 지켜보다가 말이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에 대해 주청경이 의문을 표한다면, 형이 임무 내용을 말해 주었었다고 둘러댈 예정이었고.
하지만 계획은 심태성에게 구출되면서 바뀌었다.
주청경이 아닌 심태성에게 부탁을 하는 것으로.
“…….”
심태성은 주청경이 형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지껄이며 내 정신을 무너뜨리려 들었으리라고, 알아서 그렇게 여기는 기색이었다. 의도대로였다.
무섭게 굳은 얼굴에 대고 계속 입술을 달싹였다.
“어디에서 일어날지도 우연히 들었…….”
“도련님.”
어서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고, 가장 중요한 말을 하려는데 뚝 잘렸다. 심태성은 진정하라는 듯 내 어깨를 강하게 붙들어 왔다.
“도련님은 지금 납치를 당하셨다가 돌아오신 겁니다.”
“…….”
나도 아는데……?
“제발, 본인부터 돌볼 줄 아시면 좋겠습니다.”
심태성은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망연하게 쳐다보았다.
……이거.
쉽지 않을 것 같네.
***
민망할 정도로 심태성은 나를 극진히 보살폈다. 물도 스스로 따라 마시지 못하게 했다면 말 다 한 것 아닐까. 씻고 옷을 새로 입을 때 내 팔다리를 보고는 얼굴이 딱딱해지더니만, 살이 너무 빠졌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영양가 넘치는 음식들로 매 끼니를 챙기고, 거의 누워서 지내는 생활은 주청경 쪽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는 조금씩 식사량을 늘리고, 누워서 평화로운 창밖 바다 경치를 보고 있자니 점점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이 무인도로 추정될 뿐, 어디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외부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태성은 내게 여기가 어느 지역인지 알려 주지 않았고, 자신의 핸드폰조차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메일을 보낼 수 있는 노트북이나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애당초 인터넷 자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재벌가 사유지의 별장이 아닌가 싶을 만큼 크고 세련된 디자인의 집에서 이게 가당키나 한 상황인가.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경호원님.”
거실의 통유리 창을 통해 바닷가를 감상하며 먹는 점심. 내 목소리를 들은 심태성이 눈을 마주쳐 왔다.
“예.”
“형한테……. 연락이라도 하고 싶어요.”
“…….”
“어머니나 누나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안 될까요?”
심태성은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 두었다.
“회장님과 전무님께서는 아직 귀국하지 않은 상태이십니다.”
안 된다는 뜻이었다.
말문이 막힌 나는 당혹스럽다는 듯 심태성을 바라보았다.
심태성은 굳건했다.
“고초를 겪고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습니다. 회복에 전념하십시오, 도련님.”
또 그 소리.
지금 내 신체 컨디션이 자기 덕분에 충분히 좋아진 걸 알 텐데도 모르는 척하는 거다.
물론 심리적인 부분도 걱정하는 눈치기는 하다만…….
글쎄.
“여긴 안전하니 이곳에서 요양 개념으로 쉬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경호원님.”
어딘가에 납치 감금되어 있던 사람을 또다시 세상과 단절시키는 듯한 상황은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텐데.
……그러고 보니 심태성도 정신이 없어서 우리 가족한테 연락할 틈이 없었을 텐데. 여기에 온 이후에는 했을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보고했을까. 어머니든 누나든 나랑 직접 대화하지 않으면 걱정에 잠기는데 말이다.
형한테서 왔을 연락은?
“…….”
제3의 눈으로 틈틈이 엿본 장희강은 S급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만큼 상태도 가장 나빴다. 폭주가 머지않은 상태란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한마디로, 원래 저렇게 돌았나 싶을 정도로 냉혹한 미치광이였다. 애초부터 위험한 신념을 지닌 범죄자기는 했지만.
처벌할 명분이 생긴 존재라면, 상대가 자기 수하일지라도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죽이거나 고문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정치인이나 정보기관의 관계자를 납치해 와 정의 구현을 한답시고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짓들도 자행했다.
무서울 게 없는 데다가 에스퍼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자. 파장의 상태가 아무리 나빠도, 그것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주청경과 심태성의 싸움을 통해 깨달은 지 오래다.
당연히 형과 심태성이 협공한다면야 둘에게 승산이 있지만, 그러다 장희강이 폭주에 이르게 될 시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터였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또한 어차피 장희강을 대면해 가이딩을 해야 하기에 나는 심태성을 구슬려서 그쪽으로 향하려는 것이었고. 가이딩만큼 에스퍼를 무방비하게 만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가이딩을 위해서는 신체 접촉이 성사되어야만 한다. 애초에 가이딩이 가능할는지도 아직 확실치 않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다.
미리 어머니와 누나의 목소리라도 좀 듣고 가려고 했다.
가능하다면 심리 치료는 잘 받고 있는지 서준호에게도 안부 좀 묻고 싶고.
근데 이래서는…… 주청경에게 납치당했을 때와 다를 게 없다. 정중하게 통제될 뿐이지.
……나 좆 된 건가.
그러나…….
심태성의 이상 행동은 그 이후로도 더 있었다.
“……!”
전생의 내가 죽기 전의 상황을 맞닥뜨리는 악몽.
그 꿈을 또 한 번 꾸고 번뜩 깨어난 날이었다.
아직 캄캄한 밤이었고 집 안의 인기척이라고는 내 것밖에 없었다. 내가 잠이 드는 과정을 곁에서 꼭 확인하는 심태성은, 그 직후 능력을 써서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가져오고는 했다. 지금도 순간 이동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이 무척 불쾌하게 느껴졌다.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러고는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파도치는 소리를 듣는데, 영 갑갑함이 가시지를 않았다. 종당에는 외투를 껴입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시커먼 밤바다였지만 달빛에 물든 물결이 정취를 돋게 하면서 두려움보다는 묘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나는 두꺼운 외투의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느리게 바닷가를 거닐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오히려 달갑다. 짭짤하면서 상쾌하기도 한 바닷바람이 기분 나쁜 생각들을 몰아내 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다리만 놀릴 때였다.
“도련님!”
다급한 부름이 울리고, 곧바로 거센 손길이 뒤에서 내 몸을 휙 돌렸다.
깜짝 놀라서 커진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심태성이었다.
전력 질주라도 한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데, 어쩐지 이유가 그게 아니라…….
극도의 불안감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핏기 없이 질린 입술,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급박히 훑어보는 눈, 놓쳐서는 안 될 무언가를 움켜쥔 듯한 손길. 모든 부분이 심태성이 현재 무척 동요한 상태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읏!”
양쪽 위팔로 가해지는 악력이 너무 강해서 아팠다. 짧게 튀어나온 신음을 들은 심태성이 흠칫하더니, 힘을 조금 풀었다.
내 무사한 모습을 확인해서인지 서서히 진정해 가는 기색이었다.
“경호원님?”
심태성의 뜬금없는 행동에 당황스러운 듯, 왜 그러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인상을 일그러뜨린 그가 낮게 목을 울렸다.
“말씀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시면 어떻게 합니까.”
“……!”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건가?
심태성이……?
하마터면 입을 쩍 벌릴 뻔했다.
겨우 흉한 표정을 짓지 않고 더듬더듬 말했다.
“저는, 주무시고 계실 줄 알고…….”
애초에 집에 없었잖아.
억울한 속내를 숨긴 채, 심태성의 태도가 낯설고 무섭다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외출했다가 돌아와서는 내가 집 안에 없어서 몹시 놀란 듯했다.
“잠이 깨서 바람 좀 쐬려고 나왔어요……. 바로 앞이니까.”
“……바로 앞.”
그가 사납게 내 말을 자르며 뇌까렸다.
저절로 위축되며 입이 다물렸다.
“바로 앞이었습니다. 도련님을 잃은 게.”
심태성은 분노와 회한이 들끓는 눈빛으로 내 얼굴을 직시했다.
“제 눈앞에서 사라지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아주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다면.”
“…….”
“그때처럼 도련님을 잃게 될 것 같으니까.”
철써덕! 파도가 높고 거칠게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서로에게 시선만 박은 채로 정적이 흘렀다.
“경호원님…….”
나는 심태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떨었다.
그리고 이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나 스스로가 아둔하다고 여겼다.
“…….”
“…….”
심태성은 내가 저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넘어서, 자책감까지 갖는 것을 그대로 읽어 냈다. 그는 느리게 눈을 내리감았다.
충동적으로 윽박질러 버린 스스로에게 욕설을 내뱉고 있는 것도 같았다.

জীয়াই থাকি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