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손이 내 상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죄송합니다.”
그가 죄스러운 태도로 고개를 떨구었다.
쏴아아, 강한 바닷바람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겨울 공기에 건조해졌던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입술을 깨물며 손을 뻗었다. 이어 심태성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번 사건은 심태성에게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을 법도 했다. 코앞에서 자기 가이드를 잃은 에스퍼의 심정이란……. 그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러잖아도 책임감이 넘치는 성격이니 내 안전에 과민해지고도 남겠지.
그럼 이렇게 분리 불안까지 덤으로 따라오는 것도 맞고.
잠깐 외출할 때조차 초조해하는 모습을 봤기에, 사실 이 상황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지 마세요. 사과하실 것 없어요.”
“…….”
내 손길에 심태성이 고개를 조금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얼굴을 숙인 상태였지만, 키 차이 때문에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아픈 얼굴로 말했다.
“전부 제 잘못이니까요.”
“……!”
심태성이 흠칫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었다.
“저만 아니었으면, 경호원님이 그때처럼 다치실 일도 없었겠죠. 이렇게 신경 쓰실 일도요.”
“그게 제 일입니다.”
그가 당치도 않다는 어조로 받아쳤다.
“도련님을 지키지 못한 건 오로지 제 실수였습니다.”
“아뇨.”
고개를 저었다. 자연스럽게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도련님.”
심태성은 내 손등을 겹쳐 잡았다. 그 따뜻한 손안에서 손을 빼내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죄송해요. 먼저 들어갈게요.”
죄책감에 눈도 못 마주하겠다는 듯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
심태성이 나를 잡아당겨, 조금 조급하게 입을 맞추어 왔다.
겹친 입술 사이를 곧바로 파고든 혀가 여유 없이 안쪽을 범하며 잡아먹을 듯이 굴었다.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몸을 뒤틀며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
“으읍……!”
그러나 내 허리와 뒤통수를 단단히 틀어쥔 손이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 봤자 심태성의 드넓은 어깨는 꿈쩍도 안 했다.
관계 중이 아닐 때 이렇게 강제적으로 군 적이 없었는데.
……물론, 이건 단순히 나를 억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심태성은 지금 내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견 무섭게 타오르는 눈빛은 나를 향한 간절함을 담고 있었고, 내 몸을 옥죈 손길에서는 저를 피하지 말아 달라는 애원이 묻어났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런 마음을 갖고 거리를 두려 하지 말라고.
반사적으로 저항하던 나는, 문득 그러한 절박함을 느낀 것처럼 몸부림을 멈추었다.
야외에 노출되어 차게 식었던 입술이 거친 교접으로 온기를 되찾는다.
어느새 나는 눈을 감고 심태성의 두꺼운 혀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심태성은 내 얼굴 전체를 집어삼키고 싶은 사람처럼, 고개를 틀어 가며 더욱 깊숙하게 탐해 왔다. 허리 또한 강하게 끌어당기는 탓에 온몸이 그에게 파묻히듯 밀착되었다.
“…….”
“…….”
끝나지 않을 기세였던 키스가 겨우 멈추었다.
바로 눈을 뜨지 않고, 젖은 입술 새로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내 입가에 다시금 제 입술을 꾹 붙였다가 뗀 심태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도련님.”
“…….”
“도련님께서는 제 은인이십니다.”
움찔한 내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시선을 맞추었다. 강인한 분위기를 전부 내려놓은 얼굴이, 오직 나만을 갈구하며 애처로이 고백한다.
“제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가 내 어깨에 낯을 파묻었다. 더 가까워진 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도련님과 함께할 수 없다면 저는 살아 숨 쉴 필요가 없습니다.”
“……경호원님.”
“그러니 죄책감 같은 감정은 오직 제 몫입니다.”
자신이 무조건적으로 을이라는 양 복종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일순 멍해졌다.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아니, 어떤 이유로든 저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곁에 있게 해 달라며 굵직한 두 팔이 집착적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내 허리는 이제 거의 휠 정도였다.
“…….”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가,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심태성의 뒷머리를 어루만지듯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심태성이 고개를 들고 나를 응시했다. 명확한 대답을 바라는 것이다.
나는 복잡한 심경을 만면에 드러내며 머뭇거렸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미안함, 내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거대한 의미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부담감, 그것을 당사자로부터 가슴 절절한 고백으로 전해 듣게 된 상황에 대한 수줍음.
끝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대로 들리지 않을 법한 작은 대답도.
물론 온 신경을 내게 집중하고 있던 에스퍼는 그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었다.
심태성이 희미하게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애달픈 표정이었던 잘생긴 얼굴이 안도감에 느슨히 풀려 갔다.
우리는 언제든 입술이 바로 다시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를 눈에 담았다. 바람도 방해하지 못할 만큼 근접한 터라,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입김이 분간 없이 뒤섞였다.
자신의 무거운 감정을 감당하겠노라 대답한 내게, 훨씬 더 강렬해진 애정이라도 느낀 것일까. 심태성의 눈빛이 점차 짙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여태껏 참은 게 용하지 않나 싶었다. 파장 상태가 첫 만남 때와 견주어도 될 만큼 나쁜데 말이다.
이렇게 정신력이 강한 에스퍼가 내 일에 관해서는 엉망으로 흔들리는 것이 만족스럽다. 또한 내가 먼저 나서서 가이딩을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시기였기에…….
“……으응.”
다시금 진득하게 키스해 오는 심태성을,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두 팔 벌려 맞이했다.
***
심태성은 잠시 섬에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직후, 무조건적으로 차은수의 방부터 들어가 보았다. 아무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해도 완벽히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자신이 없는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 아나.
그래서 차은수를 구출해 온 최근 며칠과는 다르게 텅 빈 침실을 맞닥뜨린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어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침착하게 사고가 흘러가지 않았다.
심태성은 미친 듯이 집 안을 헤집고 다녔지만 실내 어디에서도 차은수를 찾을 수 없었다. 막 사용한 흔적이 있는 욕실을 보았음에도 그 어떤 합리적인 추측 하나 들지 않았다.
이내 황급히 바깥으로 향해, 바닷가의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있던 청년을 발견한 이후.
그를 붙들고 감히 화를 내고 말았다.
스스로가 돌이켜 보기에도 한심하고 우스운 꼴이었다.
곧장 그에 대한 벌을 받듯 차은수가 작별을 고했을 때는……. 그야말로 이성이 끊길 뻔했다. 온갖 비이성적인 생각이 뇌를 채우기 시작했더랬다.
하지만 광포한 생각을 겨우겨우 밀어내고 진심을 다해 붙잡았다. 위협적인 감정을 모조리 뺀 얼굴로 차은수의 정을 자극했다.
그리고 다정하기 짝이 없는 차은수는 그를 받아들였다.
다행이었다.
만약 말을 철회하지 않았더라면…….
“읏, 읍, 흐윽.”
발갛게 익은 얼굴로 제 좆을 받아 내고 있는 차은수의 손은,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았을 터다.
“후우…….”
심태성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차은수의 목선을 핥았다. 혀에 감기는 보들보들한 살결이 육욕뿐 아니라 식욕까지 돋웠다.
집으로 들어와 현관에서부터 밀어붙이는 태도에도 차은수는 싫은 기색 없이 그를 포용했다. 외투만 벗어 던지고서 하의는 내린 채, 제대로 풀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성기를 삽입했는데도 그랬다.
가이딩이 갈급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듯, 괴롭게 신음하면서도 최대한 힘을 빼며 물건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마치 그를 억지로 취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리고 꼴렸다.
심태성은 제가 원래 이토록 비틀린 기질을 지니고 있었는지 의문스러웠으나, 의문이 든 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그는 제 남근을 녹일 것처럼 조여 오는 뜨겁고 좁은 구멍을, 양심의 가책 없이 뚫어 대며 황홀한 감각에 몰두했다.
“흐읏!”
벽을 짚은 채로 엉덩이를 내밀고 심태성의 좆질을 버티던 차은수가 비틀거렸다. 단계를 거듭하듯 거세지는 동작을 견디기 어려워 보였다.
심태성은 고개를 돌리고 있던 차은수의 뺨에 입술을 내리누르며, 아예 그를 벽에 짓눌렀다. 딱딱한 벽과 심태성 사이에 낀 차은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그저 당하고만 있다가, 둔중한 좆이 안쪽의 극점을 뭉개고 오가며 선사하는 쾌감에 슬슬 성기를 세우기 시작했다.
두 눈을 촉촉하게 적신 채로 앓기만 하던 차은수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아흑! 흐으응!”
심태성은 차은수의 신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더욱더 흥분했다. 유독 성감에 예민한 차은수는 고통보다는 쾌감을 훨씬 크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탁탁탁. 고환과 엉덩잇살이 맞부딪히며 나는 음란한 소리가 한계치까지 빨라졌다. 여린 내벽을 거칠게 쑤셔 대는 양물은 절정을 앞두고 흉물스럽게 부피를 키웠다.
심태성은 고개를 내려 차은수의 입술을 물었다가 놔주고는, 이를 악물며 눈썹을 찌푸렸다.
“크읏, 흡!”
“흐, 으! 아, 우읏!”
흉포한 좆질에 마치 공격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차은수의 신음이 뚝뚝 끊겼다. 그는 열기 오른 볼을 벽면에 문지르며, 발긋한 엉덩이를 저도 모르게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