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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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혁은 상부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역대 가장 젊은 나이로 팀장이 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들은 차은혁이 지닌 에스퍼로서의 능력과 뛰어난 감정 조절, 리더십을 인정했다.
그래서 의심 없이 믿었다. 차은혁이 수색 임무 수행 중 실마리를 잡아, 장희강의 기지를 단신으로 염탐했다는 거짓 보고를.
정부에서는 차은혁의 공로를 치하하였고, 그가 요구하는 인력들과 장비들을 지원했다. 더불어 필요한 권한들을 승인해 주며 작전 진행에 힘을 쏟도록 했다.
그렇게 주둔지에 거대한 규모의 병력이 집결했다. 장희강의 세력이 도시급이라던 정보에,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한 것이다.
차은혁은 주청경이 거짓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정보가 사실일 확률이 더 크다고 여겼다. 만약 꿍꿍이가 있다면……. 어느 한쪽이 승리하는 방향보다는 공멸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주청경은 계획대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른 방식으로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고.
“1팀 집합한 상황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점검해 보겠습니다.”
“팀장님, 장관님께서 연락을…….”
내전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일을 앞두고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들인 준비와 꼼꼼한 확인 절차가 끝났다.
시간을 더 끌어 봤자 외부에 정보가 새어 나가 장희강의 공습을 앞당기는 결과만 초래할 터다. 이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태였다. 선제공격을 어느 쪽이 하느냐에 따라, 초반부에 피해를 겪고 사기가 꺾이는 쪽이 정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미 전력의 움직임을 눈치챈 장희강이 자신의 영역에서 기습에 대비하는 것을 택했을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출정 전날이 되었다.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칠 수 있는 작전이었다. 생환을 보장하기 어려운 터라 대다수의 이가 가족, 연인, 친구에게 연락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휘 본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차은혁 역시, 자신의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심태성입니다. 안전한 곳에 계시니 찾지 마십시오.’
며칠 전 심태성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단 두 마디만을 내뱉고 통화는 끊겼다.
차은혁은 그길로 차은수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는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차은수를 납치해 놓고 당당히 전화를 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게다가 이사를 결정했던 안전 가옥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은, 어떠한 위협적인 사건을 겪었다는 방증이 아닌가.
아무리 큰일을 앞두었다고 해도 그게 차은수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바로 추적해서…….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갈 뻔했던 차은혁은 문득, 이성을 움켜잡았다.
……당장은 오히려 이편이 낫지 않나.
혹여 새 주거지에서 위협적인 사건을 겪었다면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연했고, 곧 발생할 내전이 외부로까지 번질 만일의 경우를 고려해 볼 때…… 그 시기에도 안전을 장담할 만한 구역에 있을 테니 말이다.
저만큼이나 차은수의 보호에 집착할 심태성이니 그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 않았다. 또 다른, 인적이 없는 고립된 환경을 물색해 머물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치지 마, 형.’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이 무슨 임무를 나가게 될지 직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걱정이 스며들어 있는 말이었다.
그는 약한 소리를 할 생각도, 필요도 없어 그저 그러겠노라는 대답만 돌려주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돌아갈 테니까. 장희강을 죽여 삶의 위협을 근절하고, 평화롭게 동생과 살아갈 상상만 했으니까.
매일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미소를 머금은 채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차은수의 모습이었다.
손가락 끝이 애틋하게 동생의 얼굴 부분을 쓸었다.
이렇게 장기간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진심을 전할 걸 그랬다.
“…….”
아니, 임무를 끝내고 차은수를 찾아내어 전해도 늦지 않다. 그래, 그때가 적기였다.
좋은 결말은, 상상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
두 진영의 상황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하지만 방으로 들이치는 햇살에 눈이 부셔 다시 감았다.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도 아침 해는 더없이 환하게 떠 있었다.
……내일이라고.
싸움판에 뛰어들 예정인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셨습니까.”
푹 가라앉은 심태성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내가 깬 걸 알아채고 그도 눈이 떠진 듯했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품속을 파고들자, 두 팔로 내 몸을 둘러 온다.
심태성은 처음 나를 여기로 데려왔을 때보다 많이 물렁해진 상태였다. 자신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털어놓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는데도 내가 그걸 다 수용했으니까. 아마 마음에 꽤 여유가 생겼겠지.
내 이마에 입을 맞춘 심태성이 귓가를 만지작거려 온다. 그 애정 어린 손길을 느끼다가, 말문을 열었다.
“꿈을 꿨어요.”
고개를 들자 바로 눈이 마주쳤다. 자다 깬 얼굴도 참 잘생겼다.
“아버지가 저를 토닥이시면서, 제 이름을 불러 주시는 꿈이요.”
“…….”
“사진으로 봤던 얼굴 그대로시더라고요.”
“사진, 말씀이십니까.”
심태성은 진지해진 표정으로 내 말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에 남은 아버지 모습이 없거든요. 가끔 창고에 있던 앨범으로만 찾아보고는 했어요.”
“……그러셨군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볼 수도 있지만……. 보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가장 먼저 떠서.”
조금 흐려진 낯으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현장에 있었던 우리 가족들한테,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을까요.”
“도련님.”
거친 손바닥이 조심스레 내 볼을 쓰다듬는다.
위로를 건네는 손을 꼭 붙잡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 사람이래요.”
“…….”
“형이 상대할 사람……. 그 사람이, 아버지 목숨을 앗아 갔던 에스퍼예요.”
심태성의 눈이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당황한 눈치였다.
“형까지 그 사람한테 잃게 되면……. 전…….”
일어나서는 안 될 경우를 상상하자 손발이 차게 식었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심태성은 내 체온 변화를 느꼈다.
나는 눈썹을 늘어뜨렸다.
“가야 해요, 경호원님.”
“……그런 위험 속에 도련님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
심태성이 여전히 안 된다는 태도로 낮게 대답했다. 하지만 한 박자 느린 것이, 청신호였다.
내 두 눈이 애처롭게 젖어 갔다.
“방심시킬 수 있어요.”
장희강을 가이딩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심태성의 표정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한동안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심태성이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빠져나가려는지 다리를 내린다.
그런 그를 뒤에서 살며시 감싸 안았다.
“……!”
노출되어 있던 그의 등 근육이 일순 움찔했다.
“경호원님이 잘못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물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때문에 그렇게 되셨고,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고 여기니까……. 그곳에서 그게 가장 괴로웠어요.”
납치되었을 때 일어난 일이나 느꼈던 심정 따위를 조금도 이야기하지 않던 내가 대뜸 고백하자, 심태성이 놀랐는지 몸을 경직시킨다.
단단한 등에 뺨을 붙였다.
“그때도 그랬는데, 형이 아예 잘못된다면 저는 아마…….”
“……도련님.”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겠죠.”
불안감과 두려움에 말끝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
머뭇거리던 심태성이 다시금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공중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들이 보일 정도로 햇빛이 그득한 방은 따뜻했지만, 나는 추위를 느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그 모습에 안타까움이라도 들었는지, 심태성은 손을 들어 내 눈가를 훑었다.
이윽고 길고 느리게 숨을 내쉰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내게 졌다는 뜻이었다.
그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는 심태성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해요.”
위험 속으로 함께 뛰어들자는 말이니까.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 도망치라던 예전의 말과는 모순된 부탁이 아닌가. 그것도 현재 서로 관계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 형을 위한 부탁.
“사과 같은 건 하지 않으시기로 하셨잖습니까.”
심태성이 내 얼굴을 감싸 들었다.
“……경호원님.”
습한 눈동자로 심태성과 시선을 나누었다.
나는 고개를 더 들어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혀가 부드럽게 맞물린다. 서로를 보듬는 듯한 키스가 이어졌다.
“도련님.”
짧지 않은 입맞춤이 끝난 직후.
심태성이 나직하게 나를 불러 왔다.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내 낯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런 나를 두고서 심태성은 침대를 벗어났다.
방에서도 빠져나가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침대 근처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고는 내 왼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찰칵. 차갑고 매끈한 금속이 손목을 감쌌다. 얇고 가느다란 팔찌였다. 액세서리를 잘 끼지 않는 사람도 무난하게 착용할 법한, 심플한 디자인이다.
“이건…….”
이게 뭐냐는 듯 내려다보자, 심태성이 팔찌 중간에 박힌 사각형의 작은 보석을 엄지 끝으로 짚었다.
“위치 추적 장치입니다.”
“……!”
“어떤 경우에도 절대 빼지 마십시오.”
나를 섬에만 가두어 뒀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만 해 놓고, 끼게 할지 말지 고민하던 물건인 듯했다.
결코 내 쪽과 떨어질 생각이 없겠지만……. 이곳을 떠나게 되면 그런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하니 지금 착용시킨 거고.
이걸 차고 있으면 가겠다니.
나한테 이로울 뿐인 조건이잖아.
감동한 내색을 숨긴 채, 나는 팔찌를 매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জীয়াই থাকি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