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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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극소수에 해당하는 S급 에스퍼. 에스퍼 테러리스트 전담 팀장. 세계적인 IT 기업 차화의 장남. 형은 어떤 것도 가볍지 않은 위치에 존재했다.
나와는 다르게 선이 굵은 외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녁을 먹고 막 씻은 터라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연단 신도시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에스퍼 A씨가 현장 검거되었습니다.
뉴스에 집중하던 형의 미간이 좁혀졌다. 잘게 경련하는 손과 경직된 턱 근육도 눈에 들어왔다. 비극적인 보도 탓이라고 여기기에는 조금 과한 반응이다.
가이딩이 갈급해서 나타나는 증상.
형은 최대한 티 내지 않는다고 굴지만, 안타깝게도 항상 내 눈에는 다 보였다. 여태 저 모습을 안쓰럽게 여기는 수밖에 없었는데.
“왜.”
내 시선을 느꼈는지 맞은편의 나를 돌아본다.
자연스럽게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면서 고개를 저었다.
“형도 참 형이다 싶어서. 퇴근하고 본다는 게 뉴스라니, 일의 연장 같잖아.”
“원래 사건 소식은 빨리 접하는 게 좋은 거니까.”
“네에.”
웃으면서 무릎을 끌어안았다. 형이 TV를 흘끗했다.
“돌아다닐 때 늘 조심해라.”
“……나 이제 스무 살이야. 다 큰 동생 걱정은 접을 때도 되지 않았어?”
형은 우리 가족의 안위에 민감했다. 특히 띠동갑 차이가 나서 어리게만 느껴지는 동생인 내 쪽에 더욱.
잠깐 외출을 하더라도 무조건 경호원과 동행시킬 정도였다.
이해는 간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 갔다던 피습이 원인이겠지.
까마득한 과거, 이사 오기 전 살았던 집에 에스퍼 테러리스트들이 침입했었다고 한다. 놈들은 온 식구 앞에서 아버지를 죽인 후 종적을 감추었다.
내게는 당시의 기억이 없다. 갓난아기의 몸은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그 참상 속에서도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먹고 자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갓난아기 때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 대부분이 흐릿했다. 주변 사람들의 외형, 상황, 그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달리 트라우마를 겪게 된 형은, 성년이 되자마자 놈들을 잡기 위해 에스퍼 테러리스트 전담팀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후 최연소 팀장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활약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되짚어 보니 우리 형, 소설 속 주인공이 따로 없네. 존나 멋있잖아.
새삼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형은 내게 없는 용기와 인성을 갖추었다.
“근데, 형.”
그래서 뜸 들이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다리를 내리고 일어났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였는데……. 정말 그냥 피곤한 거 맞아? 표정도 나빠 보여.”
“괜찮아.”
“그래도 어디 봐.”
형의 앞으로 다가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 열을 재겠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천천히 팔을 뻗었다.
반듯한 이마에 내 손끝이 닿았다.
***
에스퍼의 세계는 시끄럽다. 파장이 망가질수록 심화되는 특성이었다. 청각만이 아니다. 극대화된 오감은 고통에 가까웠다.
차은혁은 오랜 시간 그것을 참고 살아왔다. 직업적인 면에 있어 도움이 되는 고통이라고 자위하면서. 애당초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동생과 접촉한 찰나.
살갗을 찌르듯 감지되던 모든 것들이 조용해졌다.
바깥을 지키는 경호원들의 기척, 소파의 가죽 냄새, 작은 TV 소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생의 숨결과 심장 박동이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춘 줄 알았을 것이다.
세상에 오직 그와 동생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형?”
익숙한 부름이 들려왔다. 놀란 낯이 아래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쳐다보던 쪽은 나였는데. 내가 눕힌 건가.
몽롱한 머리가 사고했다.
“형, 왜 이러는…….”
말이 흐려진다. 차은수가 눈을 크게 떴다.
눈가에 본인 게 아닌 눈물방울들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제야 차은혁은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막냇동생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눈물에 어쩔 줄을 몰랐다. 연갈색 눈동자를 떨며 입을 벙긋거렸다.
머지않아 가늘고 곧은 손가락이 조심스레 차은혁의 얼굴을 감쌌다.
차은혁이 숨을 들이켜며 전율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 건데?”
“…….”
대답한들 동생은 이해할 수 있을까.
절망적일 만큼 얽히고설킨 채 정신을 좀먹어 가던 파장. 그것이 부드럽게 풀려 가는 감각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수용하고 있던 고통과 번뇌가 사그라든다.
구원받는 느낌이었다.
아니.
구원받았다.
죽기 직전까지 헤매던 사막에서 마시는 물도 이보다 달지 않을 것이다. 차은혁은 차은수의 손에 낯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부족하다.
더 깊게 닿고 싶다.
“……!”
이성을 삼킨 본능이 동생의 부드러운 입술 또한 취했다.
놀란 탓에 벌어진 입 안으로 침범해 무자비하게 들쑤셨다. 얼어붙은 혀를 구속하며 맛보았고, 연한 점막들을 탐하고 또 탐했다.
급박한 입맞춤을 버겁게 받아 들던 작은 입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을 흘렸다.
“흐읍!”
뒤늦게 차은수가 저항하기 시작했다. 깔린 몸을 버둥거리며 차은혁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단련된 에스퍼가 그를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양쪽 손목을 모아 짓누르고 턱까지 틀어쥐자 차은수는 무력하게 붙들렸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형의 행위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후, 으.”
헐떡거리는 호흡, 젖은 입술과 혀가 마찰하는 소리가 형제의 공간에 퍼졌다. 차은혁이 긴 교접 끝에 떼어 낸 입술로 차은수의 뺨부터 진득하게 훑고 내려갔다.
차은수는 목을 무는 그의 어깨를 황급히 붙들었다.
“형! 그만해!”
간절한 외침에 드디어 차은혁의 움직임이 멈췄다.
혼몽했던 눈에 이지가 돌아왔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창백하게 질린 차은수가 횡설수설했다. 충격과 수치심으로 범벅된 얼굴이었다. 가이딩을 통해 기운을 탈취당했으니, 상태도 좋을 수가 없었다.
차은혁은 동생의 팔을 스르르 놓았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깨달음이 둔기처럼 뇌를 후려쳤다.
차은수가, 자신의 동생이 가이드로 발현했다. 그리고 자신은 생전 처음 맛본 급이 맞는 가이딩에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들었다.
혼란스러울 것도 없다.
차은혁은 오직 자신의 죄만이 성립되었음을 인정했다.
“……차은수.”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은수야.”
“…….”
“미안하다.”
고개를 숙였다.
“형이, 미안해.”
악문 잇새로 젖은 사죄가 흘러나왔다.
그토록 지키고자 한 동생을 제가 상처 입혔다. 극심한 후회가 치솟았다. 어쩌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벌로 동생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 사실이 미치도록 두려웠다. 아직도 내면에서 들끓는, 만족스러운 가이딩을 향한 욕망이 자연스레 억눌러질 만큼.
차은혁은 자신을 혐오하며 등 돌리는 차은수를 상상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영혼까지 꿰뚫는 느낌이었다.
친애하는 동생은, 오늘부로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까.
“…….”
“…….”
죽음 같은 정적이 흘렀다.
차은수는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를 부축하기 위해 뻗어진 차은혁의 손이 채 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양손으로 안면을 가린 차은수가 한참 동안 침묵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고요가 깨졌다.
“이 상황이 그냥 믿기지가 않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차은수는 힘없이 감정을 털어놓았다. 목소리가 손안에 갇혀 웅웅 울렸지만, 차은혁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도 뚜렷하게 들려왔다.
“근데도 알 것 같아. 형이 방금 왜 그랬는지.”
차은혁은 시선을 내린 채 죄인처럼 묵묵히 동생이 하는 말을 들었다.
“나, 가이드인 거지?”
손이 치워져 드러난 얼굴은 여전히 희게 질려 있었다.
“형 태도가 뭔가를 급하게 원하는 사람 같았어. 나도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가이드들은 가이딩을 수혈과 흡사하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무리하게 이어갈 시 심각한 쇼크를 겪었다. 차은혁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하마터면 이성을 잃은 채 차은수를 범할 뻔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은수의 모습이 아프게 와닿았다. 당장이라도 감싸 안고 싶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 생각이 맞아?”
“그래.”
차은혁이 무겁게 대답했다.
언제 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와 동급일 터였다.
“……솔직히 무서웠어. 내가 알던 형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차은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가느다란 떨림과 함께 잠시 말이 멈춘다.
“형제잖아.”
“…….”
“그런데 어떻게…….”
물기 어린 눈동자가 방황한다.
차은혁은 감히 차은수를 안심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는 동생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앞으로는 절대 너한테 손끝도 안 대. 약속해.”
“형.”
“뭐든 네가 억지로 해야 할 일은 없어.”
“그러면 형이 괴롭잖아.”
기어코 차은수가 눈물을 흘렸다.
“그건 더 싫어.”
이제 내가 도울 수 있는데.
울먹임에 삼켜진 뒷말을 눈치챘다. 차은혁이 할 말을 잃었다.
차은수는 자신이 그렸던 끔찍한 예측을 간단히 부수어 버렸다. 외면은커녕 변함없는 걱정을 품고 있었다. 아니, 형을 선뜻 돕기 어려워하는 스스로에게 자책감까지 느끼는 듯했다.
그의 솔직하고 다정한 동생은 놀랍게도 이 순간마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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