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더욱 흘렀다. 주청경은 내가 자신에게 안겨 애원했던 날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 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과,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이 상충해서 꽤 심란한 상태이지 않을까 예측되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나는 이유가 단순히 그것뿐이 아님을 눈치챘다.
-오늘도 식사에 손도 대지 않고 계십니다.
조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널따란 회의실. 주청경의 곁에 남은 심복이 보고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주청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영양제라도 놓아 드리게 할까요?
-…….
주청경이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내리깐 눈동자에서 고민이 묻어났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버려 두세요. 아무도 마주치지 못해야 하니까.
주청경은 나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의지할 구석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내가 본인을 찾도록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자신이 나를 원하는 만큼, 나도 자신을 원하게끔. 돌려보내 달라는 말을 다시는 꺼내지 못하게끔 말이다.
-주무실 때라면…….
-바늘에 찔리면 깨겠죠.
주청경의 기다란 손가락이 탁상에 세워져 있던 기기를 건드렸다. 검은 화면이 환하게 켜지고, 침실에서 웅크리고 누워 있는 내 현재 모습이 영상으로 송출되었다.
“…….”
타이밍에 맞추어 제3의 눈을 종료한 나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이 방 안에 원래 설치해 두었던 것은 아닐 테고, 이번에 나 몰래 설치한 카메라가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잘 숨겼는지 아무리 둘러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웅크렸던 몸을 펴고 일어나 앉았다. 멀찍이 존재하는 테이블 위에 잘 차려진 식사가 보였다. 외진 곳이니 식단이 단출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아주 제대로 진수성찬이었다. 내가 잠든 것 같으면 누군가 은밀히 들어와서 저렇게 차려 두고 간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돌려 보았지만 움직임이 막힌 듯 덜컥거리기만 할 뿐, 완전히 돌아가지 않는다. 바깥쪽에서만 잠금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냥 목재 문이었다면 몸을 부딪쳐 여는 것이라도 시도해 보았을 텐데, 무슨 재질로 구성된 건지 하얗게 번뜩이는 문은 굉장히 딱딱했다.
힘껏 문을 두드렸다.
“밖에 아무도 없어요?”
물만 조금 마신 것을 제외하고는 끼니를 챙겨 먹지 않아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용했다.
쿵쿵쿵. 다시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간절히 타인을 찾는 행위를 반복했다. 손이 아프다 못해 얼얼해질 때까지.
기어코 붉게 달아오르다가 까진 피부에 핏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결국 외부로부터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나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다가 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보란 듯이 후회하는 기색을 비춰 주는 일도 중요했다.
“하아, 하, 우윽…….”
함부로 자극해서 벌을 내리고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내 힘이 필요 없어져서 방치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끅, 흑…….”
울음을 참느라 간헐적으로 신음하며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는커녕, 언제까지 이렇듯 꼼짝없이 감금된 채로 지내야 할지 모르게 된 처지에 두려움을 갖는다.
심지어 처음 잡혀 왔을 때와 달리 이제는 대면하는 상대도 없었다. 사람을 돌아 버리게 만들고도 남을 환경이지.
……사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확률이 높다고는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청경에게 ‘테러범 그만두고 나 돌려보내 주면, 진심으로 대해 주겠다고 약속할게’라고 터무니없는 수준의 말을 꺼냈던 이유는 명료했다.
당연히 이대로 쭉 지낼 수는 없는 데다가, 형과 장희강이 충돌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주청경이 내 바람을 들어줄 나머지 확률에 배팅했던 셈이었다. 가이딩이든 몸이든 나에게 끌린 그가 평화적으로 마음을 고쳐먹을 수도 있으니까.
뭐, 솔직히 아직 모르지 않나. 지금은 이렇게 나를 제 입맛대로 다루려 들려고 하지만, 앞으로도 똑같으리라 확신할 수는 없잖아. 슬픔과 불안, 정신적 괴로움으로 꼴이 말이 아닌 나를 보면서 심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누가 알겠어.
아.
그런데 설령 일이 그렇게 진행되더라도…….
심태성이 이곳에 도착하는 것보다 빠를까.
잠도 거의 자지 않고서 무수한 곳들을 뒤지고 다니던 심태성은 놀랍게도 이 구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감과 신체 능력, 필사적인 의지가 받쳐 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아 있지도 않은 흔적을, 이쯤에 흔적이 있지 않을까 짐작하면서. 또 거기에서 파생된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모조리 조사하는 추적 방식은 그의 전업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이켜 보게 만들었다.
심태성이 이곳을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로 보이니, 그와 주청경이 다시 마주치게 될 순간을 자연히 상상하게 된다.
“…….”
몸이 떨렸다.
카메라에야, 우느라 떨고 있는 모습처럼 비추어질 것이었다.
***
어둠이 내려앉은 밤. 기계음과 함께 잠금 설정이 풀렸다. 굳건히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안쪽에 있던 마른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문에 기대어 잠든 차은수였다. 그 상태를 미리 알고 있던 주청경은 당황한 기색 없이 무릎을 꿇고 그를 받아 내었다.
품 안에 푹 안긴 차은수의 얼굴은 가련했다. 붉은 기가 사라질 틈 없는 눈가, 더욱 살이 내린 뺨, 스트레스 탓인지 눈에 띄게 부르튼 한쪽 입꼬리. 울다 잠에 빠져 따끈한 피부를 손끝으로 훑어 눈물 자국을 지워 주었다.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우는 모습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묘한 갑갑함을 무시하고 몸을 들어 올렸다. 그러잖아도 가벼웠는데 며칠 새 더 가벼워진 무게가 느껴졌다. 식사를 하는 일에도 매번 강제성을 부여할까 고민해 보았었으나, 방치되는 기분을 강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았다.
침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차은수를 침대에 반듯하게 눕혔다. 좋지 않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인상을 찡그리며 뒤척인다.
입술이 달싹이며 가느다란 신음을 내보냈다.
“으…….”
“…….”
그린 듯이 아름다운 눈썹도 살짝 일그러진 채 파르르 떨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 한 줄기가 그런 차은수의 낯을 고아하게 적셨다. 그 모습을 조용히 감상하던 주청경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만큼은 아니어도…….”
에스퍼에게 가이드는 숨통이지만 가이드에게 에스퍼는 그렇지 않다. 자신은 그토록 바라 왔고, 손아귀에 넣은 지금 역시도 차은수의 모든 것을 바라고 있는데. 차은수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주청경은 그것이 싫었다. 자신만큼은 아닐지라도 차은수 역시 저를 갈구하기를 바랐다.
욕심이면 뭐 어떤가. 욕심은 늘 그가 무언가를 쟁취하는 것에 도움이 되어 주는 요소였다.
다른 존재를 생각할 여유를 빼앗는다면, 차은수도 저를 원하게 하는 것이 가능해지리라 여겼다. 차은혁, 가족, 경호원……. 누가 되었든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지독한 고립감을 느끼도록 유도한다면 말이다.
말 한마디 나눌 상대 없이 철저히 통제되는 공간에 홀로 갇혀 있다면?
필시 자신과의 교류라도 절실히 바라게 되지 않겠나.
“…….”
……하지만 너무나 우습게도, 막상 홀로 불안에 떠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저절로 주먹이 쥐어질 만큼 안타까웠다.
영상으로 차은수가 손의 살갗이 터지도록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표정 관리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마터면 자해에 가까운 저 행위를 막기 위해 무턱대고 달려갈 뻔했다.
주청경은 늘어져 있던 가이드의 손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일반인의 신체로는 꽤 아플 법한 상처를 피해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제가 억지로 상대의 아래를 열어젖히며 선사했던 고통에 비하면, 지금 다친 수준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기실 그러기는커녕 주청경은 자신이 이토록 특정 인물에게 물렁해질 줄은 몰랐다고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상대가 차은수니까, 가이드니까 이상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렇게 당연시되었다.
“은수 씨.”
애석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귀중한 상대를 이렇게 몰아붙여야 하는 상황에 대해 유감과 짜증이 들끓었다.
자신이라고 차은수와 거리를 두고 싶을 리가. 마음 같아서는 종일 차은수를 물고 빨고 싶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란 게 전혀 없는 이 가이드의 몸은, 눈길로만 탐미하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허리를 숙여 동그란 이마에도 키스했다. 그러자 차은수는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옆으로 돌아누우며, 주청경에게 파고들듯 안겨 왔다.
무의식적이 아니라 의식적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과는 별개로 차은수의 행동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주청경은 손을 뻗어 늘씬한 등을 감싼 채,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위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가 맥동했다.
익숙한 체향이 후각을 자극해 온다. 흡사 며칠간의 금욕을 끝내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참아야만 한다. 차은수가 자발적으로 매달려 올 때까지.
그리하여 온전히 손에 넣게 된다면……. 매일 하루가 모자라게 예뻐해 줄 것이다.
철저히 본인에게 만족스러운 미래를 그리며, 에스퍼가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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